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창간 기획-혐오를 넘어](1) '엄마'를 욕하며 노는 아이들..교실이 '혐오의 배양지'가 되었다

최미랑·이영경·이효상·김지원·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2017. 10. 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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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국 사회 혐오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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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오후 네 시 서울의 한 중학교 앞. 하교 시간이 가까운데 교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급해진 학생들 입에서 불만 섞인 욕설이 흘러나왔다. 참지 못하고 교문을 뛰어넘던 한 학생이 발이 땅에 닿자마자 말했다. “학교 애미 뒈졌네.”

학교 주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흔한 단어는 ‘애미’였다. ‘애미’ 소리만 나와도 또래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니애미’는 추임새 같은 거예요. 누군가 흐름에 안 맞는 말을 할 때 ‘니애미~’하면서 중간에 말을 끊는 식이죠.” 중학교 1학년 김영진군(13·가명)은 말했다.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할 때는 “애미 터졌냐(인성이 나쁘다는 뜻의 ‘인성 터졌다’와 비슷한 말)”며 면박을 줬다. 엄마를 비하하는 말인 ‘니애미’는 교실에서 가장 ‘핫’한 욕이다. “남자아이들 사이에는 서열 같은 게 있잖아요. 서열이 낮은 애들은 아예 엄마 이름으로 불려요. 엄마 이름이 영희면 ‘야 영희야~’ ‘영희 너검(너희 엄마)’ 이런 식으로요” 같은 반 이희진양(13·가명)이 말했다. ‘니애미, 느금마, 엠창….’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만난 초·중·고등학생들은 모두 이런 표현이 익숙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분열과 갈등을 확산시키는 혐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미래세대가 자라나는 학교는 2017년 현재 온갖 혐오의 배양지가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단원’을 비롯해 희생자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에 킥킥거리던 아이들은 혐오를 ‘쿨’한 것으로 여기는 또래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혐오문화가 10대의 교실을 잠식한 것이다. 제대로 된 인권교육과 성평등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 욕이 된 ‘엄마’, 생활언어가 된 혐오표현

‘앙기모띠’라는 말도 아이들 사이에 어느새 일반화됐다. 일본 포르노물에서 기원한 ‘앙 기모띠’는 교성과 일본말 ‘기모치이이’(기분이 좋다는 뜻)를 붙여 만든 말이다. 개인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에서 BJ철구가 써서 유행됐다. “아이들에게 못 쓰게 금지하면 변형해서 써요. 아무 말에다 ‘앙~’을 붙여서 쓰는 식이죠. 의미도 없고, 욕도 아니고, 친근하게 놀리는 말이 됐어요. 야동에서 차용된 말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는 거죠.” 초등학교 교사 이신애씨(26)가 말했다.

청소년들이 차별과 혐오를 유희처럼 또래문화에서 즐기는 일은 과거에도 있던 일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 자정과 규제없는 개인 인터넷방송의 증가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자를 열었다. 지상파TV에서 방영불가한 수준의 ‘패드립’을 아이들이 시청하고, 공유하고, 따라하고, 직접 제작한다. 남성 비하발언을 한 여성 유튜버를 추적·살해하겠다는 방송으로 논란을 빚은 유튜버 신태일·김윤태는 초등생 사이에 인기가 높다.

학령이 높아지면 여성혐오 표현도 심해진다. 여성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통해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이다. 여성 경찰을 간호조무사에 빗대어 ‘치안조무사’로 부르기도 한다. “여경이 현장에 투입됐을 때 남자 경찰들보다 할 수 있는 게 적다 보니 저체온증에 빠진 등산객에게 근무복을 벗어 줬다고 특진하는 경우가 있었대요.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조무사’를 붙여서 불러요.” 고등학교 2학년 박영진군(17·가명)이 말했다.

■ 혐오가 ‘쿨한’ 교실에서 침묵당하는 아이들

모든 아이들이 혐오를 즐기는 건 아니다. 불편함과 거부감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려면 ‘진지충’이라 불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잘못된 건 다들 알거든요. 근데 학교는 작은 사회잖아요. 반기를 들면 ‘쟤 이상해’ 이런 취급을 당해요.” 중학교 2학년 서하늘양(14·가명)이 말했다. 남학생들이 패드립과 여성혐오 용어를 섞어 만든 랩을 들으란 듯이 부르고 다녀도 여학생들은 좀체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쿨하고 싶어서’ 대응을 잘 못해요. 남자애들이 친 농담을 웃어넘기고 인정하는 애들이 인기가 많으니까요. 맞장구치고 같이 키득거리거나 아니면 침묵하거나. 그렇게 되는 거죠.” 중학교 2학년 김윤희양(14·가명)이 말했다. 혐오표현이 ‘쿨’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받는 아이들의 존재는 지워진다.

부모 입장에서도 대응은 쉽지 않다. 고등학교 자녀를 둔 심희영씨(가명)는 말문이 콱 막힌다고 말했다. “돈은 밖에서 아빠가 벌어오는데, 엄마는 집에서 하는 게 뭐야”라는 아이의 말에 화가 났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사춘기의 반항심이 사회의 ‘맘충’ 혐오와 맞물려 증폭된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아이들이 또래집단의 말에 굉장히 쏠려 있어요. ‘여자들은 운전도 제대로 못하는데 여성전용 주차장은 뭣하러 필요하냐’ 식의 질문도 종종 해요. 가정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학교에서도 성평등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도 쉽지 않긴 마찬가지다. 성적대상화되면서 교권이 침해받을 정도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손지영씨(33·가명)는 수업시간에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거의 매일같이 듣는다. “젊은 여자 선생님들에겐 아이들이 대놓고 욕을 해요. 임신한 선생님을 보면 ‘섹스를 한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말하고요. 굳이 선생님 앞에서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한 얘기를 강조하는 남학생도 있어요. ‘나는 이 정도 얘기를 여자 선생님 앞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친구들 앞에서 과시하는 거죠.”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혐오발언을 제지하기란 역부족이다. “수업시간에 쏟아지는 성희롱·성차별 발언에서 우선 저 스스로가 저를 보호할 수단이 없어요. 학교 관리자들은 ‘여자 선생님은 학생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만 답하는 게 현실입니다. 일선 현장에서 성차별 발언을 하는 남자 선생님도 많고요. 아이들에게 1차로 동료 선생님들에게 2차로 또 상처받아요. 모두가 ‘그건 여자인 너의 문제다’라고 말하니까요.”

■ 보이지 않는 약자, 소수자는 발붙일 수 없는 사회

지금 교실은 ‘혐오사회’의 축소판이다. 힘과 권력에 기반을 둔 혐오는 소수자를 향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보면 성소수자의 87.5%가 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 피해를 경험했고, 장애인(73.5%)·여성(70.2%)·이주민(51.6%) 순으로 혐오표현 피해 경험이 높았다. 교실에서도 성소수자·이주민·장애인 혐오가 만연하다.

“주의를 주고 징계를 줘도 막을 수 없어요. 힘이 센 아이들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혐오발언을 내뱉어요.” 경남의 한 고교 교사 손모씨(27)는 말했다. “어투가 여성스러운 한 남학생이 ‘게이스럽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해 다른 학우를 때린 사건도 있었어요. ‘똥꼬충’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모든 혐오표현을 아이들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겉으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쏟아지는 혐오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학교에서 혐오발언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져요.” 성소수자인 중학생 권모씨(16)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반박했다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센 무리’들이 권씨를 에워싸고 괴롭혔다. 친한 친구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권씨를 도와주지 못했다. 권씨는 “겉으로는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데 굉장히 무섭다. 혐오 발언으로 얼마나 위협받는지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이주민 혐오 표현도 많이 쓰인다. “가장 많이 하는 욕은 ‘병신’이고 ‘조울증 새끼’라든가 ‘정신병자’라고도 해요. 반 친구들 30명 중에 27명 정도는 이 말을 쓰는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최모양(15)의 말이다. 장애 학생을 따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지나가면 피해요, 닿으면 안된다고. 그 친구 자리에 ‘이거 놓는다’ 하면 그 물건 주인은 뭐라도 옮을 듯이 기겁을 해요.”

지난 3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다문화가정 학생을 콕 집어 ‘차이나’라고 부르는 일도 벌어졌다. ‘짱깨’ ‘쪽바리’ 같은 인종차별적 표현을 수업시간에 교사가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어머니가 조선족 중국동포인 고등학생 손모양(16)은 뉴스에서 중국동포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따 진저리가 친다고 했다. 중국동포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 혐오를 조장하는 어른들

학교는 학생들이 어른들로부터 차별과 혐오를 학습하는 장이기도 하다. “교사들도 학생에게 혐오표현을 써요. ‘애새끼들’ 같은 말을 하면서 동등한 상대로 존중하지 않는 거죠. 교사들이 아이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면 학생들은 반발심에 ‘쓰레기가 뭔지 보여줄게’ 하면서 더 나쁜 짓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화장하는 여학생에게 ‘술집 여자 같다’고 하는 선생님도 있어요.” 고등학교 교사 김모씨의 말이다. 수업에서의 성차별적 발언도 여전하다. “선생님과 싸운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수업 중에 ‘여자는 늙으면 애를 못 낳고, 남자는 늙어도 애를 낳을 수 있으니 여자는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박수진양(16·가명)의 말이다. 선생님들이 나서서 성소수자·이주민 혐오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 혐오나 차별의 표현들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현장은 들끓고 있는데,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육 현장이나 당국의 의지는 보이지 않아요. 학교와 사회가 혐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망신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게 필요합니다.”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의 말이다.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최미랑·이영경·이효상·김지원·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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