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악감독님, 국악공연에 꽂혔네

장병호 입력 2017. 10. 17. 06:02 수정 2017. 10. 1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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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소리 재해석 시도 잇따라
'베테랑' 방준석, 국악극 '꼭두'서
정악·민속악단 함께 연주 실험
'부산행' 장영규, 창극 '산불'서
판소리 '해체와 재조립' 공연
'올드보이' 이지수 '광해' 모그..
국립극장 예술단채와 작업 봇..
국립국악원 ‘꼭두’에 참여한 방준석 음악감독(왼쪽), 국립창극단 ‘산불’에 참여하는 장영규 음악감독(사진=연합뉴스·국립극장).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영화 음악감독이 국악공연에 빠졌다. ‘사도’ ‘베테랑’ 등에 참여한 방준석(47) 음악감독은 지난 4일 개막한 국립국악원 ‘꼭두’(22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로 첫 국악공연 작업에 도전했다. ‘곡성’ ‘부산행’의 장영규(49) 음악감독은 오는 25일 개막하는 국립창극단 신작 ‘산불’(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로 첫 창극 작업에 나선다.

국악계가 이들에게 음악을 맡기는 이유는 국악의 외연을 넓히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두 사람은 “국악계 바깥에 있기 때문에 국악을 보다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서 “서로 다른 장르의 만남과 충돌이 흥미로운 작업으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 국악의 선율과 장단 재정리

‘꼭두’는 영화와 국악을 결합시킨 공연으로 ‘가족의 탄생’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방 음악감독은 김 감독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됐다. ‘사도’에서 생황을 비롯한 국악기로 음악을 작곡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국악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 음악감독의 음악적 뿌리는 서양음악인 록이다. 90년대 초반 이승열과 함께 결성한 유앤미블루로 모던 록을 국내에 소개했다. 그래서 이번 ‘꼭두’ 작업은 더욱 쉽지 않았다. 방 음악감독은 “처음에는 영화음악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국악을 제대로 들어보니 새로운 체험을 하는 공부가 됐다”며 “기존 국악의 선율과 장단을 재정리하는 식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국립국악원 입장에서도 방 음악감독과의 작업은 신선했다. 그동안 따로 연주해온 정악단과 민속악단이 함께 연주에 나섰다. 상류층에서 연주해온 정악과 민요 등의 민간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민속악은 국악에서 서로 다른 갈래로 분류된다. 방 음악감독은 “관객 입장에서는 정악과 민속악을 따로 구분해 듣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국악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국악이 친밀한 음악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방 음악감독은 “작업을 하면서 국악이 우리 몸에 체화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일종의 ‘숨은 보물찾기’처럼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꼭두’는 국립국악원의 대표 공연으로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방 음악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수정 보완해 작품성을 갖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국악원 ‘꼭두’의 한 장면(사진=뉴시스).

△국악기 없는 판소리극 시도

장 음악감독은 영화 이외에도 연극·무용·국악 등 공연계 전방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국악 작업은 90년대 중반 작곡가 원일과 친분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국악 연주자들과 ‘비빙 프로젝트’를 결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리꾼 이희문·신승태·추다혜와 함께 만든 ‘씽씽’으로 국내외에서 현대적인 민요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런 장 음악감독에게도 ‘산불’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창극의 바탕이 되는 판소리 작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장 음악감독은 “국악의 여러 갈래 중 판소리는 구조가 가장 견고해서 작업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면서 “40명의 소리꾼이 있는 국립창극단과의 만남이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장 음악감독의 작업 스타일은 ‘해체와 재조립’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기존 판소리와 민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는 “음악에서 관심 있는 부분은 선율보다 그 음악이 어떤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지에 있다. 음악 외의 작업도 이런 방식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국악기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단원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후문이다. 바람 소리나 흔들리는 깡통 소리에 맞춰 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 음악감독은 “기존 창극과 달리 ‘산불’은 음악이 작품 속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바랐다”면서 “공간에서 생겨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음악이 되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악 본질 사라진다는 우려도

영화 음악감독의 국악공연 참여를 이끈 것은 국립극장이다. 2012년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과 함께 전통의 현대화에 앞장서면서부터다. 장 음악감독 외에도 ‘올드보이’의 이지수,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모그, ‘옥자’의 정재일 등이 국립극장 소속 예술단체와 음악작업을 해왔다.

장 음악감독도 2014년 국립무용단 ‘회오리’의 음악에 참여했다. 2015년 국립무용단 ‘완월’의 음악과 연출도 맡았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장 음악감독은 예전부터 국악과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음악을 맡긴 경우”라면서 “국악 작업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음악감독을 찾아 함께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악원은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꼭두’의 작업을 김 감독과 방 음악감독에게 맡겼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소속 예술단이 모두 출연하고 정악단과 민속악단이 함께 연주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많았다”면서 “국립국악원으로서도 신선한 자극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악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국악 비전공자가 공연에 참여함으로써 국악의 본질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악작곡가 유은선은 “좁은 의미로 보자면 국악을 전문으로 작곡하는 사람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고 멀리 보면 국악이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며 “영화 음악감독의 국악공연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이들의 작업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산불’의 콘셉트 이미지(사진=국립극장).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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