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임금에 트렌드 놓쳐 .. 쇠락한 영국차 따라가는 한국

문희철 2017. 10. 1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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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5곳 평균임금 9213만원
폴크스바겐보다 1173만원 많아
인기 많은 SUV 라인업 부족하고
생산비용 늘며 R&D 투자는 줄어
GM 한국 철수 땐 20조 경제손실
자동차 산업 10월 위기설 확산

산업은행은 2010년 대우자동차(현 한국GM) 지분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매각하면서 계약서에 최대주주(GM)의 주요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기했다. 이 권리의 효력 기한은 오는 16일까지다. 이날 이후 GM이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하더라도 산업은행이 이를 막을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은 하청업체가 단계적으로 1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 상위 업체에 납품하는 수직적 구조다. 한국GM의 국내 4개 공장에 납품하는 1차 벤더는 323개, 2차 벤더는 3000여 개에 달한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GM이 철수할 경우 즉시 1만6000명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협력업체 연쇄부도 등으로 최소 2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자동차 산업 ‘10월 위기설’이 확산하는 배경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물론 GM이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할지는 미지수다. 한국GM은 철수설을 부인하고 있다. 일단 연말에 구조조정을 진행해 보고 다음 단계를 논의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10월 위기설의 근본적 배경은 한국GM의 철수가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이다. 한때 ‘자동차 제국’이었던 영국의 전철을 한국이 그대로 밟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은 대량생산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했다. 한국도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한국차가 수출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결정적 원인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대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시장의 1~7월 SUV 판매순위 상위권에서는 한국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차가 중국 전략형 SUV라고 내놓은 차량인 ix25(74위·2만1258대)와 ix35(100위·1만1549대)조차 하위권이다. 현대차 투싼(28위·5만3629대)과 동급 SUV인 창청차 하푸는 같은 기간 5배(26만3872대) 팔렸다.

중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보복까지 겹치면서 올해 현대·기아차의 중국 누적 판매량(57만6974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104만3496대)에 비해 반 토막(44.7%)이 났다.

미국에서의 상황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년 전부터 미국 소비자는 세단보다 SUV와 픽업트럭을 선호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내놓는다던 현대차 싼타크루즈 픽업트럭은 아직도 안 나왔다. 현대·기아차 미국법인 1~9월 판매량(96만9333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2% 줄었다.

국산차 경쟁력 하락의 또 다른 배경은 세단 가격 경쟁력 약화다. 2004년식 뉴EF쏘나타는 1252만원부터 팔렸고, 2005년식 그랜저XG는 1869만원이었다(최저 공식 출고가격 기준). 하지만 불과 10여 년 만에 쏘나타(2255만원)·그랜저(3540만원) 모두 가격이 2배로 뛰었다. 10여 년 동안 국산차가 가격을 급격히 올리는 동안 수입차는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았다.

고비용 생산구조도 경쟁력 하락을 부추겼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 5개 완성차 제조사의 차량 1대당 노동시간(26.4시간)은 포드(21.3시간)·GM(23.4시간)·도요타(24.1시간) 등 경쟁업체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내 완성차 5개사 근로자는 지난해 임금(9213만원·2016년 기준)을 폴크스바겐 근로자(8040만원)보다 1173만원 더 많이 받았다. 매달 100만원가량을 더 받은 셈이다.

비효율적인 노사관계 역시 50년 전 영국과 판박이다. 현대차·기아차·한국GM 노동조합(노조)은 반 년째 임금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비용 증가는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된다. 독일 기업이 연구개발(R&D) 비용으로 49조원을 투자하는 동안 한국 자동차 제조사는 8조원을 투자했다(2015년 기준). 미국·일본 기업 R&D 투자비의 20~30% 수준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R&D 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지 않는다면 스마트카·자율주행차·수소차 등 미래차 시장에서 낙오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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