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 읽을만한 책>한국은 기적 이뤘지만 기쁨을 잃은 '재미있는 지옥'

기자 2017. 9. 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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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지만 약소국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역동적이지만 형식에 치중해 정작 중요한 내용은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 자료사진

-나라밖 시선으로 본 ‘한국의 맨얼굴’

피상적 인맥·과시·제도에

위계 앞세운‘서열 공화국’

규제 많고‘보여주기’난무

하루 14시간 이상 근무도

사랑방 문화 · 풍수지리 등

세계서 통할 콘텐츠 수두룩

약소국 콤플렉스 벗어나서

한국인만의 것으로 도전을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타자의 시선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가까이서 봐야 뭐든 잘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것들은 멀리서 봐야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다. 한국 혹은 한국인도 마찬가지여서, 외부의 시선이 현재 한국과 한국인의 좌표를 더 잘 설명해 줄 때가 있다. ‘지지고 볶고’ 하는 사이 우리는 못 본 것들이, 외국인들의 눈에 혹은 타지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인들의 시야에 명확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본 한국·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면 지난 9월 초 출간된 ‘슈퍼피셜 코리아’를 먼저 볼 일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아이오와대, UCLA, 스탠퍼드대 등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한반도 전문가로 일해 온 신기욱 교수의 ‘슈퍼피셜 코리아’에 따르면 외국에서 한국은 곧잘 ‘재미있는 지옥’에 비유된다. 저자는 애초에 ‘다이내믹 코리아’, 즉 한국인의 역동성을 빗댄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피상적인 인맥, 피상적인 제도, 피상적인 과시”에 허덕이며 폭주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혈연·지연·학연 등으로 얽힌 내부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하지만 외부자들은 밀어내는 게 일상인 “슈퍼피셜한 네트워크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그 결과 한국은 사회적으로도 불필요한 규제가 만연하고, 국가적으로는 보여주기식 행정이 난무한다. 형식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내용은 언제나 ‘슈퍼피셜’ 그 자체다. 저자가 제시한 회복탄력성, 다양성 등 많은 가치 중 가장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은 “다양한 것을 포용할 줄 아는 유연성”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 사회에 파장을 던진 외국인들의 책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표적인 책은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다. 동아시아 문명학의 권위자인 이 교수의 눈에 비친 한국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다. 사랑방 문화는 개인주의에 찌든 서구 사회에 대안이 될 만하고, 인문적 요소를 담은 풍수지리와 선비 문화는 국제사회에서도 통할 만한 콘텐츠라고 주장한다. 우리 눈에는 낡아 보이는 것을 저자가 들춰낸 이유는 한국인들이 “시대착오적 약소국 콤플렉스”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만의 것으로 세계를 두드리라는 저자의 지적은 지난 8월 출간된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

이 교수의 책이 한국인의 자긍심을 새롭게 견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굴지의 한국 기업 해외 법인 CEO를 지낸 에리크 쉬르데주의 ‘한국인은 미쳤다’는 부끄러운 한국인의 자화상을 들춰낸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한 가전제품 회사 CEO를 지냈는데 “한국의 대기업에서 보낸 10년은 기상천외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여전히 “위계적이고 군사적인 한국의 기업 문화”에 저자는 혀를 내두른다. 하루 10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14시간 이상 근무한다. 온 삶을 바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직원들과 달리 간부들은 냉혹하게 감시를 일삼는다. “군사적이고 위계적인 서열문화”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낙후된 기업문화로 21세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묻는다. 단점은 역으로 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거기에 “인간적인 경영과 창의적인 마케팅”만 도입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들은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은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가감 없이 비판한 책으로 유명하다. 2015년 6월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좌파도 우파도 없는 정치 현실을 뼈아프게 진단한다. 특히 진보에 대해 “과거에 사로잡혀 무능한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일갈한다. 2013년 7월 출간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낳은 부패의 만연과 영어 교육 광풍 등 한국 사회를 한국인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한다. 튜더는 최근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한 권으로 세계적 석학 33명이 말하는 한국을 접할 수 있는 책은 ‘대한민국을 말하다’이다. 조지프 나이, 기 소르망, 에이미 추아,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석학들은 긍정과 부정을 오가면서 한국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귀화한 첸란의 ‘한국인 왜 아플까’는 독특한 지점에서 한국인의 상처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비교하기 때문에”, “체면 때문에”,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지 못해”,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데 ‘하면 된다’라는 말에” 아프다는 말은 한국인의 현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외국인이나 타지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인의 시각이 모두 옳다고는 볼 수 없다. 가끔은 ‘우리가 정말 이래?’라고 반문할 수 있는 대목도 많다. 하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냉철하게 오늘 한국, 한국인의 현실을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봐야, 밖에서 봐야 제대로 보일 때가 있다. 때론 낯설게 봐야 보일 때도 있다. 한국, 한국인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묻고 답할 때가 됐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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