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한반도 위기는 미국 군수산업 호황을 부른다

박수찬 2017. 9. 30. 11: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개월 동안 레드라인(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나온 적은 없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6차 핵실험과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을 단행하며 북핵 위기를 20여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괌에서 발진한 미 공군 B-1B 전략폭격기가 18일 한반도에 전개해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미 태평양사령부 제공
미국도 초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24일 새벽 전략폭격기 B-1B 랜서와 F-15C 전투기를 동원해 이례적으로 야간에 북한의 동해 국제공역으로 투입해 대북 군사옵션 중 하나인 무력시위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다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그동안 무모한 행동을 계속해온 것을 미국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무력 충돌 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내심 이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 등장하는 미군의 B-1B와 F-33/F-35B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국 군수산업이 만들어낸 첨단 무기들에 대한 수요는 급속히 늘어난다. 북한 핵위협에 맞설 핵무기 현대화와 미사일방어(MD)시스템 구축까지 합치면 그 수요는 폭발적이다. 한국과 일본 등의 추가 무기구매 수요는 옵션이다. 말 그대로 돈 잔치가 벌어진 셈이다.

일본에서 출격한 미 해병대 F-35B 스텔스전투기 편대가 18일 한반도에 전개해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미 태평양사령부 제공
◆ 왜 미국제 무기 구매에 매달리나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직후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은 미국 군산복합체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북핵 위기를 조장 또는 묵인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모론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 중 하나인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생산하는 무기 중 구매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가 미국제다. 달러만 있다면 누구나 미국제 무기를 구매하고 싶어한다. 수요가 많다보니 미국 방산업체들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량을 늘리지만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늘 부족하다. 왜일까.

전쟁에서 쓰이는 무기는 사소한 차이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실전을 통해 성능을 검증하고 실전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미국의 매커니즘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격헬기의 원조격인 AH-1이 등장한 것도 베트남전쟁 당시 UH-1 수송헬기를 엄호하면서 베트콩을 공중에서 제압할 헬기가 필요하다는 야전부대의 요구에 신속히 응한 결과였다. 끊임없이 성능을 업데이트하고, 그 결과를 자국제 무기를 구매한 동맹국들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군수산업 경쟁력은 유럽 등 제3국을 압도한다.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무기 포트폴리오도 한 요인이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는 것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많이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시장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를 무대로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은 전장의 다양한 환경에 적합한 무기들을 갖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한 장비부터 미사일 요격, 정밀 타격 등 없는 것이 없다.

복잡한 국제정세도 미국제 무기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수십조원의 자금이 오가는 대형 무기거래는 단순한 군 전력증강 사업이 아닌, 고도의 정치 외교적 사안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에 미국제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겠다는 의미다. 미국 입장에서는 무기판매를 통해 그 나라를 신뢰한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오고가는 돈과 무기에 의해 상호 신뢰가 성립되는 셈이다.

실제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부터 단교와 국경 봉쇄조치를 받고 있는 카타르는 지난 6월 120억달러(13조7700억원)를 들여 미국제 F-15 전투기 36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단교 사태로 수세에 몰린 카타르가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 사우디 등에 맞서기 위해 F-15 전투기 구매를 추진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칼리드 알아티야 카타르 국방부 장관은 계약서에 서명한 뒤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적 군사관계를 한 발짝 더 진전시키는 조치”라고 밝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일본 역시 독자 개발 능력이 있음에도 미국으로부터 이지스 시스템과 F-35A 스텔스 전투기,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 등 첨단 무기들을 수십년째 구매하면서 미일 동맹을 강화해오고 있다.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도 미국제 무기 구매를 부채질한다. 다양한 무기체계가 상호 연동하려면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된 국방규격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 회원국들간 상호운용성 강화를 위해 군사규격을 만들어 운영한다. 하지만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동맹국들이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NATO와 같은 안보기구가 없는 아시아와 중동의 미국 동맹국들이 미국제 무기를 대량 운용하는 것도 유사시 미군과의 합동작전을 위한 측면이 강하다. 미국이 참가한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는 호주는 M-1A1 전차와 F/A-18 전투기 등을 운용한다. 한국도 미국과의 상호운용성 때문에 E-737 조기경보통제기와 F-15K 전투기 등 첨단 무기 대부분을 미국제로 구성한다.

이처럼 미국제 무기 수요는 폭증하지만 공급은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 정부는 자국 산업에서 몇 안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군수산업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무기 수출에 제한을 두고 있다. 달러를 아무리 많이 쥐어줘도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구매 시도조차 할 수 없다. 규제가 강하다보니 공급이 줄어들고, 이는 미국제 무기 가격을 끌어올리는 원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이스라엘 업체들은 구매자들의 다급한 심리를 이용해 무기를 판매, 상당한 이익을 거둔다. 미국 업체들이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해외 무기시장 점유율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공군 소속 패트리엇(PAC-2) 요격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공군 제공
◆ ‘불량국가’ 특수에 美 군수산업 주가 급상승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 군수산업은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일본, 한국 등의 무기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다 이란 위협과 이슬람국가(IS) 소탕전 등 중동 정세가 맞물린데 따른 것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 18일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방예산을 결정하는 국방수권법을 89대9로 가결했다. 7000억달러(796조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안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년보다 10% 증액해 의회에 제출한 국방예산안 6400억달러보다 많다. 이 예산안이 확정되면 전시예산을 제외하면 사상 최대 증가율을 기록하게 된다. 

7월30일 한반도에 전개한 B-1B 폭격기가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와 함께 비행하고 있다. 한미 연합작전에 필요한 상호운용성은 미국제 무기 의존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공군 제공
구체적으로는 북한 ICBM 요격미사일 28기 확보와 F-35 전투기 구매량을 정부안의 70기에서 94기로 늘렸다. 미사일 구축함 1척을 19억 달러에 도입하고 F/A-18 전투기도 정부안보다 10대 늘린 24대를 구입한다. 노후화된 ICBM과 전략폭격기, 핵순항미사일 등 핵전력 현대화도 포함됐다. 2030년까지 1조 달러 이상이 소요될 핵전력 현대화는 미국 주요 방산업체들이 모두 뛰어들고 있다. ICBM은 보잉과 노스럽 그루먼, 핵순항미사일은 레이시온과 록히드 마틴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B-52와 B-2 사이에 끼어 역할이 애매했던 B-1B 폭격기는 한반도 주변 지역으로 빈번히 출격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 덕분에 성능 개량 추진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방산업체들과 B-1B가 주둔하는 미국 본토 기지의 고용효과에 예민한 정치인들에게는 호재다.

미군 수요에 더해 미국의 동맹국들이 제기하는 미국제 무기 구매 요구도 미국 군수산업의 호황을 돕고 있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위협에 직면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능력을 높이기 위해 첨단무기 판매 확대를 위한 개념적 승인을 했다고 트위터에 밝히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한 무기 판매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도입을 검토중인 이지스 어쇼어 시스템. 위키피디아
일본은 북한 화성-12 IRBM이 자국 영토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에 낙하하자 미사일방어 능력 강화를 위해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어쇼어(8000억원) 2기를 도입해 2023년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이지스 어쇼어는 이지스함에 탑재된 요격미사일과 SPY-1D 레이더를 지상에 배치한 것으로 루마니아 주둔 미군기지에 배치되어 있다. 이밖에도 글로벌호크와 같은 고고도무인정찰기와 재즘(JASSM) 공대지미사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공격무기 판매 가능성도 제기된다. 적 기지 공격능력을 갖지 못한 일본에 미국제 정밀유도무기가 공급되면 일본 자위대의 공격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동맹국의 군사력 증강을 통해 북한 도발을 억제하겠다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한국의 경우 F-35A 전투기, P-8A 해상초계기, MH-60R 해상작전헬기 등의 구매가 거론된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해군 제공
무기 판매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국 방산업체의 주가도 급상승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보잉의 주가는 60% 이상, 레이시온은 25% 상승했다. 록히드마틴과 노스럽 그루먼도 18%씩 올라 같은 기간 다우지수 평균주가 상승률 13%를 웃돌았다.

북한이 핵탄두를 화성-14 ICBM에 탑재해 발사할 능력을 갖추게 되면 미국이 군사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군사옵션 사용 가능성이 표면화되면 미국 군수산업은 이라크 전쟁 이래 가장 큰 호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실행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고, 이는 막대한 양의 무기를 필요로 한다. 한국과 일본의 수요 증가까지 합쳐지면 8000억달러가 소모된 이라크 전쟁만큼 많은 돈이 미국 군수산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위기가 돈으로 바뀌는 매커니즘이 섬뜩해지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