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진실 사망 9주기..그리운 '만인의 연인'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2017. 10.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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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故)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흘렀다.

최진실은 1988년 TV 광고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국민 배우'로 우뚝 섰다.

힘겨웠던 이혼 후의 삶, 악성 루머 등으로 최진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또 다른 네티즌(@bb_SENA****)은 "최진실의 죽음은 정말 충격이었다. 뭐랄까, 한국 연예계 어느 한 켠이 지독하게 문드러져 단번에 사라져버린 느낌"이라고 부고 소식을 접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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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진실. (사진=메이스튜디오 제공)
배우 고(故)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흘렀다.

최진실은 1988년 TV 광고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국민 배우'로 우뚝 섰다. 90년대는 최진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했고,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는 스웨덴으로 입양된 미혼모 여성을 연기해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줬다. 이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또 한 번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마누라 죽이기', '고스트 맘마'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친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쌓아 나갔다. '편지'와 '마요네즈' 등 정통 로맨스와 드라마 장르에도 강한 면모를 보여 뛰어난 캐릭터 소화 능력을 증명해냈다.

최진실 최고의 전성기는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찾아왔다. 이후에도 '장미와 콩나물', '장밋빛 인생' 등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에게 '만인의 연인'으로 불렸다.

화려했던 필모그래피와 달리, 결혼 생활은 안타까운 끝을 맺었다. 활발한 작품 활동 중이었던 2000년 5살 연하의 야구 선수 조성민과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슬하에 아들
환희와 딸 준희를 두고 2004년 이혼했다.

2008년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최진실은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았다. 억척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줌마 캐릭터로 변신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 그러나 당시 절친했던 배우 안재환에게 돈을 빌려주고 갚을 것을 종용했다는 '25억 사채 루머'에 휩싸여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힘겨웠던 이혼 후의 삶, 악성 루머 등으로 최진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결국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메모 한 장 만을 남긴 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최진실의 유작으로 남게 됐다.

여전히 최진실을 기억하고 있는 네티즌들은 사망 9주기를 추모했다.

한 네티즌(@terra***)은 "이제는 화면으로만 만날 수 있다. 영화처럼 눈물이 날 것 같은 최진실, 그녀의 안식을 바라며…"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또 다른 네티즌(@bb_SENA****)은 "최진실의 죽음은 정말 충격이었다. 뭐랄까, 한국 연예계 어느 한 켠이 지독하게 문드러져 단번에 사라져버린 느낌"이라고 부고 소식을 접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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