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낙하산 흑역사 '아듀'..장수 CEO 시대 개봉박두

김태성 2017. 9. 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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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규·함영주·이광구 등 올 임기만료 8명 줄줄이 연임..역대급 실적 경영능력 입증
정부, CEO 꽂아넣기 구태 주춤..이사회 '거수기' 오명 탈피 노력
CEO 연임러시 1회성 안되려면 능력 검증땐 장기재임 원칙 필요

◆ 은행 CEO 연임시대 (上) ◆

은행권 수장 연임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8명의 은행권 최고경영자(CEO)가 연임됐거나 연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수시로 은행 CEO가 교체됐던 이전 모습과는 확 달라진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질적인 관치(官治)와 정치권 외풍 속에 낙하산을 타고 금융사 수장 자리에 앉으려는 수요가 넘쳐나다 보니 연임은커녕 원래 임기도 못 채우고 물러나는 CEO가 부지기수였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적폐를 청산하고 은행권 장수 CEO 출현을 가능케 하는 변화의 바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일단 실적이다. 올 들어 은행을 필두로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상반기에 역대 최고 수준에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상반기에만 은행지주사 8곳의 순익(연결 재무제표 기준)이 지난해 상반기 대비 64.8% 급증한 6조1933억원에 달했다. 역대급 실적을 거둬 경영능력을 입증한 셈이다. 전문성과 관계없이 논공행상을 위해 CEO 꽂아넣기를 서슴지 않았던 정부도 구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거수기'란 오명을 들었던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등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점도 그동안 드물었던 은행 장수 CEO 탄생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KB금융지주 확대지배구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윤 회장은 11월 20일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연임을 확정하고 2020년까지 KB 수장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008년 KB금융지주 출범 후 첫 연임 회장이다. 윤 회장에 앞서 지난 22일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이 은행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차기 행장 단독 후보로 결정됐다. 또 지난 3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과 이광구 우리은행장을 시작으로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이동대 제주은행장, 손교덕 경남은행장 등 올 들어 연임이 확정됐거나 유력한 금융지주 회장·은행장은 8명이다. 올해 임기가 끝나 교체됐거나 교체될 예정인 은행권 CEO(시중·외국계·지방은행·농협)가 총 15명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CEO가 연임에 성공한 셈이다. 은행들의 모임인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연임 CEO 숫자와 비중 모두 올해가 최고"라고 설명했다.

KB금융지주의 윤종규 2기 출범은 그간 낙하산 인사들의 놀이터로 불릴 만큼 외풍에 취약했던 KB금융 흑역사를 구성원들 스스로 끝냈다는 점에서 국내 은행권의 달라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지주 출범 후 1대 황영기 회장, 2대 어윤대 회장, 3대 임영록 회장까지 전임 회장 중 누구도 당시 정권의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결국 각종 구설에 올라 임기 중간에 자리를 비우거나 사외이사와의 갈등 끝에 연임을 포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택은행 합병 후 '리딩뱅크'를 자처했던 국민은행 위상이 급격히 추락해 신한은행에 은행계 선두 자리를 넘겨주는 굴욕까지 맛봐야 했다. 지주회장과 행장 간 내분인 'KB사태'로 어수선했던 2014년 취임한 윤 회장은 회장·행장 겸직으로 강력한 지배력을 구축해 현대증권·손보 등을 인수·합병하고 올해 2분기 당기순이익(9901억원) 기준으로 신한을 제치는 성과를 냈다.

2015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후 첫 CEO이자 최초의 연임 통합은행장이 된 함영주 은행장 역시 올 상반기 9988억원의 당기순익을 거둬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역대 최단 기간인 9개월 만에 두 은행의 전산 통합을 끝내고 동일 지역 근접 점포 통폐합과 직원 교차 발령 등 혁신을 이어간 덕분에 올해 초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단독 후보로 일찌감치 연임을 확정 지었다.

다만 올 들어 이어지고 있는 CEO 연임 러시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향후 은행 장수 CEO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닦으려면 은행 스스로 최적의 CEO를 선택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부에서 회장·행장 후보를 추천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사외이사도 제 목소리를 내면서 과거와는 달리 이사회가 실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위원은 "이래야 금융권 CEO는 단순히 내부의 긍정적인 평가만으로는 연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 능력이 검증됐다면 기본적으로 현직 CEO의 장기 재임을 원칙으로 삼아 경영 안정성을 꾀하는 영미식 금융사 지배구조가 국내 금융계에도 뿌리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연임 가능성이 높아지면 CEO 입장에서도 기존에 길어봤자 3년 임기만 보장받을 때에 비해 단기적 성과보다는 중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출 개연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조직과 CEO 모두 '윈윈'하는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

보험권의 경우 이미 장수 CEO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회사들이 적잖다. 오너인 신창재 회장이 2000년 이래 올해로 18년째 수장을 맡고 있는 교보생명은 국내 '빅3' 생보사로 자리 잡았다. 전문경영인 중 홍봉성 라이나생명 사장은 2010년 이후 6연임에 성공했다. 취임 당시 970억원이었던 연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말 2459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2011년 취임 후 7년째 한화생명을 이끄는 차남규 사장도 재임 기간 중 자산 규모를 65조원에서 108조원으로 두 배 늘려놨다. 영업·보상·신사업 등 보험 관련 전 분야를 경험한 유일한 보험사 CEO로 유명한 김정남 동부화재 사장도 특유의 전문성을 발휘해 동부화재를 손해보험 강자로 성장시켰다. 이 덕분에 지난해 5월 연임에 성공해 2010년부터 내년까지 햇수로만 9년간 CEO 자리를 지키게 됐다.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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