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무, 구름에 스페인을 담다

유명숙 입력 2017. 9. 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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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스페인 여행 이야기 일곱

[오마이뉴스 유명숙 기자]

▲ 알함브라를 가는 길목의 하늘 그리고 나무 알함브라를 가는 길목의 하늘 그리고 나무
ⓒ 유명숙
▲ 황혼의 빛을 받으며 거니는 백마 황혼의 빛을 받으며 거니는 백마
ⓒ 유명숙
하늘을 보았다. 일부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것은 아니다. 그냥 한눈에 하늘이 들어왔다. 파란 하늘이. 이국에서 느끼는 하늘이 이렇게 가슴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하늘을, 자연을 이제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고 있어서일까? 스스로 자문하며 그저 후후 웃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원리를 내면화시키는 것은 자기인식의 핵심이 아닐까 여겨졌다.
 
톨레도의 대성당을 찾아가는 길목이다. 톨레도 시가지의 골목길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골목길을 따라 청소차가 쓰레기를 치우며 지나갔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이 질서정연하고 조용했다. 부산스럽거나 어수선하지 않은 모습이 우리와 달랐다. 모두 자연스럽게 청소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만들며 옆으로 비켜섰다.
▲ 하늘을 향한 열망, 나무 두 구루 하늘을 향한 열망, 나무 두 구루
ⓒ 유명숙
그러다 우연히 한 곳에 눈이 멎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오른 짙은 초록색 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고 싶었던 고딕 양식을 한 톨레도 대성당을 닮고 싶다는 듯 초록색 두 그루의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눈을 뗄 수 없게 두 그루 나무는 마치 톨레도의 준엄함을 암시하듯이 붉은색 기와지붕 위로 끝도 없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파란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구름이 지나가며 간간히 그늘을 만들었다. 구름이 만든 그늘이 잠시 쉬라는 듯 나무 위를 유유히 지나갔다. 너무나도 파란 하늘이었다.
 
스페인에서 본 첫 번째 하늘이었다. 엄청난 것을 목격한 아이처럼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하늘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톨레도에서 만난 하늘을 뒤로하고 대성당에 이르렀다. 톨레도 대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고딕 양식의 정형을 보여주었다. 성당 안은 많은 사람으로 혼잡했다. 모든 것을 다 담아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느꼈다.

선택의 순간이다. '일단 두 가지에만 집중하자' 마음을 다졌다. 하나는 예배소를 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담을 수 방법으로 예배소를 중심으로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따라가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수많은 성서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았다. 성서이야기에 대부분은 대성당에 들어선 모두에게 그저 '선'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선과 악의 기준은 진정 무엇일까? 성당이 어느 곳에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당이 있는 장소가 어디건, 어떤 성당인지를 막론하고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숙연해진다. 그것은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종교 유무를 떠나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유는 모두 '선'이라는 가치 진리를 일상화해서일 것 같다. 톨레도성당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천장에 있는 둥근 모양의 스테인 글라스였다. 그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언제나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 묘하게 톨레도대성당을 찾아오며 보았던 하늘과 스테인 글라스는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열린 공간으로 향하는 하늘의 모습과 천장에 만들어진 동그란 모양의 스테인 글라스는 항존 하는 빛나는 햇빛을 느끼게 한다. 단지 위를 향해 고개를 들기만 하면 파란 하늘과 스테인 글라스가 무언가를 가슴에 염원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자연의 섭리라고 느껴졌다.
 
그 이후 여정에서 두 번째로 하늘을 본 것은 그라나다에서였다.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으로 최고의 자리를 자랑하는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가는 길목에서다. 그곳에서 마주친 하늘은 기가 막힐 정도로 청명한 파란색이었다. 톨레도의 하늘이 찌를 듯한 나무 위로 펼쳐진 광활한 공간에 뭔가 귀한 열망을 담으라고 말하는 하늘이라면,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하늘은 그저 조용히 부드러운 속삭임을 건네고 있었다. '잘 왔노라고, 마음을 편히 하고 쉬고 가라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 알함브라 궁전 입장을 기다리며 알함브라 궁전 입장을 기다리며
ⓒ 유명숙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색'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궁전은 그야말로 온통 붉은 색의 향연이었다. 궁전 내부는 그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작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뭔가 모르게 이 궁전에서 허무가 느껴졌다. 허무는 아마도 운이 다한 이슬람의 전성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했던 열망이 허망으로 남아서일 것 같았다.
알함브라 궁전에 들어서며 마주친 하늘에 파상형으로 퍼져있던 나무들의 모습은 아마도 그들의 열망이 너무나 아팠기에 그토록 잔잔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세 번째의 하늘을 보게 된 것은 저녁 어스름이 되어서 도착한 발렌시아에서다. 지금까지의 하늘이 가장 뜨겁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발렌시아에서 시내에서 좀 떨어진 호텔에서 본 하늘은 그동안의 여정에서 본 어떤 하늘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식당은 한 눈에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야외식탁이 있는 장소와 실내가 하나로 되어 있었다. 조망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투숙객을 위해 준비된 식탁에 앉아 차 한 잔을 주문했다. 차 값은 3유로다. 식당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며 이국 하늘에서 지는 해를 보게 된 것은 기쁨이었다. 저녁 황혼을 느끼며 마신 차에서 숱한 의미가 담겨지고 있었다.
▲ 가로등 아래 투숙객을 위해 준비된 식탁 가로등 아래 투숙객을 위해 준비된 식탁
ⓒ 유명숙

주위에 호텔을 에워싸며 앞이 탁 트여진 벌판이 있다. 지는 해의 황혼 빛을 받으며 백마가 유유히 스스로 자신이 한 수고를 다독이며 벌판을 거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아름다워 말문이 막혔다. 도시마다 하늘의 모습은 달랐다. 각 도시의 하늘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각각 도시의 특색을 느낄 수 있다.

조용히 하늘에서 전하는 소리를 마음에 담는다. 한국을 떠나오며 기내에서 읽었던 김주영의 <잘 가요 엄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책표지에 백마 두 마리가 서로 볼을 더듬는 모습이 나온다. 백마 뒤로 산이 보이고 산 위를 온통 파란 하늘이 덮고 있다. 흰색의 백마 두 마리와 파란 하늘은 이미 하늘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무슨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김주영, 그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느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분명히 보고 알게 된다. 하늘 그리고 엄마를.
 
김주영은 그 짙은 하늘을 보고 말한다.

"엄마의 뼛가루를 한줌 집어 올렸다. 모래를 움켜진 것처럼 담담했다. 팔을 허공으로 높게 뻗어 갈지자로 흩뿌렸다. 어머니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민들레 꽃씨처럼 산기슭 위로 흩어졌다. 하늘로 엄마의 뼛가루를 뿌리며 "잘 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그가 보았던 그의 하늘은 어떤 하늘이었을까 생각했다. 먹먹했다. 세상을 떠나는, 떠난 사람에게 하늘에 가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하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그때의 하늘은 어떤 넓이나 크기로도 가늠하기 어렵다. 굉활함이 너무나 커서. 엄마는 어머니는 하늘에 있다.

한 점으로도 표현 불가능한 소멸되어 가는 엄마, 어머니를 절절히 그리워한다. 내내. 엄마는 하늘, 하늘이기에...
 
스페인에서 하늘을 본 것은 아닌 느끼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마음 가득 절절한 그리운 엄마를 만났기에. 하늘은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하늘에 계심을 확인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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