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복' 부결되자.. 이재명, 반대 시의원 8명 공개

양승주 기자 2017. 9.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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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만 이름 올려.. 비밀투표 취지 훼손·마녀사냥 유도 논란]
29만원짜리 1만명 제공 정책.. 시의회서 4차례 예산 삭감
의원들엔 문자폭탄 쏟아지고 '합리적 교복 정책' 논의도 실종

지난 23일 이재명 성남시장(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무상 교복 반대'라는 제목을 달아 시의원 8명의 실명과 지역구, 소속 정당을 적시한 문건을 개인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하루 전 시의회에서 자신이 추진해온 '고교 신입생 교복 무상지원' 예산안이 부결되자, 이에 반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이름을 공개한 것이다. 이후 이들의 전화번호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협박성 문자가 쏟아졌다.

이 시장은 "무기명 비밀투표 장막 뒤에 이름을 숨겼지만, 상임위 기록이 있다"고 명단 선정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 시장의 명단 공개는 '양심과 소신에 따라 투표한다'는 비밀투표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의원은 "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졌는데, 반대한 의원으로 지목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성남시장, 정책 반대의원 명단 공개

지난 22일 성남시의회 본회의. '고등학교 신입생 교복 무상지원 사업비 예산' 찬반 투표가 열렸다. 성남시가 고등학생 신입생 1만여명에게 각 29만원씩 교복비를 지급하겠다며 관련 예산 약 29억원을 포함시켜 제출한 추가경정 예산안이었다. 성남시가 '무상교복 예산'을 의회에 제출한 것은 이날이 네 번째였다. 하지만 이 예산안은 찬성 14명, 반대 16명, 기권 1명, 불참 1명으로 부결됐다.

이 시장은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상교복 네번째 부결한 성남시의원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유한국당 의원 7명, 바른정당 의원 1명 등 총 8명의 의원 명단을 공개했다.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무상교복에 반대했다고 생각되는 의원들을 밝힌 것이다. 비밀투표로 진행된 본회의와 달리, 상임위와 예결위 단계에서는 회의 내용이 기록된다.

이 시장이 올린 명단과 글은 곧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카페 등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관련 글에는 '이 나라의 기생충들. 박멸이 답이다' '다음 선거 때 반드시 심판하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일부 네티즌은 의원들의 개인 전화번호를 정리해 공유했다. 8명의 의원 중 일부에게는 '문자폭탄'이 쏟아졌다.

명단에 오른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은 "(이 시장의) 글이 올라온 이후 하루에도 수십 통의 항의성·인신공격성 문자가 온다"며 "'두고 보겠다'는 내용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쏟아지는 통에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소속 이기인 의원은 본회의 전 단계에선 교복지원비 예산안 반대 입장이었지만, 본회의에선 기권표를 던졌다고 한다. 이 의원은 "찬성·반대 의원 숫자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소 1명 이상 반대를 한 것"이라며 "나를 '반대 의원'으로 지목한 것에 대해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 시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현재 성남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 15명, 자유한국당 15명, 국민의당 1명, 바른정당 1명 등 32명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진지한 토론 없이 상호 비판만

한 의원은 "이미 저소득층 600명에게 교복비를 지원하는데, 부유한 계층에까지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며 "그 돈으로 저소득 청소년을 더 많이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 반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이런 논의는 생략된 채 비방 글이 많다. 이 시장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명단에 한 네티즌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원들을) 매장하는 데 반대한다'는 의견을 달았다. 그러자 명단 공개에 찬성하는 다른 네티즌들이 이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일부 의원은 '왜 반대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명단만 올린 게 문제'라고 반발했다. 이기인 의원은 "명단만 공개할 것이 아니라, 의원들이 왜 반대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이덕수 의원은 "지급 대상 축소 등 야당의 제안에 대해 조율할 생각은 없이 일방적으로 명단만 공개하는 것은 마녀사냥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회 회의록에 공개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앞뒤 맥락 없이 의원 명단만 공개하는 것은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낳을 수 있다"며 "무상교복 방안에 대한 각 정당의 논의 과정을 밝히고 시민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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