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폭력이냐 불평등이냐'.. 다른 선택은 없는가

입력 2017.10.12. 19:56 수정 2017.10.16. 15:56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선사시대부터 따져본 불평등의 역사
평화 길수록 불평등 커지는 모순
불평등 완화시킨 폭력의 '네 기사'는
전쟁·혁명·체제붕괴·전염병

[한겨레]

불평등의 역사
발터 샤이델 지음·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4만원

2015년 지구상 최고 부자 62명의 순자산은 인류 절반인 하위 35억명의 그것을 합친 것과 맞먹었다. 같은 비교를 했을 때 2014년에는 부자 85명이, 2010년에는 388명이 필요했다. 지구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단적인 증거다. 빈익빈 부익부, 요즈음 들어 생겨난 현상일까?

<불평등의 역사> 지은이 발터 샤이델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2000년 전 로마, 최대 개인재산은 연평균 개인소득의 150만 배에 이르렀는데, 이는 빌 게이츠와 평균적인 미국인 사이의 비율과 비슷했다. 지은이는 인간이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고 잉여를 자손한테 넘겨준 이래 경제적 불평등은 인류문명의 자질이 되었다고 말한다. 물려받은 지위와 불평등의 가장 오래된 사례는 모스크바 북쪽 120㎞ 떨어진 숭기르 유적에서 나왔다. 최대 3만4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매머드 상아로 만든 반지와 구슬 3000여개를 부장한 성인남자와 1만개의 상아구슬 장식과 함께 묻힌 소년, 소녀의 유골이 안장돼 있었다.

알브레히트 뒤러 ‘묵시록’ 연작 판화 중 <묵시록의 네 기사>.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지은이는 로렌츠 곡선을 활용하여 불평등 정도를 0~1로 표시하는 지니계수와 부의 상하분위 백분율 비교로써 불평등을 잰다. 이런 잣대는 현대에 들어 개발됐는데, 지은이는 현대 잣대를 선사시대까지 확대 적용한다. 예컨대 흑해 연안에서 발굴된 기원전 5000년 공동묘지. 200여개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총계를 바탕으로 1기당 평균치를 내고 이를 개별 무덤의 유물 개수와 비교하여 개별 무덤 주인이 위치한 부의 백분율을 계산한다. 그는 유사한 방식으로 세대 간 이동성을 계산해내어 수렵채취인 사이에서 부자인 상위 10분위 자손이 그 지위를 재생산할 가능성이 최하위 10분위 자손보다 3배가 높다고 보았다. 농경인은 11배, 목축인은 20배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지은이는 이런 식으로 석기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의 역사를 개관한다. 거칠게 말하면 부는 만들기와 차지하기로 형성된다. 지은이는 재배와 사육을 기반으로 한 만들기보다 제도와 권력의 비대칭성에서 말미암은 차지하기가 불평등을 심화하는 데 큰 몫을 한다고 본다. 평화기가 길수록 불평등이 커진 점은 아이러니다. 한, 수, 당, 송, 명, 청 등의 중국 왕조를 보면 후기에 이를수록 탈세와 토지 겸병이 횡행하여 부가 집중됐다. 서양도 마찬가지인데, 폼페이 유적지에서 계층화가 확연히 보인다. 3만~4만 공동체에 분포된 50개 대저택, 100개 고급주택, 그리고 한 몸 겨우 뉠 참사회 의원의 문지기 방까지. 대저택과 2층 구조물 대부분이 작은 집 대여섯 채를 터서 만들어진 흔적에서 중산층을 희생하며 양극화가 진행됐음을 읽을 수 있다.

평등 세상은 꿈인가? 지은이는 평등한 세상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 때 조심하라고 권한다. 잘못하면 ‘묵시록의 네 기사’를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평등은 극소수 예외를 빼면 항상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탄생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지은이는 알브레히트 뒤러 판화 속 ‘묵시록의 네 기사’를 본뜬 ‘평준화의 네 기사’는 곧 전쟁, 혁명, 국가실패와 체제붕괴, 전염병이다. 역사를 훑어보면 그들이 출몰할 때 비로소 무자비한 폭력과 함께 경제적 평등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전쟁. 1938년 일본에선 1% 부자가 국민소득 19.9%를 벌어들였다. 7년 뒤 1%의 소득 점유율은 6.4%로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엄청난 살육과 파괴 때문이었다. 프랑스, 영국, 미국도 사정은 비슷해 상위 그룹의 재산가치가 급격하게 추락하며 불평등 구조를 완화시켰다.

혁명. 1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적인 불평등 감소가 뒤따른 곳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였다. 부농 숙청과 토지 국유화, 노동자들의 공장 점유로 제정 러시아 말엽 0.362이던 지니계수가 1967년에 이르면 0.229로 완화됐다.

국가실패. 소말리아에선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전복된 뒤 군벌 싸움으로 영토가 분열된 이래 정부 체제를 갖지 못했다. 편파적인 혜택을 전유하던 파워엘리트와 조직적인 도농 차별정책이 소멸된 결과, 1997년 0.4였던 소말리아 지니계수는 이웃국가들(0.47) 및 서아프리카(0.45)보다 낮았다고 한다.

평등으로 가는 마지막 동력인 전염병. 대표적인 사례가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다. 전염병 창궐로 1300년 9400만명이던 유럽 인구는 1400년 6800만명으로 줄었다. 전체 인구 중 4분의 1이 병사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가장 심해 600만에 이르던 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경제 인프라는 그대로인 채 극적인 인구 축소를 불러 1인당 생산량과 수입이 크게 늘고 지대와 이자율이 임금과 비교하여 현저하게 떨어졌다.

지금도 팽배한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네 기사를 불러내야 하는가? 지은이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안으로 몇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렇게 신통치 않아 보인다.

토지개혁. 인류 대부분은 대체로 땅을 파서 먹고살았고 일반적으로 농경지가 사유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토지개혁은 마땅히 최우선 고려할 만하다. 이론적으로 빈민한테 혜택을 주기 위해 사회가 토지 소유권을 평화롭게 조정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없다. 하지만 성공적인 토지개혁은 거의 예외없이 폭력행사나 위협에 의존했다. 지은이는 1950년대 초 한국 토지개혁이 잠재된 폭력에 대한 우려에서 촉발됐다고 말한다. 북한이 1946년에 이미 토지개혁을 완료한 터, 이승만 정권엔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남한 소작인들을 동요시킬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당시 남한은 농촌가구의 3% 미만인 지주가 전체 토지의 3분의 2를 소유한 반면 58%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분배 결과 소작인 비율은 49%에서 7%로 떨어졌다. 각 나라의 토지개혁을 보면 폭력을 동반할수록 완성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밖에 민주주의,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 등을 거론하는데, 이들은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다 불평등을 더 심화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좌파 정부의 복지정책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지은이의 시각을 따라가면 평등 세상을 꿈꾸는 게 무망해 보인다. 다만, 왜 불평등이 지속되는지, 왜 쉽게 극복할 수 없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이란 황금빛 대동세상의 그림자. 인류 문명의 질곡이자 최대 도전 대상임을 분명히 한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