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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미술관] 아름다움을 거부한 '마초적 강렬함'의 미학

<1>추상미술의 거장 '마크 로스코'

러시아 출신…'스티브잡스가 사랑한 화가'로 유명

불분명한 경계선으로 내면 표현해 색면화가로 불려

'시그램 에피소드'는 탐욕과 타협않는 신념 엿보여





안녕하세요!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을 찾는 저는 직장생활 10년 차에 접어드는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보통 또래 여자들이 갖는 취미 아닌 취미라면 미술 전시회에 가는 것을 많이 꼽는데요.(맞습니다. 제가 딱 그 부류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나름 멋진 여가생활로 자부하며 지내는 동안, 그림을 감상할 때마다 그에 얽힌 배경지식을 알고 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감상법이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됐습니다.

분명 몇 시간 화랑을 돌며 그림을 봤지만 ‘대체 무엇을 본거지?’ 이런 느낌이 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머릿속에 조금이나마 감동을 남기기 위해 그림이나 작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이왕 돈 들여서 보는데 (물론 통의동이나 경복궁쪽 화랑은 거의 공짜이긴 하지만, 마네·모네·드가·르누아르급 전시는 보통 1만5,000원~2만원 하잖아요) 조금이나마 알고 감상하면 좋겠다 싶어서…. 저 혼자 알기엔 조금은 아까운 미술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전문가의 해박한 지식은 아니지만 ‘한 뼘’만큼의 얕은 지식이라도, 미약하게나마 그림 볼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뼘 미술관’ 첫 회를 시작합니다.

주황색 위에 자홍색, 검정색, 녹색,1949


여러분은 현대미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팝아트, 입체파, 앤디워홀, 칸딘스키, 피카소…. 대략 이 정도겠죠?

위 작품을 보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요. 그저 큰 캔버스에 쓱쓱 발라놓은 물감 덩어리로밖에 안 보인다고요? 저 역시 그랬답니다. 작가에 대해 알기 전에는 말이죠. 블로그나 SNS 화집으로만 보다가 (드디어!!!!!) 직접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을 찾아 만난 첫 느낌은 “와, 정말 강렬하다” 였습니다. 언뜻 보면 수묵화가 생각나기도 하고. 하여튼 컬러가 주는 압도감에 한동안 발걸음이 떠나질 않더군요.

아무런 형태를 알 수 없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러시아 출신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년)입니다. 그림 좀 안다 하는 사람은 ‘색면 추상주의의 선구자’ 정도로 알고 있을 텐데요. 추상미술의 거장 로스코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2015년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라는 타이틀로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렌지나 옐로 등의 밝은 색채를 쓴 작품과 바이올렛, 네이비 등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색상을 쓴 작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제, 1954,


이 그림을 보고선 노란 카스테라를 떠올렸습니다. (흠, 먹을게 생각나다니...배가 고팠나 봐요ㅜㅜ)

로스코는 역설적이게도 단 한 번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아름답다는 평을 극도로 혐오했다고 하네요. 자신의 그림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 부자들의 호화로운 저택을 장식하는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신의 작품이 벽지와 어울리는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극히 두려워했죠. 그래서인지 작품의 주가가 한참 오르던 1950년대 후반부터는 색이 어둡고 음울하게 변해 갑니다. 아래 그림처럼 말이죠.



시그램 벽화 스케치, 1959


그의 예술가로서 확고한 신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뉴욕 시그램빌딩 벽화 에피소드를 들 수 있는데요.

캐나다의 세계적 주류회사 시그램은 1958년 맨해튼에 신사옥을 완공하자, 1층 포시즌스 레스토랑(부자들을 위한 밥집이라 칭하고 싶네요) 벽면을 장식할 작품을 로스코에게 의뢰하게 됩니다. 포시즌 레스토랑은 1959년 문을 연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명사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어느 자리에서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스갯소리가 아닐 만큼 이 장소는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로스코는 이 의뢰를 예술과 탐욕, 정신과 물질, 그리고 본인과 맨해튼의 대결로 받아들이며(상류층의 입맛을 뚝 떨어뜨릴 속셈으로) 기꺼이 수락해 그림 아홉점을 거액에 계약하게 됩니다. 그는 뉴요커들의 오만함을 꺾어주고 싶어했죠.

로스코는 시그램 벽화 작업을 하던 중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되는데 피렌체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됩니다. 그 곳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산 로렌초 성당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으로, 시간이 지난 뒤 인터뷰에서 그는 시그램 벽화에 영감을 준 것은 바로 미켈란젤로가 만든 도서관 계단의 답답한 공간감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방은 방문객에게 문과 창문, 벽으로 밀폐된 공간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내가 꼭 원하던 그런 느낌이었다”라고 말했죠.

큰 영감을 받은 로스코는 여행을 다녀온 후 아내와 포시즌스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가게 됩니다. 정작 초호화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값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하며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주고받는 뉴요커들을 보곤 자신의 작품으로는 그들에게 아주 작은 깨달음조차 줄 수 없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적어도 그림 보고 기분 정도는 팍 상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거죠 )

그래서 결국 이전에 받은 7,000달러(약 795만원)의 계약금을 돌려주고 200만달러(약 22억7,000만원)의 큰 금액이 걸려있는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됩니다. 자신의 역작이 고급 레스토랑의 속물적인 곳에 장식품처럼 걸린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거죠.(아이고 아까워라!!!!!!!! 그냥 세상과 타협을 했더라면...)

마크 로스코가 죽기 전 마지막 그린 작품, 무제, 1970


그 뒤로 로스코는 점점 비극적 이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그는 1970년 2월25일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우울증과 건강악화, 이혼 등의 상황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마지막 선택이었던 거죠. 항우울제 과다 복용 상태에서 그는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고 합니다. 바닥에 흥건했던 피와 위 마지막 작품이 오버랩 되네요. 뭔가 자살하기 전 많은 명작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의 말년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당대 유명한 화가들은 왜 말년이 씁쓸한지... 너무나 강렬하지만 내면의 아픔이 서려 있는 로스코의 작품을 뉴욕을 방문한다면(쉑쉑버거만 맛보지 마시고. 물론 맨해튼에서 먹는 그 맛은 잊을 수 없어요ㅋㅋ) 현대 미술관(MOMA)에 들러 꼭꼭! 만나기를 바라며...

/이수진기자 ppo198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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