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마이라이프] 현실 안주대신 또 다른 꿈을 꾸며… 박수칠 때 떠나는 ‘색깔 있는 남자’

관련이슈 마이 라이프

입력 : 2017-10-13 21:21:17 수정 : 2017-10-13 21:33:5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국단체장 첫 ‘3선 불출마 선언’ /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 임기 1년이나 남기고 퇴진 결정 / 트레이드마크 된 ‘노랑머리’ / 도보 10분 거리 ‘작은 도서관’ 정착
지방자치단체장은 연속으로 3번을 할 수 있다. 자치단체장의 전횡과 지역 토착비리의 근절을 위해 3선 연임을 제한하고 있지만 선거에서 내리 3번을 승리하면 12년 동안 임기가 보장된다. 재선을 한 단체장들은 3선 고지 점령을 위해 밤낮없이 지역을 누빈다. 차별화된 정책으로 주민들을 파고든다. 일부에서는 12년으로도 모자라 단체장의 3선 연임 제한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재선의 현역 기초단체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3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전국 지방단체장 가운데 처음이다. 지난 7년 동안 ‘달동네’ 이미지가 강했던 지역을 ‘도서관 도시’로 변화시키고 주민과 활발한 소통으로 인기가 높은 현역 구청장의 불출마 선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구청 집무실에서 유 구청장을 만났다. 명절을 앞두고 구청 앞마당에는 농산물직판장이 열려 북적였다. 현관에는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 놓을 것’이라는 최영미 시인의 행복론이 게시돼 있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지역을 변화시킨 구청장답게 책상 위에는 ‘국가재정의 정치경제학’, ‘기사단장 죽이기’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쌓여 있었다. 책장에도 빈틈없이 책이 꽂혀 있었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책을 꺼내 읽는다고 했다. 집무실과 승용차, 화장실, 거실 등에 각각 다른 종류의 책을 놓고 읽는다.

그는 “2번의 구청장직을 수행하면서 구상했던 사업을 거의 실행에 옮겼다”며 “새로운 구상과 철학으로 관악구를 이끄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불출마를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불출마 변을 능소화에 빗대 밝혔다. 능소화는 장미의 화려함은 없지만 마음을 당기는 매력이 있는 꽃이다. ‘그대 영혼에 능소화 되리라’는 시처럼 기다림과 지조,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능소화의 최고 가치는 시들기 전에, 절정의 시기에 스스로 꽃을 떨구는 당당한 자세가 아닐까?라고 했다. 박수 칠 때 떠나겠다는 심정을 능소화에 비유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연함을 피력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남은 임기 1년을 2∼3년으로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며 “불출마 선언 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어 더 열심히 업무를 챙긴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운동 때 식당을 돌며 유권자들과 악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 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지금은 골목이 나라고 나라가 골목입니다. 글로컬 시대인 것입니다. 글로벌과 로컬의 구분이 없는 거죠. 그동안 로컬에서 7년을 활동했으니까 앞으로는 글로벌하게 활동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지방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이슈에 천착해 보고 싶은 생각이지만 딱히 뭘할지 정한 것은 없습니다.”

그는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일반적으로 레임덕 등을 우려해 선거가 임박해 불출마를 밝히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그는 “지역 정가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구청장과 시의원, 구의원 출마를 꿈꾸는 분들에게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기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불출마 소식을 들은 구민들은 처음에는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 3선을 다 채우고 나서 다른 일을 하라”고 만류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부터는 “힘든 결정을 했다”, “1년을 앞두고 어려운 결단을 해서 보기 좋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구청장은 신문기자 출신이다. 정치부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정치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고향과는 정치적 지지기반이 정반대인 정당을 출입했다. 갑작스럽게 신문기자를 그만둔 그는 서울시 시의원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첫 출발지가 관악구 신림동이다. 이곳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국회의원 출마를 했고, 구청장을 7년째 하고 있으니 관악구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그는 “관악구민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악의 문제가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청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지역을 위해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 도서관’을 정착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취임한 2010년 5개에 불과했던 관악구 도서관은 현재 43개로 늘었다. 이 기간 도서관 회원은 7만여명에서 16만여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예산을 한 푼 들이지 않고 만든 결과다. 주로 동 주민센터 내 새마을문고를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작은 도서관을 늘렸다.

도서관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기존 새마을문고 회장단이 반발했다. 그는 새마을문고가 독서 문화활동을 한 노고와 공로를 인정했다. 새마을문고와 업무협약을 맺고 새마을문고 20곳을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소통을 통해 상생하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작은 도서관이 정착하는 데는 관악구만의 독특한 지식도시락 배달서비스가 한몫했다.

지난해 지식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통해 배달된 책이 40만권에 달한다. 관악산(629m) 높이의 12배 이른다. 이 서비스를 통해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 통합도서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희망도서와 책 받을 장소를 선택하면 바로 책을 배달해 준다. 차량 3대가 배달서비스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 차량 1대를 더 구입할 계획이다. 관악구만의 도서관 사업은 덴마크와 일본, 중국 등 해외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을 정도로 성공한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도서관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밑거름은 국회도서관장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인들에게 국회도서관장은 한직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는 한직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국회도서관 야간 개관과 독도분관 설치, 팩트 북 발행, 장애인 정보 접근성 확대 등 국회도서관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는 “한직이라는 자리가 최고의 기회를 제공했다”며 “돌아가는 길에 꽃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관 협치를 중시했고 구정운영에 적극 반영했다. 취임하자마자 주민협치과를 신설하고 협치조정관을 채용했을 정도로 기존 관 중심의 패러다임을 탈피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그림이 있지만 실제로는 말이 아닌 노새를 타고 넘었다”며 “노새는 암말과 수탕나귀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것으로 말의 파워에 당나귀의 지구력이 합해졌기 때문에 험준한 알프스를 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집무실에는 스페인 라만차에서 직접 찍은 돈키호테 동상 사진이 걸려 있다. 자택 거실에도 똑같은 사진이 있다고 했다. 돈키호테가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을 보고 있는 사진이다. 그는 ‘뜬구름 잡을 궁리하는 돈키호테’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 사진을 보면서 ‘꿈’과 ‘도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돈키호테가 현실 안주가 아닌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돈키호테처럼 꿈을 찾아 도전하기를 권유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어렵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다고 했다. 1970년대 중후반 학번은 취업은 쉬웠지만 당시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에 방황했으며, 그보다 앞선 세대는 배고픔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그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주민들을 만난다. 청소년들이 머리 염색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따라했다. 2011년 여름휴가 때 염색을 했는데,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계속한다고 했다. 그는 색깔있는 남자로 살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다. 염색을 하고 검정양복 대신 캐주얼 재킷을 입고 다니는 등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버리자 주민들이 먼저 다가왔다고 했다.

그는 5년에 걸쳐 원내 1,2,3,4,5당의 대변인을 역임하는 진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국회의원들이 이합집산을 하는 바람에 기록 아닌 기록이 나왔네요”라고 한 말은 지금도 정가에서는 회자되고 있다.

그는 은유와 유머 촌철살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혀로 남을 비판해야 하니까 상처가 됐다고 했다. 그는 2014년 5월 민선 6기 지방선거 때 후보일기를 썼다. 선거운동을 위해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기였지만 선거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일기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불출마 선언을 한 그는 다음 아고라에 지난 7년을 돌아보는 동시에 구청장 임기 8년을 마무리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그는 “인간은 기록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며 “구청장 일상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할 때가 많지만 기꺼이 기록의 특권을 누려보겠다”고 했다.

돈키호테처럼 꿈을 꾸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또 다른 인생을 기대한다. 그의 저서 제목처럼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가 빛을 발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서울대 철학과 ●한국일보·한겨레신문 기자 ●서울시의회 의원 ●청와대 정무비서관 ●노무현 대통령후보 공보특보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 ●새천년민주당·민주당·중도통합민주당·통합민주당 대변인 ●국회도서관장 ●제23·24대 관악구청장 ●전국평생학습도시협의회 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르테미스 희진 '금발 여신'
  • 아르테미스 희진 '금발 여신'
  • 한소희 '시선 사로잡는 타투'
  • 송지우 '깜찍한 꽃받침'
  • 표예진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