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차례지냈으면"..시부모와 여행, 며느리들 '울상'

박영주 2017. 10. 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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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6명 추석 연휴 여행···가족이 39%
"시어머니가 4박5일 가족 여행 계획 세워"
"서울→경주→강릉 여행, 운전만 12시간"
며느리 입장에선 세대차, 위계 관계 불편
"아들 부부에 자유시간···역할 분담 도움"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결혼 3년차 주부 김모(33·여)씨는 이번 추석 연휴가 반갑지 않다. 올해는 차례도 지내지 않는다기에 모처럼 친정에 가서 긴 연휴를 보낼 계획이었지만 지난주 시어머니가 '가족 여행'을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명절 때마다 1박2일 동안 시댁 큰집에서 음식을 준비했는데 올해는 작은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차례를 건너뛰기로 했다"면서 "친정 부모님과 보낼 생각이었는데 시어머니가 5~8일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시부모님과 이틀을 함께 보내는 것도 힘든데 이번 명절에는 3박4일 꼬박 같이 있어야 한다"며 "모처럼 긴 추석 연휴의 절반을 시댁 식구들과 보내게 생겼다. 차라리 차례를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10일간의 추석 연휴에 일부 며느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남편, 친정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뜬 것도 잠시 뿐이다. 시댁에서 가족 여행을 제안하면 며느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황금연휴를 시댁과 보내기는 내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인 탓이다.

실제로 숙박 O2O기업 '야놀자'가 지난달 4일부터 8일까지 20~40대 11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번 추석 연휴에 10명 중 6명(65.4%)은 여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5.6%는 국내 여행을 추진했다.

국내 여행 기간은 2박3일이 34.7%로 가장 많았다. 이어 1박2일(32.2%), 3박4일(14%), 무박1일(7.1%)이 뒤를 이었다. 5일 이상의 장기여행을 하는 비율은 12%였다. 함께 여행할 사람 비율로는 연인이 43.9%를 차지했으며 가족도 39%나 됐다. 친구는 10.1%, 혼자 여행하는 비율은 7%에 그쳤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 안모(35·여)씨는 "형님이 추석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2박3일 강릉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셨다"면서 "여행비용으로 얼마를 드려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는 "시댁이 경주인데 서울에서 차를 가지고 가면 5시간이다. 거기서 강릉, 다시 서울까지 운전하려면 최소 12시간 이상은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판"이라며 "형님은 시댁 근처에 사셔서 오랜만의 장거리 외출이 즐거우신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시댁 부모님 댁에 가는 길 자체가 여행"이라고 하소연했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보내는 한모(32·여)씨는 "시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전화로 '며느리 들어오고 첫 명절인데 1박2일 드라이브 여행을 하자'고 말씀하셨다"면서 "아직 시댁 식구들이 어색한데 같이 여행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가 매년 명절 때마다 여행을 가자고 하시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인천공항=뉴시스】최동준 기자 = 최장 추석연휴를 앞둔 29일 인천공항 출국장이 해외에서 연휴를 보내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2017.09.29. photocdj@newsis.com

남편들도 긴 연휴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한쪽 집만 챙기자니 어두워진 아내의 표정에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양쪽 집 모두 챙기느라 시간과 돈이 두 배로 들기도 한다.

최모(30)씨는 "올해 추석 연휴는 우리 집과 처가 식구들과 두 차례 여행을 가야 한다"며 "우리 집만 챙기니 아내가 서운해하더라.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2박3일씩 양가 어른들과 각각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돈도 두 배로 들게 생겼다. 회사에 휴일 근무를 지원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전했다.

주부 커뮤니티사이트에도 "아주버님이 시부모님과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시는데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어머니가 4박5일 동안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셨다. 울고 싶다" "시댁 식구들과 여행이 너무 짜증 난다. 돈 들이면서 왜 스트레스받아야 하는지" 등의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가족 여행 제안을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시부모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세대 차이를 피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위계 관계가 불편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역할을 분담하거나 여행 내 자유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며느리들은 남편보다 시부모와 함께한 세월이 적고 공통의 관심사가 부족하다 보니 24시간 이상 노출되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시댁과의 갈등이 두려워서 일부러 회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진단했다.

강 소장은 "시부모들은 같이 가족 여행을 가더라도 아들 부부가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2~3시간 배려하는 등 융통성을 보여야 한다"며 "시아버지나 남편이 먼저 '설거지는 남자' '식사는 모두 외식으로 해결' 등 역할 분담을 주도하는 것도 친밀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gogogir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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