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사태 1년.. '개미의 눈물' 아무도 안 닦아줬다

2017. 9.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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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발표한 뒤 악재는 늦게 공시.. 주가 60만원서 폭락.. 아직 40만원대
법인-기관투자자 미공개정보로 무사

[동아일보]

윤모 씨(73)는 1년 전 9월 30일 아침을 잊지 못한다. 여느 때처럼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조간신문을 꼼꼼히 챙겨보던 그의 눈을 사로잡은 기사가 있었다. 한미약품이 미국 바이오 기업과 1조 원대 신약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었다. 오전 9시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윤 씨는 집을 팔아 갖고 있던 돈에 외상(미수거래)까지 당겨 6억여 원어치 한미약품 주식을 샀다. 하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래를 씹어가며 평생 아끼고 번 돈이 바람처럼 날아갔다. 오전 9시 29분 한미약품이 2015년 체결한 또 다른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성 공시를 올린 것이다. 악재성 공시가 올라오기도 전에 미공개 정보를 입수한 기관투자가들은 공매도로 주식을 팔아치웠지만, 그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30분 만에 1억1500여만 원을 잃었다. 윤 씨는 경기 파주의 셋방에서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로 매일같이 출근하며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1인 시위를 벌이는 게 일이 됐다.

한미약품 늑장 공시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한미약품과 기관투자가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반면 개인투자자들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 1년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는 개미의 눈물

한미약품은 지난해 9월 29일 장 마감 후 신약기술 수출 계약 사실을 공시했다. 그러나 같은 날 벌어졌던 악재성 소식은 다음 날 개장 후 29분이 지나서야 발표했다. 한미약품 주가는 폭락했고, 전날보다 18.06%가 하락한 채 장을 마쳤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가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26일 한미약품 주가는 44만1000원으로 지난해 9월 30일 시초가 대비 27.34%가 떨어졌다. 늑장 공시와 미공개 정보 이용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불똥은 제약·의약품 업종 전반으로 튀었다. 지난해 9월 30일과 비교해 올해 8월 30일까지 코스피가 15.48% 오른 데 비해 제약·의약품 업종은 평균 6.07% 주가가 하락했다.

문제는 주가 폭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이 짊어지게 됐고,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건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악재성 공시가 올라오기 전 기관투자가들은 미공개 정보를 입수하고 공매도로 주식을 팔아치워 손실을 피했다.

검찰 조사 결과 한미약품 임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정보 수령자 일부가 과징금 처분을 받았을 뿐 제대로 된 형사 처벌을 받은 이는 극소수였다. 정보를 유출한 한미약품 임원과 이를 전달받은 보령제약 임원 등 두 명은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한미약품(법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불법 공매도 세력도 밝혀지지 않았다.

윤 씨를 비롯한 한미약품 소액주주 400여 명은 이에 대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본시장법상 기업에는 불공정 거래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 기업에 내부통제 책임 물어야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는 2015년 48건에서 2016년 88건으로 83.3%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6월 엔씨소프트 주가 급락 이전에 경영진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치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금융당국이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으려면 기업에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원들의 일탈 행위를 막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회사의 경영진이 내부통제를 통해 불공정 거래를 막는 데 솔선수범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대 미공개 정보 이용이나 부정 거래, 시세 조종 등 3대 불공정 거래에 대해 금융당국에서 효율적으로 경제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형사처벌의 경우 확정판결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처벌도 제한적”이라며 “금융당국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과징금 등 경제적 제재를 가해 범죄 예방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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