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지방 법정에 나타난 공지영 작가 '부글부글' 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남녀 성직자
허위 경력으로 장애인 복지시설 설립해
수억원 기부금 가로채..불법 봉침 시술도
女목사 "아이 5명 입양해 홀로 키운다" 홍보
알고 보니 2명은 수년간 어린이집에 맡기고
지적장애인 1명은 입양 두 달 만에 파양 조치
공 작가 "검찰 축소 수사 의혹. 재조사 필요"
집필과 강연 활동으로 바쁜 '스타 작가'는 왜 지방 법정에 나타났을까. 전주지검은 허위 경력증명서를 바탕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설립해 기부금 및 후원금 명목으로 3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로 A씨와 B씨를 지난 6월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개신교 목사인 A씨는 정부가 발급한 의료인 면허 없이 봉침(벌침)을 시술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장애인 시설 신축 공사와 사단법인 변경 명목으로 후원금 1억6500여만원을 가로채고,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고 1억4600만원을 모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사회복지시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것처럼 허위 경력증명서를 꾸며 전주시로부터 장애인 복지시설 신고증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지난 2008년 전주에 문을 연 장애인 복지시설엔 현재 장애인 1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날 법정에 선 A씨는 전직 신부 B씨의 면직 사유인 성추문에 등장하는 당사자라고 천주교 측이 전했다. A씨는 전주에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20년 넘게 장애인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 덕분에 '한국의 마더 테레사'로 불렸다. B씨는 신부 직을 잃은 뒤 A씨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의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A씨는 "나는 미혼모이며 아이 5명을 입양해 홀로 키우고 있다"고 주변에 홍보하며 후원금을 모금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A씨가 입양한 아이 중 2명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외부의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수년간 키워졌다. 또 A씨가 2013년 입양한 20대 중반의 1급 지적장애인은 두 달 만에 파양된 것으로 드러났다.
자칭 '봉침 전문가'인 A씨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전직 국회의원 등 유명 정치인을 비롯해 종교인·공무원·장애인 등에게 봉침을 시술하고 일부 남성에게는 성기에 봉침을 놓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A씨 등은 "평생 봉사와 희생을 해왔고 좋은 곳에 쓰기 위해 후원을 받아 실제로 좋은 곳에 썼다"며 모든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A씨가 입양한 두 아이를 돌본 전 어린이집 원장 C씨(여)에 대한 변호인의 증인 신문이 40분가량 이뤄졌다. A씨 측 변론은 공안검사 출신인 50대 D변호사가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에 D변호사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일입니다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눈썹이 짧으면 좀 진하게 나오게 하기 위해 잘라주는 경우도 있다"며 피고인을 옹호했다. 또 "입양된 또 다른 아이의 돌잔치 때 (피고인) A씨는 음식 준비는 못했어도 (증인에게) 100만원을 송금하는 등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며 A씨를 변호했다.
반면 증인으로 나선 전 어린이집 원장 C씨는 "(피고인) A씨가 입양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D변호사와 팽팽히 맞섰다.
"입양된 아이가 한 번씩 집에 가면 울면서 안 가려고 하는 등 굉장히 힘들어 했다" "(피고인) A씨 집에 가는 동안 아이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A씨는 항상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등 재판을 받는 피고인 A씨가 '보호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맥락의 증언을 쏟아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주요 증거 기록 일부가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의 실수로 증거 능력을 상실한 일도 벌어졌다. 증인 신문을 마친 D변호사는 재판부에 이날 증인으로 나온 전 어린이집 원장 C씨의 검찰 진술 조서와 피고인 A씨에 대한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 일부에 "검사 서명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심리를 맡은 전주지법 형사6단독 정윤현 판사는 해당 자료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공지영 작가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공판)검사는 뭐 하시는 분인데 아무것도 안 하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변호사가 (증인에게) 모욕적인 질문을 해도 막지 못하는 검사를 보면서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판사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소설 『부활』에서 판사들은 관료적인 일 처리와 게으름 때문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데 공 작가가 이날 법정에서 본 공판검사를 소설 『부활』 속 판사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공 작가는 "아이들 (학대) 얘기가 나오니까 너무 분노해 (재판) 중간에 몇 번 일어나 법정 소란을 피울까 하다가 참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이번 사건을 축소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7일 오후 3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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