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뉴스분석]'나라 없는 설움은 그만' 독립투표 개시한 쿠르드족

이기준 입력 2017.09.26. 04:00 수정 2017.09.26.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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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자치정부, 25일 오전 독립투표 개시
결과는 한국시간 27일 나와..압도적 찬성 전망
3000만 인구 쿠르드족, 나라 없어 100년 간 설움
후세인 정권의 학살에 10만 명 희생되기도
국제사회는 반대..안보리 "지역 불안정 우려"
터키는 국경 검무소 폐쇄하며 즉각 제재 돌입
쿠르드 자치정부 지도. 짙게 표시된 부분이 쿠르드 자치정부의 자치 지역이다. [BBC 캡처]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분리ㆍ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25일(현지시간) 실시되면서 터키 등 인접국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투표엔 KRG 자치지역 3개구(아르빌,도후크, 술레이마니야)를 비롯해 키르쿠크, 니네베, 디얄라 주에 사는 쿠르드계 주민 약 534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종 개표 결과는 26일 오후(한국시간 27일 새벽)께 나올 예정이다.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은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투표 결과가 나오면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정치적 절차와 일정을 중앙정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분위기는 찬성이 압도적이다. 23일 시작된 재외 유권자 투표(유권자 15만명 추산)에서는 98%가 찬성표로 집계됐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25일 “KRG의 수도 아르빌에선 모두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얘기하고 있다. 반대에 투표했다거나 투표에 불참한다는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쿠르드족은 약 3000만 명으로 중동에서 4번째로 수가 많은 민족임에도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다. 민족의 기원은 이란 고원이지만 주로 현재의 이라크 북부 일대 산악지역에 터전을 잡았다. 쿠르드족은 100년 전 영국과 프랑스 간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중동 지역이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등 4개국으로 인위적으로 갈라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쿠르드족은 각국 중앙정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이란 회교혁명군이 파베시에서 체포한 쿠르드반군들을 처형하고 있다.[AP연합]
특히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은 이란을 도왔다는 이유로 1987∼1989년 화학 무기를 동원한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안팔 작전에서 10만 명이 ‘인종 청소’ 수준으로 학살당한 아픈 역사를 견뎌야 했다. 쿠르드족이 모여 살던 할아브자 지역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학살은 후세인 철권통치에 시달리는 쿠르드족의 처참한 실상을 전 세계에 각인하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인접국들은 쿠르드족의 독립 염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지난 21일 이사국 만장일치로 채택한 성명을 통해 “다음 주 일방적으로 주민투표를 하려는 KRG의 계획이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 잠재적인 영향에 이사국들이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안보리는 “계획된 주민투표는 쿠르드 군이 중요한 역할을 해온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치러지기로 일정이 잡혔다”며 KRG의 투표가 IS 격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라크 중앙정부와 터키, 이란 등 KRG의 독립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인접국들은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KRG를 압박하고 있다. 하이데르 알 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TV연설에서 “(KRG의 일방적 투표는) 헌법 위반인 데다 시민들의 평화에도 반한다. 국가의 단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투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라크 정부는 전날 이미 KRG 내 국경초소와 국제공항 등의 반환을 요구했고, 키르쿠크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국제거래 중단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이란은 24일 쿠르드 자치지역과 가까운 서북쪽 국경지대에서 포사격과 장갑차, 공수부대가 참가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터키와 이라크 국경지대. [중앙포토]
터키는 25일 KRG 독립 투표가 실시되자 즉각 제재에 돌입했다. 터키 NDTV는 이날 터키 당국이 이라크 쿠르드자치지역과 인접한 하부르 국경검문소를 폐쇄했다고 보도했다. 터키 남동부 시으르나크주에 있는 하부르 국경검문소는 KRG의 주요 대외교역 통로로, KRG가 투표를 강행할 경우 가장 우선 시행될 경제 제재수단으로 거론돼 왔다.

터키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투표의 결과는 무효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투표 이후 상황을 악용해 극단주의나 테러 조짐이 생긴다면 국제법과 터키의회가 부여한 권한에 따라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쿠르디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 탄생보다는 일단 KRG의 자치권 강화 등을 위한 협상력 강화의 발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쿠르드족은 그동안 IS 격퇴전에서 자신들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며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지금을 독립 투표를 위한 적기라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도 “주민투표는 국경을 그리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쿠르드족 사람들이 미래에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는 첫 걸음이며, 우리는 바그다드(이라크 중앙정부)와 ‘긴 대화’의 과정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