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택, 충분할까? 모자랄까?

2017. 10. 1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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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신규 공급 물량을 둘러싼 정반대 시각… 어느 쪽 주장이 맞나

“하물며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왜 나만 없어 집!”

10월 방영을 시작한 한 케이블채널 드라마 속 대사다. 청년층의 주거난 세태는 어느덧 드라마에도 반영돼 ‘달팽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홈리스와 ‘현관만 내 집’인 하우스푸어 집주인이 등장한다.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무주택자라면 끝없이 펼쳐지는 아파트촌을 바라보며 한 번쯤 내뱉었을 말도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라는 한탄일 것이다.

집은 많지만 살 수 있는 집은 적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세 차례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집값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청약시장도 서울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경쟁률이 수백 대 1까지 치솟는 등 ‘로또 청약’ 얘기가 나오는 반면, 지방에선 미분양이 속출하는 등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꾸준히 뛰고 있는 서울 집값을 둘러싼 해법 역시 논란거리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집값 급등이 일차적으로는 저금리에 따른 유동자금의 부동산 쏠림 때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유독 서울의 주택 공급량을 둘러싸고는 해묵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서울지역 주택 공급 부족을 지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서울 특히 강남권에 공급을 늘린다 해도 건설사와 부유층만 수혜를 볼 것이라고 반박한다. 서울 주택은 정말 모자란 걸까?

'집이 이렇게 많은데…'. 집은 많지만 '살 수 있는 집'은 적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서울 집값은 정말 '주택 공급 부족' 때문일까? 사진은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 김정근 기자

주택 공급량을 둘러싼 논란

주택 공급량을 따지는 지표에는 아파트 신규분양 물량과 인·허가 물량 등이 있지만, 가장 즉각적으로 수급을 따질 수 있는 지표는 바로 입주물량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예정된 수도권의 입주물량은 28만6000가구. 내년에는 31만6000가구이다. 최근 5년 연평균 입주물량(20만5000가구)보다 40~50% 많은 수치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 경기부양론의 결과, 2015년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분양물량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서울만 놓고 보더라도 예년보다 많다. 올해와 내년 서울의 입주물량은 각각 7만5000가구, 7만4000가구로 최근 5년 평균(7만2000가구)을 웃돈다.

그러나 같은 지표를 놓고서도 분석은 엇갈린다. 국토부는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공급량이 예년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공급 여건은 안정적이라는 입장이다. 집값이 들썩인 이유는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투기수요에 있다는 것이 현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부동산 과열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에 대해서도 강남 4구의 올해와 내년 입주물량이 각각 1만9000가구와 2만4000가구로 최근 5년 평균(1만7000가구)을 웃돈다는 것이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역시 “강남 물량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재건축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폐지해 강남권 재건축사업이 많이 시행됐고, 지난 몇 년 평균치에 비해 3배가 더 허가됐다”면서 “이 문제를 수요·공급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고 반박한 바 있다.

정반대 시각도 있다. 주택시장은 지역 간 대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활권을 중심으로 세분화해서 봐야 하는데, 수요가 쏠리는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여전히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은 더 이상 신규 아파트를 지을 여력이 없어 주택 공급의 대부분을 재개발·재건축사업에 의존하는데, 정부 규제로 도시정비사업이 지연되면 공급 부족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올해와 내년 입주물량이 최근 5년간의 평균치와 큰 차이가 없고, 이 정도로는 서울의 ‘주택 갈증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부의 추가대책을 피하기 위해 현재 재건축·재개발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내년까지는 공급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후년 이후에는 달라질 수 있다”면서 “임대수요는 서울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수도권으로 넘어가게 되지만, 내 집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주택 공급이 줄면 신규 주택의 가치가 오르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잇달아 나온 부동산 대책이 ‘수요 억제’에만 초점을 둔 것을 우려하는 시장 일각의 목소리도 있다. ‘투기세력과 전쟁’을 벌였던 노무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에서는 부동산 대책으로 수요 관리와 함께 공급 확대방안을 담았는데, 이제까지 나온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공급문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참여정부에서도 고강도 정책으로 꼽히는 2005년 8·31 대책에선 200만평 규모의 위례신도시 건설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서울에 집중된 수요를 인근 신도시로 분산한다는 계획이었다. 공급계획을 수반하지 않은 단기적인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없을 뿐더러 주택시장의 왜곡만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지으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 가능할까

이런 주장대로 주택이 늘어나면 내 집 마련도 쉬워질까. 이제까지의 지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2008년 이미 100%를 넘어섰고, 2015년 말 기준 102.3%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모든 가구가 집을 한 채씩 갖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가보유율(거주 장소와 상관없이 자기 주택을 소유한 비율)은 지난해 기준 59.9%로 10가구당 6가구 수준이었다.

문제는 역시 인구 집중이 심한 서울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2005년 93.7%에서 10년 후인 2015년 96.0%로 늘어났다. 반면 자가보유율은 같은 기간 44.6%에서 41.1%로 떨어졌다. 주택은 늘었지만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는 줄어든 셈이다. 다주택자들의 주택 구매가 늘었다는 얘기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3.9%였던 다주택자(2주택 이상)의 서울 주택 매수 비중은 2015년 6.0%로 뛰어올랐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13.9%까지 치솟는 등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주택 부자 상위 1%가 평균 7채의 집을 보유했으며, 부자들의 이런 ‘집 컬렉션’은 9년새 3배로 늘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저금리 기조로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부유층의 돈이 부동산에 쏠린 결과다. 박근혜 정부에서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8월 발표한 ‘2017 한국 부자 보고서’를 보면, 국내 부자들(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개인)은 대체로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보유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52.2%로 가장 컸고, 향후 유망한 부동산 투자처로 재건축 아파트(27.7%)를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경기침체가 이어져도 부동산을 처분하겠다는 응답은 5명 중 1명(20.2%)에 그쳤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믿을 건 부동산뿐’이라는 불패 신화가 굳건한 셈이다.

이 같은 ‘주택 쏠림’ 현상이 이어지며 지난 10년간 서울지역의 자가주택 비율은 2.5%포인트 떨어진 반면, 월세 비율은 10.9%포인트나 상승했다. 물론 자가 축소 및 월세 확대는 서울 가구의 절반 이상이 1~2인 가구로 가구 규모가 축소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러나 집이 없더라도 대다수 서울 사람들의 욕망은 여전히 ‘인 서울’, 그리고 아파트에 쏠린다. 서울시가 지난해 10년 후 희망하는 거주형태를 조사해보니 10명 중 6명(61.1%)이 아파트를 꼽았고, 10년 후에도 서울에 거주하기를 희망(59.7%)했다.

서울 잠실의 아파트 상가 내 공인중개사무소 모습. / 이준헌 기자

‘어떤 공급’이 문제인가

자가보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서 집을 추가로 지어 서울에 ‘바벨탑’을 쌓을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을 다른 관점에서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서울 주택 공급 부족론은 건설사의 이해와 맞물린 위험한 주장”이라며 “공급문제는 집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투기목적의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게 공급을 유도하는 방식이고, 그 방법은 보유세 강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괜찮은 임대주택’ 확대로 서울의 주택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의 패러다임을 ‘소유’에서 ‘임대’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주택 공급량 논란이 단선적으로 얘기되는 측면이 있는데, 부담 가능한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본다”면서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처럼 저소득층 중심이 아니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양하게 공공·사회임대주택을 공급해 집을 빌려쓰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되도록 주택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욕망은 그간 자가 보유가 경제적으로 이득이었기 때문인데, 집을 빌려쓰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 기획이사는 “어떤 면에서 ‘내 집 마련’ 중심의 주택정책은 그 시효가 다했으며, 세대차별적 정책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당장 서울시 조사만 봐도, 지난해 30대 가구주의 월세 비중은 2명 중 1명(45.6%)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새 2.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증가폭이 가팔랐다.

이태경 사무처장 역시 “안정적인 임대차시장이 있으면 주택을 꼭 보유해야 한다는 관점이 바뀔 수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소유에서 임대로 마음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제도를 그렇게 설계하고 유도해야 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연 17만호씩 공급하겠다고 밝혔는데, 재원을 좀 더 투입하더라도 공적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공언처럼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소수 투기세력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바뀌어야 하며, 이는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얘기다. 권일 리서치팀장은 “소유에서 임대로의 전환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지금 정부에서 토대를 만들어주고, 향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꾸준하게 임대주택 공급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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