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2017 스포츠 영웅' 내가 헌신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조회수 2017. 10. 17. 09: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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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도 없이 이런 상을 받는게 염치없고 민망하다.

더구나 요즘 같으면 귀를 막고 어디 안보이는 곳에 숨고 싶은 마음 뿐인데,

팬들이 나를 2017년 스포츠영웅으로 뽑았다고 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갑자기 뜨거운 힘이 나를 자극했다.

시상식때면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는 감사 인사를 한다.

너무나 똑같은 말들을 하는 탓에 듣는 사람도 '반은 진심이고 반은 인사치레 일 것'이라고 가볍게 넘어간다.

나도 그랬다.

OSEN 제공

그런데 지난 주말  그동안 아내가 하던 일을 넘겨 받아서 처리 하고 있는 막내 아들 놈이 메일을 잔뜩 보내왔다.  

독일 한국 여기저기서 보내온 메일을 뒤적거리는데 대한체육회에서 2017년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 졌다.

이제는 쉬고 싶어서 따뜻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다가 뭔가에 이끌려 이불을 걷어차고 나오는 그런 힘 같은 것이 나를 뜨겁게 했다.

막연히 계획하다가도 귀찮아서 머리속에만 담아두고 미적거리던 일들이 송곳처럼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은 해야한다.

그걸 모른척 한다면 이 자리에 내가 있게한 유형무형의 모든 것들에게 배은망덕한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바뻐졌다.

노트북을 열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인터뷰 메일의 마지막 질문에 장황하게 답을 했다.

오늘 나는 2017년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되었고 한국축구는 지금 위기다.

선진축구의 많은 도움이 필요한 때다 .

지도자들의 교육이 가장 급하고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급감하는 현실에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줄수 있는 선진축구의 도움이 꼭 필요한 만큼 나는 프랑크푸르트 팀과 팬들이 당신들의 시스템 안에서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했다.

독일축구협회와 독일프로축구연맹에도 같은 부탁을 할 것이다.

독일의 축구영웅 로테어 마테우스와 독일프로축구연맹(DFL)회장 라인하르트 라우발

어제는 김호곤 부회장과 신태용 감독이 원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팬들이 공항에 나가 시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나는 종일 허공에다 대고 투덜거렸다.

월드컵 예선을 통과 한 후 한국축구는 히딩크가 와야 한다는 이슈로 논란의 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히딩크 본인이 원하는 일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는데 누군가가 팬들에게 헛된 기대감을 심어주면서 부추키고 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한국축구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다"

히딩크 자신이 밝힌 대로 이 말이 히딩크가 할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얘기라고 동의한다.

히딩크는 한국축구를 혼란에 빠트려 놓고 내가 팀을 맡겠다고 할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그건 수준 낮은 감독들이 일자리 찾을때나 하는 일이다.

그래서 히딩크가 작금의 이런 상황에 짜증나고 화가 나 있다고도 들었다.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영웅으로 남아야 하는 그를 한국축구가 거부하는 모양새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히딩크를 모신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이렇게 만든 누군가는 한국축구는 물론이고 히딩크에게 크게 잘못하고 있다.

일을 그르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팬들이 불만스러워하는 이 상황이 과연 신태용감독의 능력 때문이냐?는 것이다.

만약 그게 문제라면 정말 간단하고 쉽다.

히딩크가 오면 되고 돈 좀 더주고 유능한 지도자를 데리고 오면 해결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축구의 현주소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면 더 잘할수 있다!'든지

'다음 월드컵에서는 좀 더 나이질 것이다!'는 얘기를 자신있게 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초등학교 선수들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가고 리그의 관중은 몇천에 불과하고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리그에 밀려 선수들은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프로 구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협회의 각종 예산이나 수입도 옹색하다고 할 만한 수준으로 끊기거나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한국축구가 점점 더 좋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지만 우리가 좋은 축구를 보여주지 못하고 팬들의 관심을 끌어들이지 못해 타 스포츠와의 경쟁력에서 현저히 떨어지게 된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맞다. 우리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얼마전 방송국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축구중계를 좀 더 늘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방송의 편성은 시청율이 좌우하는데 이미 야구는 물론이고 배구 농구...심지어는 당구 중계보다도 적은, 시청율로만 따지면 7위정도가 나오니 중계를 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고 했다.

말을 꺼낸 내가 도리어 미안하고 민망했다.

그뿐 아니다.

지난달에는 아내와 함께 남해엘 갔다.

남해는 겨울이면 프로팀은 물론이고 멀리서 원정온 팀들로 섬 전체가 축구선수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나는 초등학교 팀이 여러개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내려간 김에 초등학교 감독들하고 식사나 하고 얘기나 들어보자고 했는데 그 큰 섬에 초등학교 축구팀은 남해초등학교 단 하나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선수 수급이 어려워 멀리서 데려온다고 했다.

나 역시 착각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남해엘 내려간다.

여수 미평초등학교 광양초등학교 순천 중앙초등학교 남해초등학교 감독들과 저녁을 먹자고 해두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정리하고 해야한다.

꿈에 부푼 초등학교 선수들이 많아야 하고 이들을 지도하는 감독들에게 많은 정보와 교육기회를 주어서 후련의 질을 높여야 한다.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채 여기까지 왔다.

내가 돕는다고 한국축구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백짓장을 함께 드는 마음으로 바닥에서 내 할일을찾아야겠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누린 차범근이니 이제는 바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게 마땅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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