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도 스크린셀러가? '근현대 베스트셀러 특별전'

백승찬 기자 2017. 9.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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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웹툰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문화 콘텐츠 중 하나다. 좋아하는 작품이 업데이트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곧바로 접속해 감상하는 이용자들도 많다. 만일 작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감을 어겨 업데이트를 하지 못한다면? 작가의 ‘프로 의식’을 탓하는 악플들이 줄을 잇곤 한다.

오늘의 독자들이 극성스러운 것일까. 과거의 독자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1906년 이인직이 ‘만세보’에 연재한 <혈의누>는 신문 연재 소설의 기원이 됐다. 조선 땅에서 읽을 수 있던 그 어느 문학작품과도 달랐던 이 신소설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간혹 이인직에게 사정이 생겨 연재를 하지 못한 날이 있었다. 그러면 신문 독자들은 애궂은 배달원을 붙들고 왜 연재가 빠졌는지 닥달하기 일쑤였다.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근현대 베스트셀러 특별전’에서는 이처럼 1910~80년대 베스트셀러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늘날이나 예전이나 인기작품을 두고 벌어진 사회적 현상들엔 유사성이 있었다.

영화,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이에 기반한 ‘스크린셀러’가 나타나곤 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문학이 영상매체에 종속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셀러는 1920년대에도 있었다. 당시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명금>(원제 Broken Coin)이 공전의 인기를 끌자, 이 영화를 각색한 동명 소설이 나온 것이다. 소설 <명금>(1921)은 영화처럼 인기를 끌어, 출간 5년만인 1926년 3판을 찍기에 이른다. <명금>을 쓴 출판인 겸 작가 송완식은 연구자에게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지만, 1920년대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는 국어학자 주시경이 운영한 조선어강습원 출신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송완식의 조선어강습원 졸업기념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사진에는 타계 넉 달 전 주시경의 모습이 담겨 있어 희귀자료로 꼽힌다.

1920년대의 ‘스크린셀러’ <명금> 표지. 영화 스틸 이미지를 사용해 눈길을 끈다.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1980년대의 베스트셀러인 김홍신의 <인간시장>은 ‘굿즈’ 제작까지 불렀다. 마치 요즘 출판사들이 연필, 파우치, 머그컵 등으로 열성 독자들을 불러모으는 것 같은 현상이다. <인간시장>은 발표 2년만에 100만부를 팔아 한국 최초의 ‘밀리언 셀러’가 됐고, 도합 560만부라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인간시장>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이번 전시회에는 영화 <인간시장>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성냥이 전시되고 있다. 김홍신이 판권장에 찍은 도장도 함께 나와있는데, 도장 끝이 상당히 닳아있다는 점에서 당시 책의 엄청난 판매량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광수가 <무정>(1917)을 쓰면서 책상에 두었던 청동불상도 처음으로 볼 수 있다. 김내성의 <청춘극장>은 1952년 완간됐는데, 전쟁중이었음에도 부산에서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동리, 노천명, 안수길, 박종화 등 쟁쟁한 문화인들이 방명록에 남긴 축하메시지를 통해 당시 문화계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실제 텃밭을 일구며 글을 썼던 <토지>의 박경리가 사용했던 호미도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10일까지.

춘원 이광수가 글을 쓰는 책상에 두었던 청동불상.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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