[정책 사각지대 논란①]역차별의 덫..토종기업 발 묶인 사이 외국계 '날개'

김현정 2017. 10.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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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상인, 골목상권 지킨다며 대기업 영업에 '족쇄'
빈 자리 외국계 기업이 파고들어 '반사이익'
스타필드 쉴 때 이케아는 영업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항상 법 테두리 내에서 열심히 하는 게 기업의 사명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케아는 쉬지 않더라는 것이죠."

지난 8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스타필드 고양 정식 개장식 현장에서 작심한 듯 이케아를 언급했다. 이케아는 글로벌 유명 가구기업. 각종 규제가 스타필드 고양을 비롯한 국내 기업을 향하고 있을 때, 자연스레 사각지대로 몸을 숨긴 외국계 기업과의 불평등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토종 기업들이 정부 규제로 발이 묶인 사이 외국계 기업은 날개를 달며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역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다른 한 편에서는 글로벌 시장과 국내 사정을 아우르기 힘든 제도적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케아는 되고, 스타필드는 안 되는 것= 대표적인 예가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유통산업발전법상 의무휴업 의무가 없는 이케아의 행보다. 이케아는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세계 28개국, 340개 점포를 운영하는 글로벌 유통기업이다. 지난 2014년 12월 광명점을 열고 국내에 진출했으며, 스타필드 고양 인근에 오는 19일 고양점을 개장한다. 부산 동부산관관광단지에는 2019년까지 2300억원을 들여 동부산점을 준공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7월 발표한 '소상공인·영세 중소기업 지원 대책'에 따르면 현재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월 2회 의무휴업 등 영업 규제 대상은 조만간 복합쇼핑몰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이케아의 경우 가구전문점이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다. 이케아 고양점을 기준으로 근처 스타필드 고양, 롯데몰 은평점 등 대규모 복합쇼핑몰이 모두 휴점할 때 이케아만 활발히 영업을 하게되는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가 국내 단체 급식 입찰에 대기업들의 참여를 제한하면서 외국계와 중견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세 상인을 살리자며 입찰 제한을 추진했지만, 예상치 못한 제 3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

정부는 2012년 5월 '영세 중소상인 지원 대책 추진 계획'을 시행,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 소속 대기업과 대기업에 준하는 중견기업에 대한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 참여를 제한했다. 1000명 이상 규모의 공공기관 급식사업에 영세 중소상인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였다.

스타필드가 진행한 고객 대상 이벤트(마술 퍼포먼스 쇼).


정책 시행 결과,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했다.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CJ프레시웨이, 대기업에 준하는 아워홈이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지만 대기업이 배제된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에 미국계 급식 회사 아라코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미국계 아라마크의 한국 법인 아라코는 현재 정부세종청사 2구역을 운영하고 있다. 그밖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보증신용재단, 국립환경과학원 등의 구내식당 운영권도 따냈다.

1000명이 넘는 구내식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운영 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를 충족하는 영세 상인들은 찾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한 정책 탓이 컸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지난해 10월 한시적으로 대기업의 입찰 참여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대책이 논의되지 않고 있는것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이케아를 포함, 대규모 전문점에 대한 영업규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기부는 가구·전자제품·식자재 등 대규모 전문점이 골목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규제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통계자료를 확보하고 내년 2월 연구용역을 거쳐 필요하면 규제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규제 강화의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다 같이 문 닫자'는 것인데, 그 규제가 과연 취지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무조건적인 규제 강화는 결국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세법 문제로 가격경쟁력 갖춘 수입맥주 판매량 급증
재벌 빵집 논란에 외국계 빵집만 우후죽순

브리오슈도레


◆주세법에 묶인 맥주, 외국계 빵집만 배불리는 '적합업종制= 식음료, 외식 업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빵집' 이다. 과거 재벌기업들의 빵집, 카페 운영이 논란이 되면서 대기업의 진입을 막자, 그 빈틈을 외국계 브랜드가 채우고 있는 것.

우리나라는 대·중소기업 간의 합리적 역할분담을 통한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목적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아 대·중소기업간 자율 합의를 거쳐 적합업종으로 권고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당초 1979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도입됐으나 산업경쟁력 약화와 기존 대기업의 독과점 등 부작용으로 인해 2006년 폐지됐다가 2010년 다시 도입됐다. 이에 따라 2019년 5월말까지 한식, 중식, 일식, 서양식, 기타 외국식, 분식 및 김밥, 그 외 기타 음식점업의 경우 대기업의 신규 진입이 자제되며, 기존에 진출한 대기업의 경우에도 예외적으로만 출점을 허용토록 했다.

중소기업 육성을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소기업 보다는 외국계 기업만 배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빵업계의 경우 국내 1위와 2위 기업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2019년 2월 말까지 가맹점과 직영점을 포함해 직전연도에 비해 2% 이내로 늘릴 수 있고 중소 제과점에서 도보 500m 밖에서만 출점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 브랜드인 곤트란쉐리에, 브리오슈도레 등 외국계 업체는 가맹사업 등을 통해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콘트란쉐리에의 경우 프랑스 현지에는 매장이 4곳 뿐이지만, 국내에는 30곳에 달한다. 브리오슈도레 역시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장이 12곳에 이른다. 이밖에 일본 도쿄팡야와 르타오, 미국의 매그놀리아베이커리도 가맹점을 늘려가고 있다.

외식업계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놀부보쌈'과 '놀부부대찌개' 등을 운영하는 놀부NBG의 경우 2011년 모건스탠리 프라이빗 에쿼티에 매각된 이후 2012년 695개 매장이 1000개 매장으로 늘었다. 미국계 중식 패스트푸드 판다익스프레스, 일본계 돈가스 업체 키무카츠 등도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서울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모델들이 세계맥주를 선보이고 있다.


매년 사상 최고 매출을 갈아치우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수입 맥주 역시 주세법을 파고든 결과라는 주장도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 8965만달러, 2014년 1억1169만달러, 2015년 1억4186만달러, 2016년 1억8156만달러를 기록했던 맥주 수입액은 올해 7월까지 총 1억4392만달러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51% 성장했다. 2001년 이후 16년만의 최고 성장률이다.

수입 맥주의 다양한 맛과 향을 배경으로 승승장구 해 온 영향이 가장 크지만, 가격 측면에서의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국산 맥주나 수입 맥주 모두 주세율은 72%로 같지만, 세금을 붙이는 기준인 과세표준이 다르다. 수입 맥주는 수입원가에 과세만 더한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반면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 영업비, 마케팅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한 출고 가격에 맞춰 세금을 매긴다.

한국주류산업협회는 수입한 맥주와 국내 생산 맥주의 판매가격이 같을 경우 붙는 세금의 차이가 최대 20%에 달한다고 본다. 지난 8월 발표된 주세법 개정안도 알맹이가 쏙 빠졌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가격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주세과세 체계(종가세)를 술 도수에 따라 부과하는 종량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국내 맥주 산업이 도약하려면 주세법 개정을 통한 동등한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면서 "수입 맥주는 유통마진을 조절해 소비자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 마트에서 할인행사가 가능하고, 수입 원가를 아예 낮춰 신고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적게 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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