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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굴레를 벗자" 세계 각국은 GPS위성 독립 선언..韓은?

류준영 기자 입력 2017.10.15. 17:48 수정 2017.10.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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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QZSS 中 베이더우 EU 갈릴레오 印 IRNSS 구축.."한국도 독자 체계 구축해야"
일본 QZSS 항법위성 상상도/사진=JAXA

#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날아오던 대한항공기(KE007편)가 옛 소련 영토인 사할린 근처 상공을 비행하던 중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소련 방공군 수호이(Su)15 요격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추락한 것이다. 비행기 탑승객 269명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소련군이 이 여객기를 격추 시킨 건 자국 영토를 침범했다는 이유에서다. 미·소련간 냉전기였던 당시 미군 정찰기가 민항기로 위장해 소련 영공을 침범하는 일이 흔했고, 당시 소련 정보부는 각 방공 부대에 미군 정찰기로 의심되는 항공기가 영공을 넘어 올 경우 즉각 격추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던 것.

이 사건 이후 미국 국방부는 군사용으로만 쓰려 했던 위성항법시스템(GPS)을 민간에 개방키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KE007편 대참사가 관성항법장치(INS·Inertial Navigation System)에 의존해 항로를 결정해 생긴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INS는 출발 전 좌표를 잘못 입력하면 갈수록 예정 항로를 크게 이탈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좌표를 수정하기 위해선 출발지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났다. 우주 선진국들은 독자적인 위성항법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EU(유럽연합)가 미국의 GPS와 같은 개념의 전지구위성항법체계를 구축 중이다. 일본과 인도는 자국 지역에 국한된 위성항법체계를 개발 중이다. 현재 미국이 일반용 GPS 신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자체적인 위성항법체계 마련에 나선 까닭은 뭘까.

먼저, 위성항법은 안보와 국민안전에 직결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위성항법은 차량용 길 안내시스템 뿐 아니라 항공·해상항법 시스템, 인명 구조, 어업, 기상예보 등 국민안전과 국가안보에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주 선진국들은 GPS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업적인 가치도 크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GPS 활용가치가 이전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 현재 위성항법신호를 활용한 시장규모는 100조원대인데 자율주행자동차, 드론(무인비행기) 택배 시스템 등이 대중화되면 시장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이처럼 상업적인 활용기회 많아지면서 더 이상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위성항법체계 구축에 대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우리는 어떠한지 짚어봤다.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섬 우주센터에서 지난 8월19일 '일본판 GPS' 위성인 준천정위성 '미치비키' 3호를 실은 H2A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 AFP=뉴스1


◇고층빌딩·산악지형 극복한 日GPS…美 보다 정교=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미쓰비시중공업이 지난 10일 H2A 로켓을 통해 ‘길잡이’란 뜻을 가진 고성능 항법위성 4호기 ‘미치비키’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항법위성 1~4호기는 일본 열도 상공을 8자 모양으로 돌며 GPS 신호를 보낸다.

일본은 2002년부터 자국의 지역 위성항법인 QZSS(Quasi-Zenith Satellite System) 구축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일본은 QZSS가 센티미터(cm) 수준의 정확도를 갖춰, 미터(m)급인 미국 GPS 보다 더 정교한 위치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일본 측의 주장이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QZSS가 자율주행차 등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QZSS 위성은 미국 GPS 보다 수직에 더 가까운 경사각으로 신호를 보내 고층빌딩이 밀집한 도심이나 산악지형 등에서 GPS 신호 수신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는 2023년까지 나머지 3기의 QZSS 위성을 지구 궤도권에 올려 총 7기의 항법위성을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상업적 목적뿐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상시 감시망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위성항법 大國 꿈꾸는 中…베이더우 기반 스마트폰 30%=중국은 자국과 주변국을 대상으로 한 위성항법체계 ‘베이더우(北斗)’ 프로젝트(1~3단계)를 빠른 속도로 추진,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전지구 항법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중국은 올 하반기엔 항법위성 6~8기, 내년엔 18기를 추가로 우주에 쏘아 올리는 등 2020년까지 총 35개 위성으로 지구를 둘러싸 베이더우 시스템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베이더우 위성이 제공하는 위치성능은 아직 미국 GPS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 굴기’를 통한 차후 기술 개발 투자를 통해 곧 미국 GPS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스마트폰의 30%에는 베이더우 시스템이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용한 산업에서 베이더우의 점유율은 70%를 넘어서며 교통, 기업관리 등 대중영역에서도 넓게 활용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베이더우를 자국 사물인터넷(IoT), 5세대(5G) 통신 기술과 융합시켜 자국 GPS 활용도를 끌어올려 2020년 자국 GPS의 산업 가치를 4000억 위안(약 69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중국이 이미 위성항법장치 칩의 핵심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 지적재산권을 보유한 데다 GPS가 실내 및 지하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서비스 블랙아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종합 PNT(위치, 항법, 표준시각) 시스템 핵심 기술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EU는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전지구위성항법시스템 ‘갈릴레오(Galileo)’를 가동, 공공기관 및 사업자, 일반을 대상으로 우선 서비스를 개시했다. 갈릴레오는 현재까지 위성 15기로 운영되고 있으며, 앞으로 11기의 위성을 더 발사해 2018년까지 총 26기로 구성된 갈릴레오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관련하여 스페인의 전자회사인 BQ는 이미 갈릴레오 기반의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며, 다른 제조사들도 갈릴레오칩을 탑재한 폰 출시를 저울질 하고 있다. 인도도 지난해 7번째 GPS 위성발사에 성공, 내년부터 자체적인 지역위성항법체계(IRNSS)를 가동할 예정이다.

EU 갈릴레오 관련 항법위성 상상도/사진=ESA


◇韓 안보 환경상 독자 위성항법 체계 필요=한·미 관계 등 전지구위성항법체계를 구축한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국제관계를 고려할 때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위성항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분단 대치 상황인 안보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항법시스템을 갖춰야 GPS 신호 재밍(jamming, 통신 방해) 등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고, 자율주행차, 드론(무인기) 택배 등 항법 신호 등을 활용한 미래 산업 육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와 주변을 대상으로 한 지역위성항법체계 구축 로드맵을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건은 재원이다. 일본처럼 지역위성항법체계를 만든다 해도 최소 항법위성 7개가 필요하다. 못해도 2조~3조원 정도의 R&D(연구개발)비가 투입돼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2013년 수립된 국가우주개발중장기계획에 총 7기의 항법위성을 단계적으로 개발, ‘한국형 GPS’를 구축하는 계획이 반영돼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나온 게 없다”고 말했다.(*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류준영 기자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