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왜 헌법소원 대상이 됐나

박소연 기자 입력 2017.09.27.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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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내삶을바꾸는개헌-교육개혁]①교육의 자율성·정치적 중립성 둘러싼 반세기의 논란


대한민국에서 교육만큼 뜨거운 이슈가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에도 교육은 담겨 있다. 6개 조항이다. 이중 논란이 되는 것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한 제31조 제4항이다.

◇반세기 동안 정권따라 '오락가락' =이 조항은 역사 교과서 논란과 맞닿아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교과서’ 등 논란이 이 헌법 조항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키며 가장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전쟁 후 검정으로 출발한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단행하며 국정화된 후 김대중 정부부터 다시 검정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역사교과서 이념 논쟁'이 본격화된 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11월이다. 북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한국의 역대 정부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가 일부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지목한 때다. 교육부는 곧 교가서 내용 38건에 대해 수정 지시를 내렸다. 이에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이듬해 1월 정부의 일방적 교과서 수정으로 학생들의 교과서 선택권, 자유로운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고 논란은 반복됐다. 2013년 11월 정부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7종에 대해 '6.25 전쟁의 발발 책임이 남북 모두에게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도록 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41건의 수정명령을 내렸다. 6종 교과서의 일부 집필진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6년 1월에야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는 취지의 최종 판결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는 수정된 교과서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국정화를 추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며 정부가 하나의 역사를 보급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2015년 1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장덕천 변호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담은 교육부 고시와 이를 근거한 법률인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쟁점은 역시나 교육의 자율권 침해 여부였다. 장 변호사는 “헌법이 학생에게 부여한 '자신의 교육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에는 학교 선택권뿐 아니라 교과서를 선택할 권리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국정교과서 제도를 통해 편협하고 극단적인 역사관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고 이는 교육의 자주성·정치적 중립성 위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돼 교과서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정 교과서 제도에 대해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해야 할 교과서 제도를 행정규칙에 불과한 교육부 고시에 위임함으로써 헌법상 포괄위임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에도 교육권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던지는 헌법소원에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폐기 지시에 따라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정·검정 혼용에서 검정 체제로 전환하는 고시 개정을 완료했다. 10년 가까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역사 국정교과서가 정권 교체로 단번에 폐기된 것 자체가 이 문제의 법적 취약성을 드러내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헌재는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된 헌법소원에 적극 대응해 헌법에 명시된 교육권을 적극적으로 수호하는 대신 '침묵'함으로써 당시 정권의 입장에 사실상 동조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정치쟁점화됨에 따라 헌재가 판결에 따른 위험부담을 피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헌재는 결국 2015년 제기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헌법소원과 관련해 청구인이 제기한 문제가 사라졌다고 보고 각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헌, 교육 자율성 보장 이뤄낼 수 있을까=이와 관련 교육권이 정권에 휘둘리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개헌 과정에서 교육의 중립성과 자율성,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현행 헌법 31조6항은 교육제도의 기본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국회가 이를 다시 통째로 시행령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 교육제도의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국회의 숙의를 거쳐 법률로 정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밖에도 현재 법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기본권 차원에 머물러 있는 교육에 대해 국가의 책임성을 높이고, 고령화 시대에 평생교육권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개헌 과정에서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국회 개헌특위의 공청회에서 제기됐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에는 이미 교육의 정치적 중립과 자율성이 규정돼 있어 이를 준수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를 정치권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교육 분야에 집어넣으며 의도적으로 변질한 것이 문제"라며 "원론적으로 보면 국가가 교과서를 단일화시키는 것은 자율성 측면에서 무리가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교육계가 결정해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만 교육제도의 구체적 내용까지 모두 헌법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교육을 국가가 주도한다고 하지만 국가는 운영할 뿐이고 세부적인 내용, 제도는 교육자들이 현장에서 논의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에 의해 법률로 결정되는 것이 옳은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것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현행 헌법이 규정하는 교육권은 시민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공교육에 관한 것으로 사교육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교육권을 기본권으로 정할 때 어느 범위까지 한정할지 어려움이 있다.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오기 때문에 개헌 때 이러한 부분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