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자구안'에 채권단 퇴짜.."실패 경영진 회초리 엄격해져야"

노희준 2017. 9. 2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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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산업은행이 26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측의 자구안을 공식 거부한 것은 자구안의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의 표현대로 구체성이 없는 ‘깜깜이 자구안’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그간 박 회장측이 ‘금호’ 상표권 사용 조건을 두고 채권단과 지루한 공방을 벌어오면서 신뢰를 잃어버린 점도 한몫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채권단은 이에 따라 금호타이어의 회생을 위해 이달 말 1조3000억원의 여신만기를 연장하고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 속에 경영정상화에 나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호타이어와 같은 구조조정 기업의 실패 사례를 줄이기 위해선 기존 경영진에 대한 우선매수권 및 경영권 부여 등 ‘온정주의적 관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박삼구 자구안 퇴짜...왜?

박 회장측이 산업은행에 제출한 자구안 규모는 최대 7300억원에 달한다. 금호타이어 부실의 주원인인 중국 공장을 최대 4000억원에 매각하고 유상증자로 2000억원을 조달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박 회장측은 중국 공장을 매입할 상대방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구두로는 투자확약서(LOC)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이 같은 구체적 정보의 결함은 채권단을 설득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다.

또 유상증자를 통한 2000억원 조달 방안의 경우 결과적으로 채권단 지분을 떨어뜨리고 박 회장 지분을 20%로 올려 박 회장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꼼수’로 채권단은 평가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은 유상증자 2000억원 방안을 박 회장의 ‘알박이’ 지분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상표권 사용을 두고 빚어진 채권단과 박 회장측간 갈등도 여전히 문제였다. 금융권은 박 회장이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로의 매각을 무산시키기 위해 금호타이어 상표권을 지렛대로 ‘몽니’를 부린 것으로 본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박 회장에게 다시 경영정상화의 기회를 주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매각을 무산시켜 회사가치를 떨어뜨린 후 헐값에 인수하겠다는 게 속셈 아니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패한 경영인의 무모한 ‘경영권 집착’이라는 질책인 셈이다.

박 회장을 끌어내린 채권단은 일단 금호타이어를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할 방침이다. 이로써 금호타이어는 2014년 말 워크아웃 졸업 이후 채 3년도 안 돼 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됐다. 자율협약은 금융기관과 기업이 사적 합의(신사협약)를 통해 기업재무구조개선에 나서는 것으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받는 워크아웃보다 한단계 느슨한 구조조정 방식이다. 자율협약에 들어가기 위해선 채권단 100%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구조조정 후폭풍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장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으로 들어갈 때 채권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충당금 부담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에 돌입한 기업은 여신 건전성을 ‘고정이하’로 분류해야 돼 금융권의 충당금 추가 부담이 커진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르면 오는 29일쯤 자율협약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고통분담 속 자율협약...온정주의가 구조조정 난항 초래

채권단은 일단 이달 말 돌아오는 1조3000억원의 여신 만기를 유예하고 신규 자금 투입 등을 포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시 채권단의 구체적인 실사와 노동자의 고통분담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이해당사자들이 협조해 고통을 분담하면 금호타이어가 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산은 관계자는 신규 자금 투입 필요성과 관련, “당장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해외금융기관의 여신도 롤오버(만기연장)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가 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박 회장의 그룹 재건의 꿈은 당분간 불가능하게 됐다. 그간 산은 속을 태웠던 박 회장은 채권단 회의에 앞서 사실상 ‘백기투항’에 나서 ‘명예퇴진’하는 방법을 택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채권단 지분 32%를 가진 산은은 지난 23일 이 회장이 박 회장과 직접 만나 자구안에 대해 ‘부실 판단’이 내려질 것을 미리 전달했고 박 회장은 산업은행의 거부→채권단 부결→경영권 박탈의 수순으로 나가기 전 미리 백기를 들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국에 비해 기존 경영진에 대해 훨씬 온정적이고 여러 기회(우선매수권, 경영권 부여)를 주고 있어 결과적으로 채권단 손해가 커지고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며 “실패한 경영인에 대한 처벌이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채권단은 워크아웃이 개시된 지난 2010년 박 회장에게 경영권과 우선매수권을 부여했다. 우선매수권은 우선협상대상자가 제시한 동일한 가격으로 회사를 먼저 인수할 수 권리다. 상표권과 우선매수권, 경영권까지 갖고 있는 기존 경영자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 매각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얘기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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