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부활자' 김래원, 곽경택 감독 '빵' 터진 이유?

나원정 2017. 10. 1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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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부활자' 김래원 인터뷰
"극단적이지 않은 작품 더 드물어
나는 가슴으로 우는 남자"
'희생부활자' 김래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죄수들이 밤마다 탈출해 범죄를 저지르는 교도소 ‘프리즌’(3월 23일 개봉, 나현 감독)에서, 올 초 290만 관객을 이끌고 출소한 이 남자. 곽경택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영화 ‘희생부활자’(10월 12일 개봉)에선 눈앞에서 엄마(김해숙)를 잃은 지 7년 만에 살해당한 엄마가 되살아난다. 복수를 위해 돌아온 RV(Resurrected Victims), 즉 희생부활자가 되어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칼을 휘두른 대상이 다름 아닌 검사인 자신이다.

부패 수사로 시한부 삶에 멋진 안녕을 고한 박정환 검사 역으로 사랑받은 TV 드라마 ‘펀치’(2014~2015, SBS)에 이어, 다시 벼랑 끝에 내몰린 검사가 된 배우 김래원(36). 2년 전 슬럼프를 딛고 더 단단해졌기 때문일까. magazine M을 찾은 그에게서, 어떤 운명도 품어 안을 관대한 각오가 느껴졌다.

Q : ―‘희생부활자’의 서진홍 검사는 ‘프리즌’의 유건 못지않게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이다. A : “요즘 한국영화 70~80%가 그런 것 같다. 극단적이지 않은 작품이 더 드물다.”

Q : ―‘희생부활자’가 눈에 띄었던 이유라면. A : “RV라는 소재가 조금 어려워도 재밌더라. 진홍에겐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잖아. 살해당한 엄마가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왔는데, 경찰은 그를 살해 용의자로 의심하고, 국정원은 사건 전체를 덮으려고 한다. 딱 책(시나리오)만 보고 결정했다기보다, 곽경택 감독님을 믿고 갔다.”

Q : ―‘곽경택 영화’ 하면 억눌린 운명을 잡초처럼 헤쳐 나가는 남성상이 떠오른다. 그 때문에 곽 감독과 작업하기 원하는 남자 배우가 많았다. 반면 진홍은 품안의 자식으로 반듯하게 자라 검사가 된 모범생 같은 인물인데. A : “나도 이번 영화 하면서 그 얘기 했다. ‘원래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거친 남자 역할, 저도 주세요’ 하고. 감독님이 ‘알았다’고 ‘나중에 이런 영화 할 건데, 관심 있냐?’ 하시기도 했다. 감독님이 날 예뻐하신다. 오래 전 다른 작품으로 제안 주셨을 때 사정이 있어 못했거든. 나중에 한 번만 더 찾아달라고, 배우고 싶은 게 많다고 말씀 드렸는데, 잊지 않고 이번에 연락 주신 거다.”

'희생부활자'

Q : ―2015년 9월 크랭크인했다. 첫 촬영이 기억나나. A : “사이클 신이었다. 철인 3종 경기 장면을 그날 하나 찍고 그 다음 달에 나머지 둘을 찍었거든.”

Q : ―혹독한 출발이다. A : “달리기랑 자전거야 뭐…, 촬영할 때 지치지 않을 만큼 연습한 정도다. 강원도 고성 3·8선 바로 밑에서 촬영했는데, 좀 위험할 법도 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이라 바다 수영은 익숙해도, 10월의 동해는 정말 차니까. 영화에는 다 해야 2~3분 나오려나.”

Q : ―엄마 여읜 진홍의, 일종의 몸부림일까. A : “맞다. 보통 아들들이 그렇듯 생전 엄마한테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툭툭거렸던 데 대한 후회와 미련, 플러스 상처…. 그게 죽어라 달리고 수영하는 걸로 표현된다. 근데 검사가 취미로 철인 3종 경기를 한다는 게, 자기 일과 운동밖에 모른다는 얘기다. 얘는 사람들과 묘하게 어울리지도 않고 무표정하다. 감독님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Q : ―진홍은 계속해서 엄마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찾아 헤매지만, 그의 심리가 확실히 드러나는 건 막바지에 다다라서다. 연기하며 답답하진 않았나. A :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쉽지 않아서, 연출 의도를 파악하려고 촬영 전 감독님을 매일 쫓아다녔다. 다른 작품보다 딱 두 배 정도? 밥 먹고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담배 하나도 같이 폈다. 그렇게 준비해서 촬영장에 갔는데, 내 해석이 감독님과 다르더라. 난 진홍이 조금 내추럴한 인물일 줄 알았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며 생각한 진홍은 훨씬 건조했다. 대화할 때 상대방에 대한 호응이 전혀 없고, 초현실적인 현상이 일어나도 그냥 스윽 보는. 나는 불편했지, 움직이고 싶고…. 감독님은 그게 전략이었다. 진홍은 모호해야 했다. 그래야 그를 향한 의혹이 긴장감 있게 유지될 테니까.”

'희생부활자' 김래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Q : ―현장에서 곽 감독이 채워준 부분이 많다고 말했는데. A : “나름대로 그려 간 캐릭터가 잘 안 깨져서 자꾸 질문이 많아졌다. 현장에서 시간 낭비가 됐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어느 순간 아예 백지로 갔다. 감독님이 색깔을 주면 바로 입혔다. 유하 감독님과 ‘강남 1970’(2015) 때도 그런 편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나를 비웠던 적은 처음이다. 진홍이 마지막에 하는 중요한 대사도 감정을 많이 안 실었다. 너무 실었으면 감독님이 바로 ‘스톱’했을 거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나도 감정을 막 과하게 드러낸 적이 없더라. 슬플 때 얼굴이 빨개지고, 찡그리며 오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눈물이 별로 없다. 가슴으로 운다면 맞는 표현이겠지. 진홍도 같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그가 몸에 ‘배어’ 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예 백지로 갔다. 감독님이 색깔을 주면 바로 입혔다. 이렇게까지 나를 비웠던 적은 처음이다.

Q : ―역할이 몸에 ‘밴다’. 흥미로운 표현이다. A : “그럴 때가 있다. ‘프리즌’ 찍고 이틀 쉬고 바로 ‘닥터스’(2016, SBS) 촬영장에 갔다. 박신혜씨랑 헤어지는 장면이었는데, PD님이 너무 세다고 했다. 남자들이 득실대는 교도소 얘길 하다 왔잖아. 아이들도 보는 로맨틱 코미디를 찍기엔 안에서 배어나는 포스가 부담스러웠던 거다. 왜, 똑같이 슬퍼도 베이스가 아주 밝은 사람이 있고, 어두운 사람이 있듯이. ‘강남 1970’에서 건달 역 하고 한 달 만에 친한 후배를 만났을 땐 군인 같다면서 놀라더라. 지금은 구부정하게 편한 자세로 앉아있지만 그땐 안 그랬거든.”

Q : ―‘희생부활자’의 진홍은 어떻게 몸에 배어있었을까. A : “영화 전체 크랭크업 날, 한 컷인가 남기고 내 분량이 먼저 끝났다. 세트장엔 여전히 비 오고, 불 붙고 하는데, 혼자 피 닦고 젖은 옷 좀 말리고 15분 만에 돌아왔다. 모니터 앞에 딱 앉아 양파링 먹으면서 스태프들하고 농담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그걸 보고 ‘빵’ 터지셨다. ‘그렇게 환한 모습 두 달 만에 처음 본다’면서(웃음).”

Q : ―촬영 내내 얼마나 억눌려 있었으면. A : “감독님이 ‘쟤는 연기할 때 보면 불에도 뛰어들 기세’라고 할 정도였다.”

'희생부활자' 김래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Q : ―검사보단 아들로서 진홍의 모습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실제 어머니에게는 어떤 아들인가. A : “아주 평범하진 않은 것 같다. 내 입으로 말하려니 멋쩍은데, 어릴 적부터 책임감을 중시해왔다. 그런 만큼 어머니도 나를 믿어주셨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농구선수를 준비했을 때, 고등학교 들어가서 연기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딱 두 번 반대하셨지만, 진로 문제나 여러 중요한 결정은 결국 다 내 의지대로 했다. 요리를 좋아해서, 명절 같을 땐 주방 들어가서 거들어 드리곤 한다. 예전엔 아버지가, 남자는 주방 들어가는 거 아니라고 화를 내셨는데 이제는 별 말씀 안하시더라.”

Q : ―엄마 명숙으로 분한 김해숙과는 ‘해바라기’(2006, 강석범 감독) ‘천일의 약속’(2011, SBS)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이다. A : “선생님은 나한테 그냥 엄마다. 바로 만나 촬영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여서 힘이 됐다.”

Q : ―명숙은 헌신적인 모성부터 복수심에 찬 괴력의 RV까지 변신을 거듭한다. 어쩌면 주인공 진홍보다 보여줄 게 많은 캐릭터다. A : “정말이다. ‘희생부활자’는 엄마가 더 돋보이는 영화다.”

'희생부활자' 김래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Q : -배우에겐 자신이 더 빛나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나. A : “매번 그런 작품만 찾을 수는 없다. 내 연기하느라 바빠 서포트를 받는 데만 익숙해지면 ‘주고받을’ 줄 모르게 된다. 극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다양하게 서포트 해봐야 영화 전체를 풍성하게 살리면서 본인도 사는 법을 배운다. 나한테는 그게 최고의 배우다. 근데 어렵다. (TV 드라마 ‘나’(1996~1997, MBC)로 데뷔하고 연기 생활) 20년을 했는데도 아직 잘 못한다. 최근에는 머리로는 살짝 알 것도 같지만. 어쩌면 그래서 연기가 질리지 않는 것도 같다. 웬만한 분야는 습득이 빠른 편인데, 살면서 맘대로 안 되는 것에 더 오랫동안 집착하는 편이거든. 바둑·낚시·골프도 그렇고. 연기가 제일 맘대로 안 된다. 이제는 (내가 출연한 장면이) 차라리 ‘빨리 지나가라’ 그럴 때도 있다(웃음). 너무 세세하게 보면 잠 못 자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희생부활자' 김래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Q : ―승부욕도, 고집도 대단할 것 같다. A : “나이 들면서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Q : ―계기라면? A : “20대 초중반까진 내가 늘 막내였잖아. 따라야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오히려 반항하기도 했다. 배우가 마음이 편해야 연기도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런 환경이 안 되다보니까, 고집을 부려서라도 내 걸 가져가려고 했다. 이제는 어디 가면 선배 소리를 듣는 나이다. 모두가 편한 방향으로 배려하는 게 좋다. 그냥 좀 밝고, 가볍고 싶다. 내가 예민하고 피곤하면 같이 있는 사람들이 힘든데, 그건 싫으니까.”

Q : ―‘희생부활자’ 다음 계획은. A : “좋은 시나리오가 하나 있는데 출연 결정 전이라 밝히긴 이르다. 드라마도 한 편 보고 있다. 좋은 에너지를 드리고 싶다.”

'희생부활자' 김래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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