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퇴 탈퇴 탈퇴..국제 외톨이 자처하는 미국

2017. 10. 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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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스라엘 편견 못 참겠다' 유네스코 탈퇴
앞서 파리기후협정·TPP도 국익 이유 탈퇴
'미국 우선주의'에 국제기구·협정 때리기
FTA 등 무역질서도 일방주의로 흔들고 나서
'70여년 이어진 지도력 스스로 훼손' 평가

[한겨레]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전격 탈퇴하면서 미국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뒤 지속된 각종 국제기구와 협정에 대한 무력화 시도인데, ‘미국 우선주의’가 국제 질서를 흔들고 지도력 상실이라는 역작용을 부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국무부는 12일 유네스코의 “반이스라엘적 편견”을 좌시할 수 없다며 내년까지만 회원국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옵서버로만 활동하겠다고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유네스코의 강력한 개혁을 바란다는 메시지”라는 국무부 관리의 말을 전했다.

미국은 1984년 유네스코가 소련한테 휘둘린다며 탈퇴했다가 2002년 복귀했다. 그러나 2011년 유네스코가 정식 국가가 아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에 항의해 분담금 납부를 미뤄왔다. 연체 분담금이 5억5천만달러(약 5600억원)다. 미국은 유네스코가 7월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 구시가지를 ‘팔레스타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때도 강하게 반발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유네스코가 정치화됐다며 “모든 유엔 기구를 같은 렌즈로 평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헤브론의 20%를 점령하고 있으며, 구시가지의 족장 묘에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야곱이 잠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탈퇴 결정에 대해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증오를 막기 위한 교육 및 문화 간 대화에 대한 새로운 투자가 요구되는 시점에 매우 유감스러운 조처”라고 밝혔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도덕적이고 용감한 행동이라며, 이스라엘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고 빈곤국 여성 교육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기구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유엔과 마찬가지로 이 기구의 창립을 주도한 미국이 문을 걷어차고 나간 것에는 국제기구가 자국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배경에 있다.

미국의 국제기구 길들이기는 다른 곳에서도 진행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대출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세계은행의 자본 확충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우리는 중국의 발전을 도울 뿐 아니라, 중국에서 얻는 교훈이 다른 개발도상국들과의 협력에 매우 도움이 된다”며 대중국 대출은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반론을 내놨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결정의 도화선이 된 헤브론 구시가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운동 때부터 유엔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는 등 국제기구들에 대한 불신을 표출해왔다. 그는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주권’ 또는 ‘주권적’이라는 표현을 21차례나 쓰며 ‘미국 우선주의’를 재강조했다. 앞서 미국은 온실가스 축소 노력의 결정체인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해 큰 비난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폐기 카드를 꺼내는 등 경제 분야에서도 고립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이 안 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불신도 표출해왔다. 최근 삼성전자 제품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처) 발동 검토 등 일방주의적 무역 보복 관행으로의 복귀 카드도 꺼냈다.

일련의 탈퇴와 파기 행진의 배경은 단순하다. 경제적 기여만큼 소출이 따라주지 않으면 빠진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유럽 방문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을 상대로 ‘자동 개입 조항’을 재확인해주지는 않고 방위비 지출을 늘리라고 훈계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2차대전 이후 주요 국제기구들을 만든 장본인인 미국은 이를 토대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가시적 손익만 따지는 것은 근시안적이며, 기후협정 탈퇴 등은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국가 이미지에도 먹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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