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언론·민사 대응 '깨알 지시'..이병기, 김기춘 뺨쳤다

정환보·김한솔 기자 2017. 10. 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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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청 비서실장 지시사항 문건’ 공개
ㆍ“백남기 농민 대응 방안 준비”…보수단체들에 맞불집회 독려
ㆍ“폭력시위 강조 보도” 언론 활용 지시…검찰엔 ‘무관용’ 주문

2015년 11월 경찰은 당시 68세였던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직격 살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70·사진)이 컨트롤타워의 중심에서 집회 강경 대응은 물론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까지 배후에서 깨알같이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복역 중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후임자로, 인적쇄신 차원에서 임명된 그였지만 전임자 못지않게 정부 비판 세력을 전방위로 옥죄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백씨에 대한 정부 대응 준비”

경향신문이 1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을 통해 입수한 이른바 ‘청와대 캐비닛 문건’ 가운데 2015~2016년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 발췌본에는 이 같은 내용들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2015년 11월 이 실장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14일로 예정된 ‘민중총궐기 집회’를 “범좌파세력 등이 총집결하는 대회”로 규정하며 강력하고 엄정한 대응을 사전 주문했다.

집회 다음날인 15일에는 “경찰 대응이 너무 방어적”이었다며 현기환 정무수석에게 “범법행위자를 철저히 색출해 엄단하고 손배(손해배상소송) 추진”을 지시했다.

지시사항에는 “병원 이송된 시위자 백모씨가 중상인데, 향후 상황변화에 대비한 정부 대응방안도 준비할 것”이라는 부분도 있었다. 이듬해 6월 정무수석에 임명된 현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이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으로부터 백남기 농민의 병세와 가족 반응 등을 보고받은 것과 맞물려, 청와대가 이 문제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실장은 다음날도 “내일(11·17) 국무회의 시 총리께서 주말 불법시위에 대한 정부의 무관용 엄단 입장을 재차 강조토록 할 것”을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했다.

당시 황교안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사전에 준비된 불법·폭력시위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후진적 행태인 동시에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법무부, 검찰 등은 불법필벌의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해 달라”고 했고 이후 공안정국이 조성됐다.

■ “보수단체 집회” “우호언론 활용”

이 실장은 “최대한 결집된 보수세력 목소리가 명확히 전달되도록”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 보수단체를 통한 맞대응 규탄집회도 지시했다. 앞서 비서실장으로서 국정교과서 지지 집회에 특정 단체 동원을 지시했다는 법정 증언도 이미 나와 있다.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직하다 청와대로 옮겨온 이력으로 인해 ‘화이트리스트’ 불법 지원 의혹은 더욱 짙어진 상황이다.

언론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2015년 11월22일 “민노총이 위축되는 양상인데, 이번 기회에 언론을 통해 민노총의 실체가 집중 조명되도록 하여, 차제에 민낯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할 것”을 김성우 홍보수석에게 지시했다.

신문 특별판 배포를 준비하는 한겨레에 대한 “동향 파악·필요시 적의 대응” 지시는 언론사 사찰 논란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 시 언론이 폭력 시위를 강조 보도해 정부로서는 도움이 됐다” “집회에서 폭력 등이 있을 경우 국민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도록 할 것”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시민들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히라는 지시도 누차 등장했다.

이 실장은 2016년 3월 “금전적 배상책임을 따지는 것이 불법시위 근절에 도움”이라면서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끝까지 관심을 갖고 민사상 책임을 묻도록 할 필요”라고 밝혔다. 4월에도 해군의 제주기지 구상권 청구소송을 언급하며 “금전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시위 근절에 가장 효과적”이라며 “중간에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하라”고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에게 지시했다.

<정환보·김한솔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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