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약기업, AI를 집어들다

최인준 기자 2017. 9.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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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대비 신약 개발 성공률 낮아
글로벌 제약 회사들 AI 활용으로
기존 과정 단축, 비용 감소 기대

신약 기근에 시달리는 세계 제약업계에 '인공지능(AI)'이라는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제약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을 신약 개발에 적극 활용하며 새 도약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신약 연구개발(R&D)에는 최대 10년의 긴 시간이 걸리고, 수조원대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지만 정작 개발 성공률은 10%를 밑돈다. 신약 허가 건당 R&D 비용도 평균 24억달러(2조7338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신약 R&D 비용은 2015년 1498억달러(약 170조원)에서 연평균 2.8%씩 증가해 2022년에는 1820억달러(20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구 투자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성공 확률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제약업계는 글로벌 제약기업을 중심으로 속속 AI를 도입하며 이런 '신약 리스크' 극복에 나서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과정을 대폭 줄이고 임상시험 단계에서의 비용도 크게 줄이겠다는 것이다. 의약품 특성상 사람이 수행하는 실험 절차를 없앨 수는 없지만 모든 경우를 다 실험하고 증명해야 하는 기존 과정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약사·IT업체 손잡고 인공지능 개발

글로벌 1위 제약사인 미국 화이자는 지난해 12월 IBM의 클라우드(가상 서버) 기반 인공지능인 '신약 탐색용 왓슨(Watson for Drug Discovery)'을 도입해 항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화이자는 왓슨에게 그동안 진행했던 암 관련 연구 자료를 학습시키고 신약이 작용할 만한 표적을 발굴하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은 지난해 IT기업 베네볼렌트AI와 협약을 맺고 신약 후보물질 탐색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기로 했다. 수만 건의 해외 연구 논문을 검색하고 수백만 종류의 화학물질 중에서 최적 물질을 찾는 작업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약기업 산텐은 인공지능 '듀마'를 이용해 녹내장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영국 최대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지난 7월 IT 기업 엑시엔시아와 협력 계약을 맺고 인공지능 개발에 4300만달러(492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AI의 정보 분석 능력은 사람의 1만 배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 수준대로라면 인공지능은 1년에 신약개발과 관련한 논문 100만 건 이상을 읽을 수 있고, 400만 명 이상의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 보통 연구자 한 명이 1년간 200~300여 건의 신약개발 자료를 조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사람에 비해 최소 1만 배 이상 데이터 분석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건 학습 방법이 기존 컴퓨터와 다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모든 정보를 '0'과 '1'의 이진법으로 처리하고 저장한다. 반면 인공지능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인 자연어 방식으로 데이터를 처리한다. 사람이 읽는 것과 같은 언어로 된 문서를 있는 그대로 읽어 지식을 축적하고, 새롭게 가공해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다. 왓슨은 2011년 2억 쪽의 문서를 읽은 후 TV 퀴즈쇼에 나가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실험도 가상 공간에서 동시에 엄청난 수를 진행할 수 있다. 미국 머크가 도입한 인공지능 시스템 '아톰넷'은 3차원 화학물질 구조를 가상 공간에 만들어 다양한 분자와의 결합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한다. 신약 후보 물질이 어떤 분자와 결합해서 어떤 작용을 일으킬 것인지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후보 물질 종류를 대폭 줄임으로써 임상시험 단계에서 실험동물의 희생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내 기업 공동의 AI 인프라 시급

인공지능 도입에 활발히 나서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아직 인공지능 활용에 소극적이다.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해 11월 인실리코 메디신과 협약을 맺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명 연장과 항노화 신약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는 정도다. 인실리코 메디슨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을 장수 연구에 도입한 미국 의료기기 업체다.

배영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문위원(전 IBM 고객기술자문 상무)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신약 후보 물질 탐색에서부터 임상시험까지 전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국내 기업에게는 글로벌 기업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가 단독으로 인공지능을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배 전문위원은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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