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620호, 안민석·박근혜의 기연

안충기 2017. 10. 17. 07: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민석 의원실. 위쪽 문으로 보좌관실과 이어져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최순실 저승사자’로 불린다.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 사건을 파헤쳐 현직 대통령 탄핵의 불을 지폈으니 그럴만하다. 국회의원회관 620호, 그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추석 연휴 전인 9월25일 오후 1시에 밥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날 여의도로 가며 문자를 보냈다. (안1은 기자, 안2는 안 의원)

안1: 점심으로 라면 한 그릇 하시지요 안2: 네 안1: 의원식당에서 뵐까요 안2: 의원회관 1층으로 오세요

그런데 약속 시간보다 빨리 오라던 안 의원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문자를 다시 보냈다. -세계를 빛낼 작가를 11분이나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허튼 농담에 안 의원은 한술 더 떴다. -걸출한 정치인을 만나려면 11분 더 기다리세요.

잠시 뒤에 안 의원이 전화를 했다. -식당으로 바로 오세요. 무슨 라면 시킬까요. -떡라면이요.

출입증을 받고 들어갔지만 지형지물에 어두워 식당을 찾아 헤매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빨리 오세요. 라면 불어요.
의원회관 매점. 웰빙김밥 2000원, 멸치국수 4000원이다.
매점식당에서 3500원짜리 떡라면과 3000원짜리 만두 한 접시를 주문했다. 오가는 이들이 안 의원을 보고 인사를 한다. 의원실로 가는 중에도 국회를 방문한 시민 여럿이 기념사진을 찍자며 붙잡았다. 싫다는 소리 없이 웃으며 찰칵찰칵.

지역구에서 찾아온 수녀님과 안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방을 오가며 스케치를 했다. 한쪽 벽면을 채운 책꽂이 한 칸에는 위안부 소녀상 미니어처가 있다. 벽을 둘러가며 몇 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문 대통령과 미국에 갔을 때 그곳 의원들과 회담하는 장면, 문정왕후 어보를 돌려받는 장면, 윤동주가 나온 북간도 명동학교와 윤동주의 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북한에 갔을 때 그곳 아이들과 찍은 사진도 있다. 탁자 한쪽에는 그의 최순실 추적기 <끝나지 않는 전쟁>이 몇 권 있다.

책상 너머 창밖으로 한강이 가득하다. 양화대교, 선유도, 성산대교, 그 뒤로 난지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민석의원실, 오른쪽에 국회의사당 기둥이 서있다.
안1: 이 방을 계속 썼어요? 안2: 아니요, 20대 임기 시작하며 입주했지요. 그런데 이 방에 얽힌 사연을 아세요? 안1:???? 안2: 이 방의 첫 주인이 19대 국회 새누리당 비례대표 박근혜 의원이었어요. 박 의원이 대통령 출마선언을 하며 같은 당 이운룡 의원이 물려받았지요. 그리고 제가 들어왔지요. 안1: 그거 참 안2: 인연인지 악연인지 뭐 기막히지요.

추석 연휴 때 순회 북콘서트를 위해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다녀온 안 의원과 한번 더 통화했다.

안1: 행사장에 군복 입은 노인들이 나타나고... 안2: 말도 마세요. 그 양반들이 현지 경찰들을 밀치고 난동을 피워 연행되기도 했어요. 나라 창피한 일이지요. 안1: 뭐 다른 성과라도... 안2: 전 정권의 실력자들이 빼돌린 재산이 엄청나요. 현지에서 제보를 많이 받았어요. 맨하탄 빌딩, 무기명 CD 등에 숨겨놓고 그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어요.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이 구체적인 자료까지 저한테 계속 보내요. 어떤 이는 그 규모가 3000억이나 돼요. 안1: 뾰족한 방법이라도... 안2: 특별법 만들어야지요. 부정재산몰수 특별법이요.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에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지요. 검찰이나 언론은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잡겠지만 적폐는 시간으로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최순실 일가와 관련있는 기업이 정리된 현황판
안 의원 방 소파 앞 탁자에는 <박정희 대통령 가계 혼맥도>가 놓여있다. 화이트보드에는 <최순실 일가 소유 기업> 현황이 붙어있다.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