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사찰공화국' MB정권 5년, 무슨 일이..

정환보 기자 2017. 9. 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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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무차별적 ‘비판 세력 제압 활동’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 교수, 언론인 등 각계각층 인사들의 숨통을 끊기 위한 일을 벌였다는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저열한 행태는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마각이 드러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중첩되면서, 당시 정권 자체가 ‘총체적 사찰 공화국’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국가기구와 사정기관들은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보위에만 여념하는 친위대 역할을 하는 등 마치 사병처럼 활동해 왔다.

■ 촛불·노무현 서거 거치며 ‘빅 브라더’로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석 달 만인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시쳇말로 데였다. 반 년 전 대선에서 530만표 차로 압승한 데 이어 18대 총선까지 승리한 이 전 대통령은 겉으로는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사과했다. 하지만 속내는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정권은 ‘배후 세력 캐내기·비판 세력 옥죄기’에 착수했다. 곧바로 7월 신설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소속은 총리실이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의 지휘를 받는 관가의 저승사자였다. ‘특명사항은 VIP(이 전 대통령)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 등 무협지에 나올 법한 표현이 조직 내부 문건에 등장했다. 사병화의 증거는 조직 구성에 있었다. 지원관부터 주요 구성원, 컨트롤타워 역할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은 모조리 경북 포항·영일 인근 출신의 영포라인이었다.

공식적으로 공직기강을 담당한 이 조직은 2010년 6월 김종익씨 사찰 건이 언론에 들통날 때까지 민간인까지 ‘반정부’라는 딱지를 붙여 마구잡이로 사찰하며 정신적·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불법 사찰이 폭로된 이후에는 연루 공무원들에게 대포폰과 관봉에 싸인 현금을 쥐어주며 증거 인멸에 총력을 다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도 촛불집회 반 년 후인 2009년 1월 수뇌부가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전임 김성호 국정원장에 대한 청와대 행정관의 사찰 의혹도 불거질 만큼 암투도 심했다. ‘만사형통’ 이상득 의원의 오랜 보좌관인 ‘왕차관’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의 개입설이 나돌았다.

이 전 대통령의 ‘심복’ 원세훈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심리전단 조직·인원을 확대에 사회 각계 인사를 압박하고 목줄을 죄는 데 총력을 다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대응 활동을 특히 강화했다. ‘노 자살 관련 좌파 제압논리 개발·활용 계획’ 등과 같은 보고서까지 작성해 주도면밀하게 온·오프라인 여론전을 폈다.

이 전 대통령 1인을 위한 특명부대 성격의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외곽 여론전에 정보력이 총동원되는 등 ‘투 트랙’ 권력 사유화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도 이때쯤이었다.

■ 한 사람을 위한 정치·선거개입

당시 사정기관의 활동 목표는 1인 권력 공고화에 있었다. 얼핏 보면 ‘좌파·진보 세력 제압’ 등을 내걸면서 정치적 대결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정권 보위에 거슬리는 인물들은 모두가 사찰과 공격의 대상이었다. 이번 보도자료에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안상수, 권영세 의원 등 여권 인사가 표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당시 한나라당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의원, 이완구 충남지사 등 이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여당 정치인들을 전방위로 사찰해 충격을 줬다.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2009년 도지사직을 사퇴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훗날 국가인권위 직권조사에서 “공포감이 들고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여론전·심리전에 동원하던 국정원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패배한 이후 특히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국정원은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 안보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한편 4대강 사업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총선·대선에 국정원이 특정 정치인들을 집중 공격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개입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만약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국정원의 각종 불법 활동이 탄로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구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의심된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선거개입 활동은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친위대 활동 내역은 4년 동안 묻혀버렸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로 총체적 사찰 공화국의 베일은 늦게나마 벗겨지기 시작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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