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전에 표정 어두워진 축구협회, 무엇을 느꼈나

이근승 입력 2017. 10. 11. 10:05 수정 2017. 10. 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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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협회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 이근승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짓고 떠난 유럽 원정은 처참했다. 결과가 필요한 평가전을 치렀지만, 2경기에서 3골을 넣고 7실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 경기에 나선 선수들 모두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팬들도 "한국 축구가 이토록 못할 때가 있었나"라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0일 오후 10시 30분(이하 한국 시간) 스위스 빌비엔의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1-3으로 패했다. 대표팀은 지난 7일 러시아전(2-4)의 아쉬움을 털어내기 위해 필승을 다짐했지만, 월드컵 본선에 걸맞은 실력을 자랑한 모로코와 실력 차만 확인했다.

모로코는 지난 8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C조 5차전 가봉(3-0)전과 비교해 선발 명단 전원이 바뀌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헤타페에서 활약하고 있는 페이살 파이르를 제외하면, A매치 10경기 이상 뛴 선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전은 실험이 우선이었고, 결과는 그다음이었다.

우리 대표팀도 K리거를 배제하면서, 완전한 1군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선발 명단에는 손흥민과 기성용, 지동원, 장현수, 남태희, 김기희 등 최종예선 기간 대표팀 중심에 섰던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러시아전과 비교해 선발 명단에 8명이 바뀌었지만, 실험보다는 결과에 초점이 맞춰졌다. 

두 수 위의 모로코, 이것이 월드컵 본선 수준입니까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모로코에게 세번째 골을 허용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로코는 매우 강했다. 아직 러시아행을 확정 짓지는 못했지만, 우리보다 두 수는 앞서는 듯한 경기력을 자랑하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모로코의 공격을 책임진 우사마 탄난이 전반 6분 선제골을 터뜨렸고, 4분 뒤에는 멀티골을 작성했다. 우리 대표팀은 한 박자 빠른 패스와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한 상대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우측 수비를 책임진 이청용은 엘 하다드의 빠른 발과 개인기를 막아내지 못했고, 장현수가 이끄는 중앙 수비진은 상대 스피드와 드리블에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중원도 심한 열세를 보이며, 암담한 초반 흐름을 뒤집는 데 실패했다.

신태용 감독은 전반 27분, 남태희와 김보경, 김기희를 빼고 권창훈과 구자철, 정우영을 투입하며 변화를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수비는 계속해서 불안감을 유지했고, 공격은 모로코와 달리 속도가 느리고 날카로움이 없었다. 특히, 모로코 선수들과 1:1 싸움에서 큰 기량 차를 드러내는 등 도무지 해법이 보이질 않았다.

모로코는 후반 1분, 세 번째 득점까지 터뜨렸다. 전반 초반부터 이청용이 위치한 측면을 마음껏 휘저은 엘 하다드가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중원에서 스피드를 활용한 상대 드리블에 속수무책으로 공간을 내줬고, 뒷공간을 파고든 엘 하다드의 강력한 슈팅에 무너졌다. 세 번째 실점 장면에서도 압박이나 공간 커버, 수비 조직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후반 20분, 손흥민의 페널티킥 득점으로 영패는 모면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로코의 세 번째 득점 이후 압박과 의지가 떨어진 것이 눈에 띄었지만, 우리는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중원과 수비는 90분 내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고, 조직적인 공격 전개 과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1-3. 대표팀은 이전에도 갖고 있던 문제들을 또다시 확인한 채 유럽 원정을 마무리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축구협회, 무엇을 느꼈을까

대표팀에게 10월 유럽 원정은 어떤 의미였을까. 현장에서 경기를 관전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이하 KFA)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과 간부 및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실 유럽 원정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이번 대표팀 명단을 보면, 최종예선에서 중심에 섰던 이들이 대다수였다. K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제외됐지만, 최종예선에서 K리거가 중용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최종예선에서 김기희와 장현수, 김영권 등은 수비의 핵심이었고, 구자철과 정우영 등은 중원을 지켰다. 손흥민과 지동원은 공격의 중심이었고, 남태희와 황의조 등의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차례 드러냈고, 한계도 예상했던 만큼 유럽 원정 결과에 대한 충격은 크지 않다.

대표팀이 나아가려면 구성이 바뀌어야 한다. 기성용과 구자철, 손흥민 등 대표팀 주전이 당연한 유럽파들도 경쟁이 필요하다. 김기희와 김영권, 장현수 등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대표팀 핵심으로 떠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축구는 사라진 경쟁이 불러온 결과를 돌아보며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대표팀 구성원이 바뀌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 한국 축구의 운명을 책임지는 KFA다. 우리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조광래와 최강희, 홍명보를 거치고, 슈틸리케를 지나 신태용까지 오면서, KFA는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을 지휘하는 수장만 바뀌었지, KFA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KFA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 매번 실패했고, 지도자를 선임하는 안목에 심각한 결점을 드러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지휘봉을 잡은 움베르투 코엘류,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을 생각해보라.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대표팀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볼 수 없다.  

KFA는 한국 축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마음껏 휘둘렀고, 책임에도 자유로웠다. 홍명보를 방패막이 삼아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나. 당시 KFA 부회장 겸 단장이었던 허정무는 고위직에서 물러나는 듯 보였지만, 금세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로 자리를 옮겼다. 얼마 전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이끌 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무거워야 할 책임을 가볍게 여기는 풍토가 축구계에 만연하다.

최근 KFA는 신태용 감독을 흔들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느냐 마느냐 하는 여론에 '짜증'으로 대응하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 조중연 전 협회장과 이회택 전 부회장, 김주성 전 사무총장 등 KFA 핵심 인사들이 비리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홈페이지 사과문 한 장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신태용 감독을 뒤흔드는 것은 민심이 아닌 KFA란 사실을 모른다.

이날 현지 중계 카메라에 잡힌 KFA 인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런데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마음속까지 새까매진 상태다.

한국 축구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끝없는 성원을 보냈음에도 돌려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길. 한국 축구의 주인은 KFA가 아닌 팬이란 것을 되새기길.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명장과 뛰어난 선수가 아닌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협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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