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의 행인일기 62]동경에서 2

입력 2017. 10. 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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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

우에노(上野)공원은 언제나 북적입니다. 숲과 연못과 산책로가 좋은데다, 보고 즐길 곳도 많은 까닭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더 복잡하고 부산합니다. 동물원의 '아기 판다'를 보러온 사람들 줄은 정거장까지 이어졌습니다. '무서운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 행렬 끝에는 '대기시간 70분' 푯말이 보였습니다.

 엄청난 인파에 질려서, 제 계획도 퍽이나 망설여졌습니다. 공원 전체가 인산인해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판다'와 '무서운 그림'의 경쟁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 동경국립박물관엔 '천재불사(佛師)', '우주최고의 조각가'로 떠받들어지는 '운케이(運慶)'가 와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크리스티경매에 등장한 1280만 달러짜리 목제불상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헤이안(平安) 후기에서 가마쿠라(鎌倉)시대에 걸쳐 활동했지요. 아버지 고케이(康慶), 동생 카이케이(快慶)등과 함께 독특한 유파와 양식을 창조한 인물입니다.

 이 전시회를 마련한 사람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몇 개의 절을 통째로 옮겨 놓았다 해도 좋을 만큼 과감한 발상의 산물이니까요. 비유하자면,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인 셈입니다. 아미타여래와 사천왕, 동자(童子)와 조사(祖師)들이 그 형형한 눈빛으로 반가움을 표현합니다.

 위대한 손이 이뤄놓은 조홧속입니다. 옥(玉)으로 만들어진 눈동자가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바람에 날릴 것처럼 사실적인 옷의 주름에서, 조각상의 신체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어납니다. 실제로 모델을 세우고 골격과 근육을 묘사했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추론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운케이' 가문 삼대, 케이파(慶派) 조각가들의 감성은 나이브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지요. 관음보살상의 한쪽 다리가 좌대 아래로 늘어져 있습니다. 마치 오랜 결가부좌에 지친 보살이 슬며시 다리를 내려놓고 쉬는 포즈입니다. 저는 이 모습에서 위대한 장인(匠人)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읽습니다.

 주목할 것은 천재의 솜씨만이 아닙니다. 천 년이 지난 물건을 이렇게 근사하게 살려놓은, 후손들의 눈썰미지요.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부려가면서 작품이 지닌 아우라(aura)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비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보급문화재의 맨 얼굴을 보여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전시는 작품을 모아서 늘어놓는 일이 아니라, 관객과의 바람직한 소통의 통로를 열어주는 일이지요. 관객과 작가가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의자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물론 '가상의 의자'지요. 그런 전시장의 작품들은 많은 말을 합니다. 관객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한글 번역까지 붙여놓은 것은 무척 잘한 일입니다. 일본 문화예술의 상류(上流)였던 나라 사람들을 위한, 예의와 배려라면 더욱 고무적인 일입니다. 반가운 얼굴도 보았습니다. 선묘낭자. 여기서는 '신'의 반열에 오른 여인입니다. '선묘신 입상(善妙神立像'). 신라 스님 의상대사의 연인, 당나라 처녀입니다.

 의상의 유학시절, 스님에게 반해서 신라까지 따라왔지요. 그녀가 보여준 능력은 인간 이상이었습니다. '용'이 되어 스님의 배를 신라까지 호위하고, 영주 부석사를 지을 때는 공중에 '뜬 돌(浮石)'이 되어 훼방꾼들을 물리쳤습니다. 무량수전 왼쪽에 그 돌 '부석'이 있고, 오른쪽에 그녀를 모신 '선묘각'이 있지요.

 눈에 익은 동자상도 있습니다. 머리모양이 영락없는 '피구왕 통키'입니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머리. 악을 물리치는 진리의 수호신이, 목표를 향한 열정과 투지가 넘치는 용맹스런 소년의 캐릭터로 태어난 것입니다. 순간, 이 전시회가 흡사 한글자막이 있는 일본 시대극(時代劇)처럼 보입니다.

 또 어떤 역사의 곳간을 열고, 먼지를 털어서 자존감을 높여볼까 끊임없이 연구하는 나라답습니다. 우리는 별 것 아니라고 밀쳐버리는 것도, 이들은 이리 생각하고 저리 궁리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쓸고 닦습니다. 싸고 또 쌉니다. 묶고 또 묶습니다. 울타리를 두르고 자물쇠를 채웁니다.

 온갖 수식과 언어의 '인플레'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생산합니다. 호재(好材)다 싶으면, 온 나라가 매달립니다. '운케이 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잡지들이 다투어 특집을 마련했더군요. 출판사는 전집을 만들고, 사찰들은 이벤트를 펼칩니다. 책방은 특별코너를 꾸미고, 신문사는 호외(號外)를 찍습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눈길 가닿는 곳마다 '운케이'가 있습니다. 온 국민이 손나팔을 만들어 한 예술가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우리가 찾아내고 새롭게 불러내야 하는 이는 누굴까 생각해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불러줄 날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누굴까요? 어서 불려 나와야 할 사람과 불러내 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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