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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섭씨 1억도 플라스마..꿈의 에너지 '인공태양' 뜬다

원호섭 2017. 10. 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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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EU·美 등 7개국 참여 핵융합실험로 ITER 건설..한국, 정교한 섹터조립 맡아
실험장, 축구장 60개 규모..1억도 넘는 플라스마 띄울 핵심 설비 '토카막' 조립시작
온실가스 배출 전혀 없고 방사성 폐기물도 안나와

◆ 핵융합 ITER프로젝트 / 핵융합발전 건설현장 프랑스 '카다라슈' 르포 ◆

프랑스 카다라슈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모습. 현재 공정률은 44.8%로 2025년 첫 가동될 전망이다. [사진 제공 = ITER]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로 유명한 엑상 프로방스에서 북쪽으로 약 40㎞를 달리면 한적한 시골 마을 카다라슈에 다다른다. 황량한 들판과 2차선의 작은 도로가 끝날 무렵 삼엄한 경비가 눈에 띄는 '프랑스 원자력 및 대체에너지위원회(CEA)'가 보였다. 보안검색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가자 커다란 크레인 4대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늘한 가을 날씨 아래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인공태양'이 만들어지는 곳,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 현장이다.

지난달 28일 현지에서 만난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장은 "현재 공정률이 44.8%에 다다랐다"며 "2025년 첫 플라스마 가동, 2035년 첫 핵융합 반응을 위해 7개국 800여 명의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이 1초 동안 방출하는 에너지는 지구의 모든 인류가 100만년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하다. 태양에너지 원천은 바로 '핵융합'이다. 태양 중심부에서는 수소 원자 2개가 결합해 헬륨 원자가 생성되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우주 공간으로 방출된다. 이론적으로 핵융합 원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 1g으로 석유 8t 분량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원자력 발전과 비교하면 주입하는 연료 대비 3배가량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온실가스 배출도 없고 방사성 폐기물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폐로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인류는 1950년대부터 핵융합을 무기가 아닌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ITER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인도, 중국, 일본이 참여했으며 한국은 2003년 ITER에 가입했다. 이어 2005년 7개국은 프랑스 카다라슈 지역에 ITER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여러 나라가 힘을 합한 이유는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워서다. 또한 ITER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약 20조원으로 지금까지 인류가 진행한 그 어떤 과학 프로젝트보다 규모가 크다.

베르나 비고 ITER 사무총장은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한 대안은 핵융합밖에 없다"며 "ITER는 인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원할 때 핵융합은 준비된다." 토카막(Tokamak·핵융합 때 물질이 플라스마 상태로 변하는 연료기체를 담아두는 용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러시아 과학자 레프 아치모비치는 1973년, 죽음을 앞두고 이 같은 말을 남겼다. 토카막은 ITER를 비롯해 많은 국가가 핵융합 실험로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도넛 모양의 공간에 수소를 채운 뒤 온도를 높여 플라스마를 만든다. 플라스마의 온도는 1억도 가까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지구상에 없다. 토카막은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가 벽에 닿지 않고 공중에 뜰 수 있도록 돕는다. 수소 두 개가 만나 헬륨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증기를 만들고, 이것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핵융합 발전의 원리다. 고온의 플라스마를 컨트롤하는 일이 어려운 만큼 핵융합 상용화 시점은 2050년 이후로 예상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사회가 핵융합을 필요로 한 시점이 다가온 만큼 기술 완료 시점은 더 빠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고 사무총장은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량은 지금보다 약 6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같은 에너지양을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원전 이후 핵융합 발전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찾은 ITER 건설 현장에는 '활력'이 묻어났다. 축구장 60개를 합친 규모 60만㎡의 용지에는 연구자 800여 명을 비롯해 1000여 명에 달하는 현장 인력이 줄지어 이동하며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용지 한가운데에는 ITER의 핵심으로 꼽히는 핵융합 실험로가 놓일 건물이 보였다. 높이 30m, 폭 30m에 달하는 핵융합 실험로가 들어갈 공간 주변을 3m에 달하는 콘크리트가 둘러싸고 있었다. 이 콘크리트는 핵융합 연료인 삼중수소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차폐하는 역할을 한다. 카다라슈 지역은 지진도 없을 뿐 아니라 지반이 안정한 곳으로 꼽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콘크리트 두께를 더 두껍게 하고 지진과 같은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보강 공사가 진행됐다. 양형렬 ITER 토카막 어셈블리 프로젝트 매니저는 "2만3000t에 달하는 핵융합 실험로가 놓이는 이곳은 1억5000만도까지 치솟아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지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융합 실험로가 들어서는 공간은 지하 2층~지상 4층의 건물로 현재 지상 2층까지 공정이 마무리됐다.

ITER의 심장과도 마찬가지인 만큼 750t의 무게를 들 수 있는 크레인 4대가 연신 장비를 나르며 작업하고 있었다.

핵융합 실험로 옆에는 토카막 장비 조립을 위한 SSAT(섹터부조립장비)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핵융합 실험로는 9개의 섹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SSAT는 7개국이 만든 각 섹터를 하나로 결합하는 곳이다. SSAT의 구축이 ITER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로 불리는 이유다. SSAT는 높이 23m, 중량 900t에 달하는 장비이지만 움직일 때 오차는 1㎜ 미만으로 정교해야 한다. SSAT는 2015년 9월 한국이 제작을 시작했으며 지난달까지 모든 부품이 ITER 내로 도착했다.

핵융합 실험로 건너편에는 전원공급장치가 들어가는 시설과 냉각을 위해 액체 헬륨을 만드는 설비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모두 관련 설비로는 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다. ITER의 핵융합 반응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결합하면서 이뤄진다.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은 모두 '양극'을 띠고 있는 만큼 서로 밀어내는 반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합시키기 어렵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높은 온도다.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장은 "플라스마로는 약 3000만~5000만도의 온도를 만들 수 있다"며 "전원공급 장치를 이용해 전기를 넣어주면 이 온도를 1억도까지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카막 장비는 자기장을 이용해 이 플라스마를 공중에 띄운다. 이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냉각 장비다. 섭씨 영하 273도 가까이 온도를 떨어뜨리면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면서 저항이 없는 전자석이 만들어진다.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플라스마를, 지구에서 가장 차가운 그릇에 담는 셈이다. 양 매니저는 "ITER에 있는 냉각장비로는 수영장 100개의 물을 동시에 얼릴 수 있을 정도"라며 "냉각이 잘 되어야만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2025년, 공사가 마무리되고 핵융합 실험로에 첫 플라스마 가동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첫 핵융합 반응은 플라스마 운용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2035년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35년까지 ITER가 사용하는 연구비용은 20조원 이상으로 EU가 45.5%를, 다른 회원국이 9.1%씩 부담하게 된다. 7개국 회원국은 ITER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50년께가 되면 자국에 핵융합 발전로를 만들어 전력을 생산하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크 핸더슨 ITER 운전부 매니저는 "무어의 법칙과 비슷하게 플라스마의 성능은 1970년대 이후 1.8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며 "청동기, 철기를 거쳐 인류가 진화했듯이 25~30년 뒤 인류는 '핵융합 시대'를 통해 진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플라스마(Plasma) : 기체에 열과 압력을 가해 입자가 핵과 전자로 분리돼 집단을 이룬 상태. 태양의 내부가 플라스마 상태다. 물질의 3가지 상태인 고체·액체·기체와 함께 '제4의 물질'로 불린다.

▷ ITER : 국제핵융합실험로(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를 뜻한다. 태양의 에너지원인 핵융합 반응을 이용해 전력 생산을 위한 프로젝트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공동연구 개발사업이다.

[카다라슈(프랑스)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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