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상처 입은 야생동물이 치료·재활하는 '야생동물의료센터'

강윤중 기자 2017. 10. 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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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새끼 수달이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내 야생동물의료센터에서 연구원의 다리 사이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화엄사종을 복원하는 곳인가요?”

언젠가 종복원기술원에 걸려왔던 문의 전화 내용이라고 한 직원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유명 사찰 ‘화엄사’가 지척이라 나름 합리적 의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종복원기술원은 ‘종(bell)’이 아닌 ‘종(species)’을 복원하는 전문기관입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와 멸종위기 식물을 복원하는 곳이지요.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종복원기술원. /강윤중 기자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를 다녀왔습니다. 센터에서는 수의사 등 연구원들이 멸종위기종의 증식과 질병·건강연구를 합니다. 또 국립공원 일대 야생동물의 구조, 치료, 재활과 생태연구도 병행하고 있지요. 센터 안 야생동물 계류장는 핵심사업 대상 종인 반달가슴곰 뿐 아니라 다치거나 새끼 때 구조된 여러 종의 동물들이 치료를 받고 재활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만 야생동물 104개체(9월14일 기준)가 구조돼 들어왔습니다. 치료와 재활을 시켜 방사하는 것이 기본이나, 크게 다쳐 들어온 개체들의 폐사율도 높습니다. 계류장에서 만난 동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의료센터 메모판에 구조된 야생동물과 치료 상황 등의 적혀 있다. /강윤중 기자

반달가슴곰 천왕이는 2004년 러시아에서 들여왔습니다. 한반도에 서식하던 반달가슴곰과 동일한 종입니다. ‘천왕’이라는 이름은 지리산 봉우리 이름을 딴 것으로, 당시 수컷은 봉우리, 암컷은 계곡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천왕인 한 살이던 2005년 지리산에 방사됐습니다. 탐방로에 나타난 새끼곰이 귀여워 탐방객들이 초콜릿 등 음식을 먹였습니다. 똑똑한 새끼 곰은 먹이를 주는 사람을 따랐습니다. 사람 손을 탄 천왕이는 이미 자연 속에 살 수 없게 됐습니다. 등산객의 가방 뒤지고 해를 입힐 수 있다 판단해 2007년 천왕이를 회수했습니다. 현재 의료센터 내에 영구 계류중입니다. 지난 여름 반달가슴곰의 증식을 위해 천왕이의 정자를 채취해 암컷에 인공수정을 한 상태입니다. 아직 천왕이의 정자로 태어난 새끼는 없다는군요. 12월 중순쯤 초음파 검사로 암컷의 태아를 확인하고 새끼 출산 여부를 모니터링 할 예정입니다. 현재 지리산에는 47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야생동물의료센터 계류장에 머물고 있는 반달가슴곰 천왕이. /강윤중 기자

새끼 수달은 지난 8월 구례 주민이 섬진강가 바위 밑에서 발견해 센터로 들고 왔습니다. 어미 없이 홀로 있었답니다. 직원들이 분유를 탄 젖병을 물려 정성껏 키웠습니다. 장난끼 많은 꼬마 수달은 의료진이 다른 동물을 치료하는 동안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거나 매달리며 놀았습니다. 이날 서명교 수의사와 안우영 연구원이 새끼 수달을 ‘포유류 운동장’에 풀었습니다. 고인 물과 바위, 통나무 등으로 꾸민 훈련장입니다. 혼자 수영하며 먹이(미꾸라지)를 잡아서 먹는 지 가만히 관찰했습니다. 신나게 물 속을 헤집고 다니는 수달을 보며 “잘 논다” “많이 컸네” “힘들면 알아서 쉬고 해라” 혼잣말들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야생동물인데)사람을 너무 따르는 것 아니냐?”고 묻자, 서 수의사는 “자연에서 사람 따른다고 다 나쁘진 않아요. 근데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서...”라고 말했습니다.

진료실 바닥에서 장난치는 새끼 수달. /강윤중 기자
서명교 수의사가 포유류 운동장에서 새끼 수달이 수영하며 먹이를 찾아먹는 첫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청호반새는 지난 9월4일 인근에서 구조돼 왔습니다. 왼쪽 날개가 부러지고 찢어진 상태. 현재 골절 수술을 받고 치료중입니다. 안 연구원이 한 손으로 몸통을 다른 한 손으로 부리를 잡았습니다. 새가 울어 부리를 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심하게 쪼아대서” 그런답니다. 새도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작은 날개를 조심히 들어올려 상처 부위에 소독제와 연고(마데카솔)를 발랐습니다. 식욕이 있을 리 없는 새의 부리를 벌려 잘게 자른 미꾸라지를 핀셋으로 집어서 넣어주었습니다. 2주 후 다시 엑스레이 찍어보고 날개가 잘 붙었으면 비행 훈련을 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낼 계획입니다. 치료받은 청호반새가 구멍이 숭숭 뚫린 작은 종이상자로 들어갑니다. 종이상자 가로질러 나뭇가지로 만든 횃대가 걸려 있었습니다. 새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지요.

센터 의료진이 청호반새의 수술 부위를 치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어깨 부위가 골절된 청호반새 X레이.
청호반새의 부리를 벌여 잘게 자른 미꾸라지를 넣어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청호반새가 들어앉은 종이상자에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횃대가 걸려 있다. /강윤중 기자

구조된 야생동물이 이곳에서 치료받고 건강을 회복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계류장에 있는 독수리(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2급, 국제멸종위기종 1급)가 그렇습니다. 지난 2014년 전남 화순에서 구조됐습니다. 오른쪽 날개의 골절이 심했지요. 치료를 받았지만 날개 뼈가 굳어버려 날지 못합니다. 계류장에서 날개를 오므렸다 펼쳤다를 반복하는데 오른쪽 날개를 온전히 펴지 못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류장에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골절된 날개가 굳어 날지 못하는 독수리가 계류장에 앉아 있다. /강윤중 기자

전남 곡성에서 한 주민이 죽은 어미 옆에 있던 오소리 새끼 두 마리를 발견해 한 달간 키우다 센터로 연락해왔습니다. 인수대장 ‘조난 원인’란엔 ‘미아’라고 써 있었습니다. 센터 직원들이 쌍둥이 오소리를 인공포육했습니다. 개분유를 탄 젖병을 물려 키웠습니다. 쌍둥이 중 한 마리는 죽어 지금 한 마리만 계류장에 남았습니다. 형제을 잃은 외로움인지, 그리움인지 연구원이 계류장 안으로 들어서자 다리에 힘껏 매달려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의료센터에 계류중인 오소리가 카메라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강윤중 기자

붉은배새매는 지난 8월 경남 산청군에서 구조됐습니다. 새끼 상태로 들어와 센터에서 컸습니다. 요즘 ‘조류 비행장’에서 비행 연습이 한창입니다. 센터 직원들이 붙어 훈련장을 꾸몄습니다. 충돌방지를 위한 검은 색 비닐을 걸고 훈련용 장애물과 곳곳에 횃대를 놓았습니다. 그 위에 먹이도 올려놓았습니다. 붉은배새매는 두어 차례 힘차게 날더니 곧 횃대를 붙들고 작은 숨을 할딱이며 긴 시간 쉬었습니다. 비행을 지켜보던 양정진 팀장이 “아직 날개 근육에 힘이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사냥 훈련까지 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고 했습니다. 이 새는 멸종위기종 2급입니다. 의료센터라는 공간에서 1급, 2급이 무슨 차이일까 싶었습니다.

붉은배새매가 ‘조류 비행장’에서 첫 비행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붉은배새매가 비행 훈련 중 센터 연구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야생너구리는 지난 12일 담양소방서에서 연락받아 센터 직원들이 직접 가서 데려왔습니다. 진료실에 눕히고 마취를 시도하는 동안 날카로운 이로 야성을 드러냈습니다. 혈액을 채취해 질병과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X레이를 찍었습니다. 모니터 화면에 왼쪽 뒷다리 골절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양 팀장은 조난 이유를 교통사고로 추정했습니다. 조만간 수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잠시 뒤 마취가 깬 너구리가 서 수의사의 엄지손가락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즉시 소독과 지혈을 하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프거나 죽어가는 야생동물도 이빨과 발톱으로 언제든 야성을 드러냅니다. 2인1조로 진료를 보는 이유입니다.

수의사가 진료를 위해 마취를 하려하자 야성을 드러내 보이는 야생너구리. /강윤중 기자
야생너구리 X레이 사진. 왼쪽 다리가 골절되고 골반이 틀어졌다. /강윤중 기자

야생동물의료센터의 의료진은 구조에서부터 치료, 재활, 방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야생동물을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특히 상처입은 반달가슴곰에 처방된 알약을 곰이 좋아한다는 꿀을 바른 벌집(밀랍)에 숨겨서 먹였습니다. 피로회복을 위해 곰에게 우루사를 먹일 때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동물복지’가 실현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상처입은 반달가슴곰에 처방된 알약을 꿀 바른 벌집에 숨기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명교 수의사가 반달가슴곰에게 알약을 먹이고 있다.

수의사인 양 팀장은 “방사할 때 뒤돌아 보지도 않고 가버리지만 치료받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고 보람을 밝혔습니다. 반달가슴곰 연구에 정통한 정동혁 야생동물의료센터장은 “야생동물에 인도적이며 동물복지 차원의 의료적 관리와 연구는 중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종복원기술원의 핵심사업인 멸종위기종(반달가슴곰, 산양, 여우)의 복원은 개체 증식뿐 아니라 백두대간을 따라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의 복원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생태계의 복원은 100년을 내다보는 사업이며 야생동물에게는 가장 큰 복지인 셈입니다.

종복원기술원의 멸종위기종 복원사업 대상인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의 혈액이 야생동물의료센터 내 냉동고에 보존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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