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그녀들이 페미니즘을 읽는 까닭

곽아람 기자 2017. 9. 28.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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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환경에서 자란 세대, 직장·결혼 등 일상 속 차별에 분노
"지적인 자기 방어 위한 수단"

페미니즘 서적 돌풍이 계속되고 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2만7000부 팔린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래 꾸준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남자들은…'이 출간된 2015년 5월부터 올 9월까지 출간된 이 분야 서적 종 수는 115종. 10년 전인 2005년 5월~2007년 9월 출간 종 수(82종)의 1.4배다. 판매는 더 가파르다. 교보문고의 여성학 서적 판매 10년 전 동기 대비 신장률을 살펴보면 2015년 5~12월은 128.6%, 2016년은 321.7%, 올해 1~9월은 529.8%다.

페미니즘 책의 최근 트렌드는 에세이다. 좀 더 직설적이면서 자기고백적이다. 이번 달만 해도 서민 단국대 교수의 '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42명이 쓴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송가연의 '오늘도 비출산을 다짐합니다' 등 이 분야 에세이가 쏟아졌다. 최지환 인터넷교보문고 역사·정치 분야 담당 MD는 "일상에 스민 여성 차별을 주제로 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여성 민사린의 신혼 일기를 통해 일상 속 성차별을 그려낸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며느라기’ 페이스북

공감의 주류는 아무래도 20~30대 여성들이다. 교보문고가 파악한 올해 상반기 기준 20대 여성 페미니즘 서적 구매자 수는 전년 대비 3.65배, 30대 여성은 2.28배로 늘었다. 여권(女權)은 과거보다 신장됐다는데 왜 2030 여성들은 페미니즘 책을 손에 쥐는 것일까.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평등하게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차별에 더 민감하다. 사회생활 하면서 처음 맞닥뜨린 차별에 대한 분노가 이들을 페미니즘 담론으로 이끈다"고 했다.

08학번 신수연(28·회사원)씨는 요즘 난생처음 페미니즘 책을 읽는다. 대학교 때까지 페미니즘에 무심했지만 취업을 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남미 파견 근무 지원을 했는데 기혼 남자 후배에게 밀렸다. 담당 간부가 '여자라 보내기 부담스럽다' 하더라." 그는 "지적인 자기 방어라도 하자 싶어 책을 사 본다"고 했다.

결혼도 2030 여성들이 성차별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다. 연재 넉 달 만에 인스타그램 팔로어 27만명을 돌파한 웹툰 '며느라기' 속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해외출장을 간다고 하자 "새신랑이 밥도 못 얻어먹으면 어떡하냐"고 말한다. 이 에피소드엔 분노의 댓글 1400여개가 달렸다. 20대 여성들 사이에선 소위 젠더(사회적 성) 감수성이 맞지 않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젠더 이별'이 유행인데 결혼 제도 내 성의 역할은 고착화돼 있어 생기는 현상이다. 30대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이야기를 그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10월 출간 이래 32만부 팔렸다. 두 아이 엄마 유은서(39·회사원)씨는 "'82년생'을 '78년생'으로만 바꾸면 딱 내 얘기"라고 했다.

여성학자 조주은 국회입법조사관은 "양성평등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이지만 이런 책을 남녀가 함께 읽어야 한다. 자칫하면 남녀 간 인식의 격차만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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