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암호화폐 손가락 말고 블록체인 달을 보라
암호화폐 투자 열풍 과열된 느낌
금융뿐 아니라 복권·통신·투표까지
블록체인이 몰고올 혁신 주목해야
그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한 편에선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헐뜯는다. 다른 한 편에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추켜세운다. 사기꾼이란 지적은 최근 달아오르고 있는 암호화폐 투자 열기를 우려하는 쪽의 시각이다. 인터넷도 잘 모르는 촌로까지 암호화폐 투자를 기웃거릴 만큼 위험한 투전판을 만든 장본인이란 얘기다. 그러나 최근의 암호화폐 투자 열풍에 대해선 부테린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품”이라고 단언했다.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암호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이란 기술의 미래였다.
한 동네 사는 갑과 을이 논을 사고판다. 두 사람만 계약해선 불안하다. 등기소는 너무 멀다. 고민 끝에 계약서를 수백장 만들어 온 동네 사람에게 다 나눠주고 보관하게 했다. 나중에 둘 중 하나가 변심해도 계약서 변조는 어렵다. 동네 사람 계약서를 다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현실 세계에선 이런 계약이 불가능하다. 거래 때마다 동네 사람을 다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디지털 세계에선 식은 죽 먹기다. 동네 사람이 인터넷에 연결만 돼 있으면 빛의 속도로 계약서를 공유할 수도 있고 수시로 대조도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이를 디지털에서 구현한 기술이다. 레고 같은 디지털 블록에 매 순간 일어나는 거래를 암호화해 담은 뒤 이를 사용자 전체가 공유한다. 블록이 새로 생길 때마다 자전거체인처럼 뒤로 쭉 이어 붙기 때문에 블록체인이라고 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A씨와 B씨의 거래기록을 보관할 등기소는 필요 없어진다. 사용자 모두가 거래기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변조도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거래에 응용한 첫 성공작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금융거래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블록의 크기를 작게 만들었다. 부테린은 이 점이 불만이었다. 블록 안에 복잡한 거래까지 넣을 수 있게 만들면 금융거래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 결과 탄생한 게 이더리움이다. 비트코인이 전자계산기라면 이더리움은 스마트폰에 비유되는 이유다. 비트코인으론 단순 계산만 가능하다. 이와 달리 이더리움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얹어 전화기로도, 게임기로도, 신용카드로도 쓸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정부가 허가권을 쥔 복권사업도 블록체인 기술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가씨는 1234번을, 나씨는 3456번 복권을 샀다는 기록을 블록체인에 담아 전체가 공유하면 된다. 정해진 날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 추첨된 당첨자에게 이더로 상금이 지급된다. 복권사업자도 수수료도 필요 없다. 위·변조나 해킹 위험에 노출된 어떤 거래나 정보도 이런 식으로 싸고 투명하면서도 안전하게 처리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된다.
한데 블록체인 기술엔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블록의 크기가 제한돼 담을 수 있는 정보에 제약이 있다는 거다. 이 때문에 1초에 수만~수십만 건씩 일어나는 거래를 처리하자면 속도가 떨어진다. 부테린이 언급한 ‘확장성(scaling)’ 문제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이 한계를 “2~5년이면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길어도 5년 후면 금융거래는 물론이고 통신·실명확인·복권은 물론 투표제도까지 블록체인 기술이 쓰이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그러니 널뛰는 암호화폐 가격에만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거다. 물론 암호화폐도 블록체인 시스템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경제적인 인센티브다. 돈을 벌 기회가 있어야 기를 쓰고 채굴을 할 것이고 그래야 블록이 계속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선 곤란하다. 부테린이 이번 방한에서 던지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암호화폐라는 손가락만 쳐다보지 말고 블록체인이란 달도 좀 봐달라.”
정경민 기획조정2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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