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패혈증 모르고 엉뚱처방.. 의료사고 주의보

2017. 10.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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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혈증 사망사건 20건중 13건, 첫 사망진단서에 다른 원인 기록
증상 모호하고 내과-외과 협진 미비
의사들 제때 진단 못하고 방치 잦아.. 의료분쟁중재원조차 놓친 경우도

[동아일보]

간경변증 환자인 60대 초반 A 씨는 복수가 차오르고 온몸이 붓자 5월 31일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이뇨제와 혈액대체제를 써서 혈압을 되돌리려 했지만 A 씨는 이틀 만에 숨졌다.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사망 원인은 ‘간경변증에 따른 호흡 부전’. 하지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이 A 씨의 의료기록을 검토해보니 진짜 사망 원인은 자발성 세균성 복막염이 악화한 ‘패혈증’이었다. 환자의 맥박, 호흡, 혈압이 하나같이 패혈증 진단 기준에 맞아떨어졌지만 의료진이 엉뚱한 약만 처방한 것.

이민호 중재원 상임감정위원(한양대 의대 명예교수)은 최근 3개월간 접수된 패혈증 사망 사건 20건을 분석한 결과 A 씨처럼 최초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이 패혈증 대신 다른 것으로 기록된 사례가 13건이었다고 16일 밝혔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패혈증 사망자는 3596명으로 전체 사망 원인 중 12위다. 하지만 이처럼 숨겨진 사망자를 포함하면 당뇨병 사망자(9807명) 수치와 비슷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패혈증은 ‘피(血)가 썩는다(敗)’는 뜻으로 상처나 종기로 미생물이 들어가거나 화상으로 전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 여러 장기가 빠르게 나빠지는 상태를 말한다. △횡설수설하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등 정신 상태가 변하거나 △호흡이 분당 22회 이상으로 가빠지고 △수축기 혈압이 100mmHg 아래로 떨어지면 패혈증을 의심해야 한다. 첫 증상을 보인 지 3시간이 지나기 전에 수액과 항생제를 맞으면 사망 위험을 10% 내로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선 패혈증 신호를 오해해 환자가 숨질 때까지 원인을 못 찾거나 발병 원인을 방치해 재발하는 경우가 잦다. 정신 상태의 변화를 정신질환으로 해석해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했다가 저혈압을 악화시키는 일도 있다.

이는 패혈증이 전신에 나타나기 때문에 깊이 연구하는 진료과가 드문 데다 내과와 외과의 협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패혈증 환자는 담당 내과 의료진이 외과적 발병 원인인 소장 괴사를 닷새 후에야 발견해 끝내 숨졌다.

패혈증을 방치하면 패혈성 쇼크로 악화돼 한 달 내 사망할 가능성이 30% 수준으로 치솟는다. 뇌졸중(뇌중풍·9.3%)이나 급성심근경색(9.6%)보다도 높은 사망률이다. 이 위원이 2007년 5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방광조영촬영술을 받다가 숨진, 책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씨(당시 70세)의 의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의료진은 권 씨가 사망 한 달 전 패혈증 의심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을 때 혈중 젖산 농도 등 필수적 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흉부 X선 촬영만 네 차례나 한 정황이 나타났다.

패혈증 환자를 중재원조차 놓친 사례가 있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올해 2월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진 B 씨(90·여)의 감정서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중재원은 6월 “의료진 과실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가 2개월 만에 재감정을 통해 “패혈증 치료 조치가 미흡했다”고 정정했다. B 씨가 숨지기 두 달 전 당뇨병 탓에 괴사한 오른발 일부를 잘라낸 뒤부터 패혈증 의심 증상을 보였지만 의료진이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 병원의 패혈증 대응 수준을 평가해 건강보험 수가 등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주는 2012년 농구 경기 중 팔을 다쳐 응급실을 찾았다가 퇴원한 로리 스타운턴 군(당시 12세)이 이튿날 패혈증으로 숨진 것을 계기로 의료진의 패혈증 조기 진단을 의무화하는 ‘로리 규정’을 만든 바 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특정 질환 사망자가 발생하면 당국에 보고하도록 한 ‘의료사고 주의보’ 제도에 패혈증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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