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림을 팔고 싶다' ..원로 화백의 소원
[오마이뉴스 이상기 기자]
▲ 아름답고 고상한 누드화 |
ⓒ 문은희 |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누드화 걸기를 꺼리는가? 전시장에도 가정에도 그리고 미술관에도 그렇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도덕적으로 풍기문란이라 그런가? '19금'이라는 규정 때문일까? 사람들의 이목이 두렵기 때문일까? 누드를 예술로 보지 않고 실물로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상병의 표현처럼 미녀, 나부, 여인으로 변해가는 그림에 손뼉을 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 전시기획을 하는 큐레이터, 화랑을 경영하는 화상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누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화가에게 1차 책임이 있다. 대상에 대한 관찰 능력, 대상의 특징을 잡아 짧은 시간 안에 그려내는 스케치 능력, 면을 완성하고 채색을 통해 그림을 완성하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벗은 몸이 화가를 통해 고상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지 못하기 때문에 누드화가 외면을 받는 것이다.
▲ 나무화랑 전시 |
ⓒ 이상기 |
화상은 예술을 다르게 해석하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화가에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재보다는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하라는 얘기다. 서양에서는 보편화된 누드화가 동양에서는 아직도 눈칫밥을 먹고 있는 게 안타깝다. 누드화가 왜 아직도 음지에서 머물고 있는 건가. 아틀리에에서 전시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화상들이 앞장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드화가 제대로 평가되도록 해 보자. 저평가된 그림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그것도 화상들이 할 일이다.
그림을 잘 보관하고 싶다
▲ 화암화실 2층 |
ⓒ 이상기 |
대표적으로 화선지에 곰팡이가 필 수 있다. 채색화의 경우 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일부 작품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층에는 냉난방 시설이 없어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또 작품이 모두 종이로 되어 있어 화재에 취약한 편이다. 불이 나면 평생의 예술작품이 한순간 날아갈 수도 있다. 난로와 주방기구에 석유와 가스를 사용하고 있어 위험은 늘 상존한다. 도난방지를 위해 경비시스템을 도입하고, 문 화백과 큰아들 문연씨가 집을 지키고 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 화암화실 1층에서의 문 화백 |
ⓒ 이상기 |
이제는 그림을 팔고 싶다
▲ 1987년 문 화백의 모습 |
ⓒ 문은희 |
"오늘도 막막한 출발이었다. 마음과 몸을 달래며 화실에 누워 있었다. 뜻하지 않게 교감 선생님이 오시고 강석원씨가 왔다. 힘찬 누드 작품을 50만 원 주고 사주는 바람에 내일은 액자 외상값을 갚고 화선지를 살 수 있게 됐다. 외상값을 갚을 생각을 하니 하늘을 날 것 같이 마음이 가벼워진다. 오늘도 또 하늘이 날 지켜주셨다."
▲ 늘 힘이 되어준 김기창 선생 |
ⓒ 문은희 |
"오늘 크로키 전반은 매우 힘들었다. 몸이 아직 회복이 안 되어 불편한 탓도 있었지만, 이것을 극복할 정열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2시간을 기다시피 그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붓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감에 한계가 오듯이 누드 크로키에 한계가 온다면, 나는 살아도 죽은 목숨일 거다. 붓(水墨) 누드에 도전한다는 것은 기적을 구하는 힘든 일이다. 그렇게 그렸건만 좋은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더 늙기 전에 좋은 작품을 그려야 하는데 기운이 달릴까 걱정이 된다. 강석원씨로부터 내 그림이 인기라는 전화가 왔다. 용기를 얻었다.
김기창 선생님은 나의 크로키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 남관 선생님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예화랑에 말씀해 주셨고, 로이드 신에게도 말씀해 주시기로 했다. 김기창 선생님께서는 뉴욕전 이야기도 해주셨다. 두 분 다 관심은 고마우나 내 사정은 전혀 모르시는 것 같다. 그러나 대가 두 분께 인정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 문 화백의 최근작 누드 콜라주 |
ⓒ 이상기 |
네덜란드처럼 국가가 화가로부터 그림을 구입해 보관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화가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국가에서는 동시대 예술품들을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해 후학들도 화가의 작품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화백도 일본에서의 전시회 성공 후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 구입을 의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어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그림을 영원히 보전하고 싶다
▲ 이천 시립 월전미술관 |
ⓒ 이상기 |
이에 비해 운보미술관은 아들에게 상속되었고, 운영부실로 사업가에게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운보미술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은 인수자가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운보미술관이 조만간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운보미술관은 현재 기획과 전시, 관리와 운영, 방문객수 등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 화백은 이 두 가지 경우를 보고 충주시에서 자신의 미술관을 지어 운영해 주길 바란다.
▲ 시립미술관으로 바뀔 예정인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 |
ⓒ 이상기 |
문 화백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미술관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남은 평생 노력할 것이다. 미술관을 세우는 일, 그것이 문 화백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마지막 염원이다. 그러나 때와 사람을 만나야 그 일이 가능하다. 문 화백은 그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예술이라는 큰 짐을 지고 온 지난 세월이 무겁기만 하다. 그 짐을 문은희 미술관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날 수는 없는 걸까?
알립니다 |
당초 기사 본문에서 "운보의 집을 컨벤션 센터로 이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 당국과 주인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한다"라고 밝혔으나, 운보미술관 측에서 "컨벤션 센터 건립 계획이 없다"고 알려와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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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수묵누드의 개척자 소원 문은희 화백의 그림 인생] 연재는 문 화백이 남긴 일기, 구술채록, 방송 자료 등을 토대로 21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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