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블리 심상정, 리베로 노회찬, 꿈나무 이정미의 소명

2017. 10. 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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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 이것만 알면 당신도 '정치밥상' 차린다 ⑥

[한겨레]

201만 7458표. 득표율 6.17%

정의당은 2017년 5월에 치러진 촛불대선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2002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진보정당 대선후보로서 거둔 최고기록(3.9%, 95만7148표)을 15년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심상정 후보가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선전하면서 한때 꿈의 10%를 득표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긴 했지만 대통령 1인을 뽑는 승자독식 대선에서 소수 진보정당이 얻은 200만표는 기념비적인 수치다.

좋은 기록으로 이뤄낸 대선 완주의 효과는 적지 않다. 다음 총선에서 경기도 안양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정의당 추혜선 의원(비례대표 초선)은 “대선 이후 지역에서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전에는 정의당이 뭐냐고 물었던 사람도 많았는데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호의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국회 내 협상과 입법에 무게가 실릴수록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은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이 121석이므로, 캐스팅보터로서 40석을 가진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올 뿐 6석을 가진 정의당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안경환·조대엽·박성진 등 문재인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를 주장했고 실현됐다는 점에서 ‘정의당 데스노트’가 주목받긴 했지만 노회찬 원내대표의 말처럼 ‘데스노트’는 “국민의 상식에 의존해서 평가했기 때문이지 지위가 있어 생긴 것이 아니”다. 결국 ‘일당백’의 각오로 당의 존재감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정의당의 스타 정치인 심상정과 노회찬, 그리고 이정미 대표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정의당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어떤 준비들을 하고 있을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6월13일 경남 거창 샛별중학교에서 대통령 당선증을 받은 뒤 인사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실 제공

대선이 끝난 뒤 당대표까지 내려놓은 ‘정치인 심상정’은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대선 뒤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았다. 한국YMCA 전국연맹은 대선일인 5월9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모의 대선’을 치렀다. 여기에 5만1715명이 참여했는데, 심 후보는 무려 36.02%를 득표했다. ‘미래의 꿈나무’들을 상대로 한 경쟁에선, 39.14%를 얻은 1위 문재인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친 것이다. 개별 학교 단위에서 실시한 모의투표에서 심 후보는 여러 곳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5월17일에는 서울 금호고에서, 6월13일에는 경남 거창의 샛별중에서 ‘당선증’을 받았다. 7월13일에는 경기 이천 양정여고, 8월11일에는 대구 능인중과 오성중, 8월23일에는 전북 고창 해리고와 전남 영광 성지고를 돌았다. 그에게는 ‘고통령(고등학생이 뽑은 대통령)’이라는 새 별명이 생겼다. ‘잠재적 유권자’들을 향한 당선사례였다. 최근에는 서울대·경희대 등 강연을 통해 대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그의 관심은 여전히 여성·청년·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향하고 있다.

아무런 당직도 맡지 않은 그의 몸집은 가벼웠지만 정치적 무게감은 여전하다. 심 의원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뛰어들었다. 지난 24일 국회 정론관을 찾은 그는 “‘사표’를 양산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인위적으로 다수당, 제1당을 만들어내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 민주적 대표성을 왜곡시키는 제도”라며 “이제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당 간 협치의 제도화부터 시작돼야 하고 협치의 중심에 선거제도의 개혁이 놓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례성을 높여, ‘과소대표’되고 있는 정의당의 목소리를 키워야 하는 게 그에게 떨어진 임무다. 심 의원은 지난 7일 여야 의원 47명과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국회 연구단체 ‘헌법 33조 위원회’를 창립하고 노동의 헌법적 가치를 복원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고민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차출설’도 나오지만 승산 없는 싸움에 의원직까지 내던져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은 떨어진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원내대표는 대선이 끝난 뒤 원내대표에 연임됐다. 심상정 의원과 당내에서 ‘유이한’ 3선 중진인 그가 원내 사령탑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원단의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당이 처한 ‘부족한 발언권’ 문제를 특유의 입담으로 돌파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 그가 고정으로 나가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그에게 놀이터이자 스피커다. ‘사회적 배려자’라는 부제가 달린 이 코너에서 그는 정의당의 목소리를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증폭시켜 청취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과의 적절한 관계 설정도 고민하고 있다. 지난 7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각별히 부탁해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으나 민주당 의원들의 무더기 불출석으로 의결정족수를 못 채워 표결이 지연되던 그때, 정의당 의원 6명은 제시간에 본회의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정의당의 협조를 민주당이 당연한 것으로 안다”는 불만이 나왔던 사건이었다. 정의당 내부에서는 진보정당으로서 문재인 정부를 더 강하게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안별로 협력할 건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노 원내대표는 정의당이 지지율을 확장할 수 있는 곳이 민주당 지지층이기 때문에 사안별로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 더 강하다고 한다. ‘촛불정권’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정의당의 활로를 찾기 위한 나름의 고민인 셈이다.

노 원내대표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위원을 맡았다. 정의당이 설정한 개헌의 목표도 결국은 선거구제 개편으로 통한다. 지난 27일 국회 본관 중앙홀에서 정의당과 국민의당·바른정당, 그리고 424개 시민사회 연대체인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함께 꾸린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민정연대 추진 간담회’에서 그는 “(로텐더홀) 이 자리에 누워본 적이 있는 분들은 다 안다. 평소에는 못 봤는데 여기서 농성하며 누워서 보면 이 천장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저는 저 아름다운 천장을 또 보고 싶지는 않다”며 입을 열었다. 선거구제 개편을 요구하며 국회 안에서 농성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이어 “누군가는 정육점에서 고기 600g을 샀는데 실제로 보니 400g밖에 안 되고, 어떤 사람은 2kg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2.5kg이나 되는 부당거래가 법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며 비례성이 떨어지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비판했다. 정의당의 명운을 결정할 선거구제 개편은 노 원내대표에게도 커다란 숙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8월15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언론재단 앞에서 연 ‘한반도 평화 실현·사드 배치 반대 8.15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의 ‘떠오르는’ 정치인이다. 그는 올해 7월 ‘포스트 심상정’ 시대를 여는 새 대표로 선출됐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며 진보정당을 지켜온 이력과 ‘무한도전’ 출연으로 쌓은 인지도의 힘이 컸다. 노동운동으로 다져진 그는 현장성이 강하다. 정의당의 핵심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 넷마블의 장시간 노동, 애슐리의 아르바이트 임금 체불 문제 등을 공론화했고 부당노동행위의 시정을 끌어냈다. 심상정·노회찬이라는 두 거물에게 각각 정개특위와 개헌특위라는 ‘고공 플레이’ 임무를 주고, 본인은 야전사령관처럼 노동 현장을 훑고 있는 셈이다.

7월 당대표 경선에서 이 대표는, 보수 양당 기득권 체제가 “수많은 얼굴을 한국 정치에서 지워버렸다”며 대변되지 못하던 힘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되찾겠다는 의미로 ‘얼굴 없는 민주주의’의 종식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러 민생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제는 정의당이 괜찮은 정당이라는 칭찬을 받고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정의당을 찾아오는 분이 꽤 많이 생겼다”며 “지금까지 노회찬·심상정이라는 개인 정치인을 통해서 봤던 정의당을 이제 정의당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대선에서 200만명의 지지를 얻은 정의당은 세력을 더욱 확장해 의미 있는 진보정치 세력으로 발돋움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있다. 선거구제 개편 등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변경되기 전까지는 스타 정치인들의 헌신으로 불리한 상황을 돌파할 수밖에 없다.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인지도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치인이고 이정미 대표도 ‘라이징’하는 중”이라며 “소수정당이기는 하지만 당을 더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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