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어금니 아빠' 사건 3차례 넘게 막을 기회 놓쳤다

이원준 기자 2017. 10. 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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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자살사건 성범죄 수사 제대로 됐더라면
'실종신고' 여중생, 부실·늦장 수사 논란도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13일 오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서울북부지검으로 호송되고 있다. 2017.10.13/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경찰이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의 딸 친구 여중생 살인·사체유기 사건 발생을 직간접적으로 막을 수 있는 몇 차례의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깝게는 실종 여중생에 대한 부실 수사 논란부터 앞서 부인 성폭행 고발 늦장 대응과 자살 수사 부실까지 더해져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영학의 여중생 살해 동기가 부인 자살로 인한 성적 욕구 해소 때문이란 점에서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는 이영학 부인 최모씨(32)가 의붓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호소한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달 1일 최씨는 시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의붓시아버지 A씨로부터 2009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에는 "총기로 위협하며 성폭행했다"는 내용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은 성폭행 관련 DNA 등 증거물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고, 'A씨와 DNA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에 대해서도 2차례 걸쳐 소환조사했다.

하지만 정작 경찰은 최씨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사이 최씨는 이씨로부터 '성폭행 증거를 만들어와라'며 학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씨는 고소장 제출 닷새만인 지난달 5일 망우동 자택 5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몸에서는 이씨로부터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난 상태였다.

◇의혹 가득한 부인의 자살사건, 왜 조치 늦었나

최씨의 자살을 조사한 서울 중랑경찰서는 최씨의 시신에 상처가 있던 점으로 미루어 이영학이 최씨를 폭행했거나 자살을 방조했을 가능성에 대해 한 달 넘게 내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성관계 동영상을 확인하는 등 이영학의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해왔다.

하지만 이영학에 대한 정식수사 전환이 한달 넘게 지연되면서 경찰이 이번 사건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경찰이 혐의점을 포착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미루는 사이, 이영학은 경찰의 감시망을 벗어나 딸과 함께 범행을 기획했다.

특히 이영학은 다수의 전과를 보유한 소위 '요주의 인물'이기도 하다. 경찰에 따르면 이영학은 무면허·사기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 11범이다. 이밖에도 주거침입·절도 등 모두 7개 사건에 연루돼 경찰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이같이 부인에 대한 폭행 정황과 범죄전력, 가족내 성폭행 혐의가 있음에도 경찰은 한달 동안 이영학을 놓치고 있었다, 여중생 실종수사팀의 용의선상에서도 이틀 넘게 빗겨나 있었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CCTV확인에 시간 허비…범행 후 4일 만에 서장에게 보고

가장 아쉬움을 끄는 대목은 이영학 딸 이모양(14)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간 피해 여중생 A양(14)이 지난달 30일 오후 12시20분쯤부터 다음날 오후 12시30분쯤 잠에서 깼을 때까지 한나절 넘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부모로부터 실종신고가 접수된 시간으로 봤을 때도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경찰은 가지고 있었다.

13일 서울 중랑경찰서가 공개한 '시간대별 활동사항'에 따르면 경찰은 1일 오후 4시부터 페이스북과 SNS 등을 통해 실종자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가족이 전날 오후 11시20분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40분 뒤 딸이 이양을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단 사실을 고려했을 때 '16시간' 공백이 있던 셈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팀이 1일 오후 9시 A양 어머니에 전화해 피해자가 딸 이양과 만나서 헤어졌다고 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때 A양이 마지막으로 만난 아이가 이양인 것을 알았다"고 해명했다.

다만 경찰은 뒤늦게 피해자 부모에게 전화를 건 이유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했다. 경찰관계자는 "(피해자가)14살 아이고, 휴일이니까 친구를 만나러 갔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피해자 가족이 A양과 이양이 만난 사실을 먼저 알려줬으면 수사 진행이 빨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력사건과 연관됐을 수 있는 실종신고였음에도 수사팀은 경찰서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 중랑경찰서장은 사건발생 나흘 뒤인 4일 오전 11시30분에야 A양의 실종과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

경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A양의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경찰이 30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A양은 고통에 떨어야 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길우근 형사과장이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 대한 수사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17.10.13/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전문가도 경찰의 뒤늦은 대응에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리 대비했다면 A양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살아있었음에도 경찰의 대응이 늦어 아이를 살릴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부인에 대해서도 경찰이 성폭력 신고를 받고 보호를 했다면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wonjun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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