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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한반도 전쟁보다 ‘전쟁 위기’가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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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5 06:00:00 수정 : 2017-10-15 13: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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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아 시골에 내려가 차례를 지내고 서울에서 지인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들렸던 말이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였다. “트럼프가 북한을 공격할까?” “김정은이 핵폭탄으로 공격을 할까?”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한 지인은 “주변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라면과 생수를 비축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미국 공군 B-1B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출격하기 위해 괌 앤더슨 공군기지를 이륙하고 있다. 미 태평양사령부 제공
미국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에 탑재된 전력은 중소국가의 공군력과 맞먹는다. 미 해군 제공

실제로 한반도에서 북한과 미국의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3~24일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 랜서 편대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영공과 인접한 국제공역을 비행한 직후 B-1B 편대가 10일 밤 또다시 한반도에 전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으로부터 대북 군사옵션이 포함된 보고를 받았다. 미국 해군의 최신형 핵추진잠수함과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도 한반도 해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12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옵션을 시사하는 발언을 자주 해 우리 국민이 불안해한다”고 지적했다. 정말로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해 시험발사하는 레드라인을 넘을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전쟁보다 전쟁 위기가 몰고 올 상황이다. 왜일까.

◆ 전쟁을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준비 필요

한반도에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가 수시로 날아들고,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들이 한반도 해역에 전개한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지는 상황을 보면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공격은 미군의 전략자산을 일부 동원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전력을 모두 투입해야 한다.

지난해 6월 미국의 민간 군사정보회사 스트랫포(STRATFOR)는 ‘무력을 통한 핵 프로그램 대응’(Dealing a Nuclear Program by Force)이라는 제목의 북핵 정밀타격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우선 공습 목표는 5MWe 원자로가 있는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이다. 황해북도 평산의 우라늄 광산과 스커드 등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 기지 및 이동식발사대(TEL),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신포급 잠수함이 머물고 있는 신포항을 비롯한 북한의 주요 항만과 공군기지도 공습 대상이다.

이들 시설을 동시에 파괴하려면 미군 핵심 전략자산을 총동원해야한다.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 오하이오급 순항미사일 탑재 핵추진 잠수함과 7함대 소속 구축함 등이 참가해 정밀유도폭탄과 순항미사일 600기를 동시에 발사한다. 북한의 방공망이 고도로 밀집되어 있지만 B-2 폭격기와 F-22 전투기를 포착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지난달 23~24일 B-1B가 북한 영공과 인접한 국제공역을 비행했지만 북한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 공군이 북한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고 북한의 주요 시설들을 직접 타격할 수 있다. 이 정도의 공습을 받으면 북한의 핵개발 인프라는 말 그대로 초토화된다.
미국 공군 F-22 스텔스 전투기가 초음속으로 기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문제는 미군이 대북 선제타격을 감행한 이후다. 북한은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장사정포와 특수부대를 동원해 한국에 대한 보복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경기 북부 지역은 장사정포 공격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의 선제타격 시나리오는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북한의 군사력을 일거에 무력화할 준비를 갖춰야만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연합 작전계획 5015의 발동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북한 영토로 한미 연합군이 진격하게 되어 사실상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강대국 미국이라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주한미군과 증원전력을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패트리엇(PAC-3)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방어무기의 대량 반입이 필요하다. 한국 내 미국인의 철수와 더불어 미국 육해공군 전력을 한반도에 투입하고 한반도 유사시 후방지원을 담당하는 주일미군기지에 군수물자를 비축해야 한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병력을 파견하도록 되어있는 국가들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북한 공격의 명분을 확보할 필요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며, 수행과정은 대부분 공개된다. 현재 이같은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 일어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부분은 분명히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B-1B가 야간에 한반도에 나타나는가 하면 F-35B가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는 훈련은 보여주기식 무력시위 대신 실질적인 군사작전 연습에 가깝다. 이는 북한이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화성-14 ICBM으로 미국 본토 공격능력 확보라는 미국의 레드라인에 근접하자 미국도 영공 침범 및 폭격이라는 북한의 레드라인에 근접하는 군사행동을 감행함으로서 대북 압박 강도를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2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그를 위한 외교, 정치, 경제적 압박은 도발에 따라 계속 높인다는 것에 대해 한미 양국이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위기 이용하려는 모습이 더 위험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 국면이다. 위기 국면을 이용해 자신의 어젠다를 관철하려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94년 프랑스가 발생한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프랑스군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유대인 출신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는 독일 대사관에 군사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체포된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도 종신형에 처해졌다가 1906년에야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과 우파 국수주의자, 좌파와 우파, 공화파와 반공화파가 수년에 걸쳐 충돌을 거듭했고 내각이 수차례 무너지면서 정치적 불안이 지속됐다.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 알프레드 드레퓌스 프랑스 육군 대위. 군사기밀을 독일에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에밀 졸라 등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1906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전제 왕정을 타도한 대혁명을 이룩한 프랑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1871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한 직후 프랑스 국내에서는 독일 간첩 적발 사실이 수시로 드러나면서 ‘독일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고조됐다. 안보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시대에서 침략에 대한 공포가 더해지자 당시 프랑스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던 국수주의자들과 반유대주의자, 군부, 가톨릭교회 등이 민주정치와 공공질서를 짓밟고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공포를 극대화한 것이다.

2017년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촉발된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과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그 기반은 미약하다. 적폐청산에 착수했지만 박근혜정부의 파탄을 몰고 온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이 예전보다 높아지면서 공포 또한 커진 상태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박근혜정부 퇴진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에 편승한 정치인들은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 위기다” “북한 핵을 막지 못하면 5000만 국민이 김정은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라며 전술핵 재배치와 핵추진잠수함 건조 등 정치적으로 예민한 안보이슈들을 키우고 있다. 색깔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공포를 통해 지지층을 모으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행태로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던 ‘정권 안보’ 전략의 새로운 버전인 ‘정파 안보’ 전략이다. 일본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아베 정권이 북한 미사일 발사에 두려움을 느낀 국민들을 상대로 북풍몰이에 나서면서 정권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전쟁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 못지 않게 국가 체제와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 공포가 전염되면 국민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민주주의를 스스로 파괴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흑사병의 공포에 휩싸여 민주정치를 스스로 무너뜨린 고대 아테네와 9.11 테러 직후 인권침해 논란을 빚었던 미국의 애국법이 대표적인 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깨어있는 국민들의 일치된 힘이다.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밝혀내고 프랑스의 민주정치를 지켜낸 주역은 상식을 갖고 있던 시민사회였다. 우리는 이미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당시 100만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던 위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촛불을 지탱한 것은 북한 핵무기보다 훨씬 강력한 국민들의 자유 의지를 향한 단결과 열망이었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들이 힘을 모은다면 안으로는 ‘안보 팔이’와 북풍을 무력화시키고 대외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의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반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는 정부에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과 위협적 언사,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발언 등에 흔들리지 않는 깨어있는 국민들의 자유 의지가 한데 모인다면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된다고 해도 우리가 김정은의 노예로 살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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