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이 갈라놓은 50년 꿈에 그리던 첫사랑을 만나다
[한겨레]
귀국 1년여만 69년 ‘유럽간첩단’ 얽혀
억울한 옥살이 5년새 연락 끊겨
“당신을 수천번도 더 꿈꾸는데…”
절절하게 직접 쓴 페이스북 메시지에
작년 봄 드디어 답신이 왔다
‘에텔’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김서령 작가가 핀란드를 방문했던 2015년 초였다. 김 작가는 도착하자마자 ‘에텔 티칸데르’라는 핀란드 여성을 찾아달라는 ‘미션 임파서블’을 내게 불쑥 던져주었다. 김 작가는 2008년 김판수씨의 억울한 간첩 누명기를 최초로 인터뷰해 한 시사잡지에 소개했다. 그때 김씨는 수십년 가슴에 묻어두었던 ‘첫 사랑 에텔 이야기’도 김 작가에게 털어놓았지만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조건이었다고 했다.
5년 가까운 옥살이를 하는 사이 연락이 끊겨버린 첫 사랑을 50년 가까이 찾고 계신다는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550만명이나 되는 핀란드 인구 속에서 어떻게 찾나. 잠시 고민하다 전 세계 70억 넘는 인구의 4분의 1이 연결돼 있다는 페이스북에 일단 의지해보기로 했다. ‘Ethel Tikander’ 철자를 추리해서 이름을 쳐 넣으니 생각보다 쉽게 한 명이 나타났다. 과연 페이스북의 힘이란!! 거주지가 덴마크이고 사진도 있어 분명 맞는 것 같았다.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또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김판수씨가 몹시 실망스러워 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2년 반이 흐른 지난 9월, 역시나 불쑥 페북으로 김 작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판수 선생님이 드디어 에텔을 덴마크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 2015년 9월 김판수씨가 직접 페북에 남긴 메시지를 보고, 2016년 봄 에텔이 침묵을 깨고 답신을 보낸 것이었다.
“당신을 수천번도 더 꿈 꾸었던 나, 김판수에요.”
“나는 오랫동안 당신의 페북 메시지에 답장하는 것을 망설였어요. 왜냐하면 제 인생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어요. 나는 단 한번도 성공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고, 정상적인 가족 생활도 또 좋은 직업도 누려본 적이 없어요. 홀로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지속적인 벗이에요. 아이 둘도 제가 다 혼자서 키웠어요.”
마침내 올 가을 김판수씨가 코펜하겐으로 만나로 오기로 한 뒤, 보낸 에텔의 메시지는 더욱 눈물없이 볼 수 없었다. “김에게, 미안해요 머물 곳을 제공하지 못해서요. 제가 집이 없거든요.”
내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김판수씨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에델을 배려하고자 애초 동행하기로 했던 김 작가와 나는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 비행기표는 취소가 불가한 할인티켓이어서 코펜하겐으로 나홀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도착한 날, 고맙게도 에텔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숙소로 와도 좋다는 김판수씨의 메시지가 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눈빛이라고, 김판수씨가 ‘지중해 바다처럼 파란 눈빛을 가진 소녀’라고 묘사했던 에텔이 그 눈빛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파쩨르 초콜릿과 핀란드 호밀빵 모양으로 만들어진 냄비 받침을 선물하자, 에텔은 진짜 호밀빵인줄 알고 먹어 보려고 했다. 뜻하지 않는 장난끼로 어색함은 금방 녹아버렸다.
한 여인의 기나긴 외로움의 시작은 자의는 아니었지만 김판수씨의 ‘미스테리한 실종’이었으리라. 감옥에 갇혀 소식을 전할 수 없었던 ‘Mr. Kim’에게 수년간 끊임없이 보냈던 에델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결혼했나요? 아님 여자친구가 생겼나요?”
‘50년 마음의 빚’을 풀어낸 김판수씨의 얼굴은 내내 흥분으로 들떠 있는데 반해, 에텔의 표정에서는 세월이란 체로 충분히 걸러진 듯 미소가 잔잔히 번져나갔다. 누가 이 여인을 불행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에텔이 부러워졌다. 50년 동안 나를 그리워하다가 나를 만나러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기적같은 사랑이 요즘 세상에 어디 흔한 일인가? 그들의 대화에서는 ‘사랑’이란 말 대신 ‘우리의 우정’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두 사람은 1967년 헤어질 때 마지막 포옹을 나눴던 코펜하겐 중앙역을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김판수씨가 그날 역에서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목놓아 엉엉 울었다고, 에텔이 ‘증언’을 했다. 사실 그때 20대의 젊은 그들은 불과 몇달의 짧은 이별로 생각했단다. 50년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겁의 세월, 그 모진 시련을 겪어내고 그들은 다시 그 역 앞에 섰다. 예전의 진한 포옹과 눈물은 다 사라졌지만 두 사람의 눈빛만은 여전히 강렬한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번에도 역에서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불과 12시간만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 내일 아침 함께 다녔던 국제학교를 방문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10월2일, 코펜하겐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 학교가 있는 헬싱외르에 도착했다. 그곳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비극, 햄릿의 배경이 된 크론보르 성이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다.
국제학교 교직원은 50년 만에 졸업생들이 다시 방문했다는 얘기를 듣더니 자신이 1967년생이라며 놀라워하며 앞장서 안내를 해주었다. 두 사람은 그들만의 타임머신을 탄 듯, 앞마당에서 그네도 타고 교정 안팎을 즐겁게 거닐었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져있고 호수를 끼고 있는 이 평화로운 교정에서 공부했던 김판수씨가 한국의 춥고 어두운 독방 옥살이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감옥 생활이 힘들 때마다 이곳에서 보냈던 찬란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10월3일,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마지막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에델은 우리가 극구 말렸는데도 모두에게 대접하고 싶다며 코펜하겐의 유명한 빵집에서 데니쉬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직접 테이크아웃해왔다. 외모만 조금 다를뿐, 마음 씀씀이는 우리네 정 많은 할머니와 별반 다름이 없다. 에텔은 자신에게는 먼먼 옛날 아시아에서 이동해서 핀란드에 정착한 원주민 ‘사미족’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그가 더 이상 낯선 벽안의 외국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를 나누던 순간, 에텔에게 ‘50송이 장미꽃’ 서프라이즈 증정 이벤트가 연출됐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처럼 환하게 웃었다. 헤어진 세월 50년을 상징하는 50송이였다.
평소 동양의 종교에 관심이 많다는 에텔은 카르마(Karma)도 얘기했다. 에델은 이번 생에서는 짧은 만남, 긴 그리움의 인연이었지만 다음 생애에서는 긴 만남을 믿냐고 김판수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었다. 웬일인지 김판수씨는 쉽게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때로는 언어가 다다르지 못하는 그런 영역이 존재한다. 그는 지금 그 곳에 홀로 서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긴 그리움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약없는 헤어짐은 매한가지지만 에델은 장미 50송이를 들었는데도 처음보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입에서 나온 ‘힐링’(회복)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으리라.
“에텔, 앞으로는 절대로 당신의 운명을 창피해 하지 마세요. 삶이 더이상 당신을 속이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당신의 부드러운 미소를 앞으로 절대로 잃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코펜하겐/이보영·프리랜서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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