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지는 인사동, 뜨는 익선동..규제에 명암 갈린 이웃 동네

김인오 입력 2017.10.13. 16:04 수정 2017.10.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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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중심거리(왼쪽)는 행인조차 드문 한산한 풍경이었지만 같은 시간 바로 옆 익선동 골목(오른쪽)에는 젊은 층 방문객들이 가득 찼다. [이충우 기자]
낙원동 악기상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서울 종로통 두 상권, 인사동과 익선동이 '2030 아날로그 소비계층'을 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모양새다. 명실상부한 서울 종로 도심 대표 상권이던 인사동에선 수십 년간 둥지를 틀었던 가게들이 달마다 하나씩 자리를 빼는 반면 일제시대 들어선 '도시형 한옥마을' 익선동에선 매달 새로운 'SNS 맛집(블로그·인스타그램 같은 온라인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인기를 끄는 식당과 카페 등)'이 문을 열고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불거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가 이어진 가운데 유커(游客)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인사동이 대체 수요층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 익선동과 극명히 대비된다. 인사동에선 8월 전통 차(茶) 용품을 파는 20여 년 차 다기 전문점 '동양다예'에 이어 9월에는 52년 차 고(古)시계 가게 '용정', 전통 붓과 벼루 등을 파는 30년 차 '송림당필방'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익선동에선 4월 프랑스 가정식을 파는 '르블란서'에 이어 5월 만화방 겸 카페인 '만홧가게'를 비롯해 최근 석 달 새 카페 '루스카'와 식당 '익선키친' 등이 연이어 손님맞이에 나섰다.

분위기를 보여주듯 인사동 일대 상가 월세 임대료는 하락세를 걷고 있다. 리서치 업체 부동산114와 인근 공인중개 업계에 따르면 인사동 상권 월세 임대료(3.3㎡당 월세 기준)는 상반기 평균 19만3000원 선이었으나 최근 들어 15만2000원대로 떨어졌다. 억대를 오가던 상권 권리금은 1년 새 반 토막 났다. 점포라인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인사동 상가 권리금은 평균 1억5750만원이었다. 하지만 공인중개 업계에서는 현재 8000만원 선으로 평가한다. 무권리금을 내세운 점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급매로 나온 한옥 한정식집(공급면적 99㎡)의 경우 권리금 없이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350만원"이라고 말했다.

반면 익선동에선 월세 임대료(3.3㎡당 월세 기준)가 상반기 평균 7만5000원 선이던 것이 최근 9만9000원으로 올랐다. 권리금 '제로'가 대세를 이뤘던 이곳에선 이제 상가 매물 권리금으로 1억~1억5000만원을 부르기도 한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나오는 대로 바로 호가에 맞춰 팔린다"며 "한옥 한정식집(공급면적 73㎡) 임대 매물의 경우 권리금 1억1000만원에 보증금 2000만원, 월세는 200만원"이라고 말했다.

최근 3년 새 익선동 한옥 골목엔 카페 '뜰안' '식물' '엘리' '프앙디' 등을 비롯해 식당 겸 펍(pub) '거북이슈퍼' '경양식1920' '이태리총각' '에일당' 등이 들어섰다. 주말이면 '셀카봉'을 든 20·30대 젊은 방문객과 현장답사를 나온 40~60대 부동산 투자자들이 좁은 골목을 줄지어 찾는다. 외국인 관광객도 늘어나면서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고 권리금이 붙어 거래된다. C공인 관계자는 "상가주택 등으로 개조할 수 있는 한옥의 3.3㎡당 매매가격이 3750만원에 이르지만 바로 팔리고 이제는 4000만원 넘게 부른다"고 전했다.

이처럼 두 상권의 희비를 가른 것은 단순히 유커의 감소만은 아니다. '문화지구' 업종 권장 제한과 젠트리피케이션이 인사동 상권의 침체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인사동과 익선동은 모두 한옥 보전을 위한 구역 내 층수 제한을 받는다는 점에선 유사하다.

하지만 인사동 상권은 200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상 서울시가 역사문화자원 관리·보호를 목적으로 골동품과 화랑, 붓·벼루·전통 종이, 기타 민속공예품 등을 5대 권장 업종으로 지정해 상권을 보호하고 있다. 특히 중심거리 구간에는 이들 전통문화 관련 업종만 들어설 수 있다.

인사동은 겉모습은 전통적이지만 실제는 유커에 편중된 상권으로 전락했다. 중심거리는 신규 입점 업종에 제한을 두면서 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어느 정도 유지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중심거리에 있던 전통품 가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면서 주변 상인들도 마음이 편치 않은 분위기다. 매출이 적게는 10%, 많게는 40% 이상 떨어지는 식으로 침체 일로를 걷지만 세입자가 체감하는 임차료 수준은 높다는 평이다. 한 가게 주인은 "한때 인기를 끌던 쌈지길 인근도 임차인이 없어 '깔세' 옷가게 정도나 임시로 문을 여닫는 분위기"라며 "장사가 안되는데 시세는 비싸다 보니 쌈지길 근처도 24평 정도 규모 가게는 안 나가고 2~3평 정도 가게나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 사주·타로 점집으로 다시 문을 여는 식"이라고 전했다.

반면 익선동은 2010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한옥 보전 등을 이유로 재개발 계획을 부결한 후 3~4년 새 한옥을 개조한 복고풍 식당과 카페를 여는 청년사업가들이 모여들었다. 개발 추진위원회도 해산한 2014년을 기점으로 상권이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했다. 임채우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전문위원은 "익선동도 시세가 계속 오르면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이 불거질 공산은 크다"면서도 "아직은 인사동에 비해 시세가 현저히 낮은 데다 업종 제한이 없다는 점에 힘입어 당분간은 창업자나 투자자들의 관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