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칠흑같은 관사 퇴근길.. 무서워서 늘 전화기 붙들고 다녀"

2017. 9.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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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양극화 지방학교가 위태롭다] <上> 전남 도서벽지 학교 가보니

[동아일보]

전남 여수시 금오도 여남초에서 교사 관사로 가려면 10분 이상 수풀 길을 지나야 한다. 가로등이 없어 퇴근할 때 손전등은 필수다. 여남초 병설유치원 박은선 교사가 교사 관사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위쪽 사진). 여남초 이동준 교사는 한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아내, 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아래쪽 사진). 여수=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9일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고 남해를 가로질러 거대한 산을 닮은 섬 금오도에 도착했다. 항구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니 도시 학교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여남초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지갯빛으로 채색된 단아한 2층 건물, 푸르른 잔디로 뒤덮인 넓은 운동장, 학교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 학교 바로 앞에 펼쳐진 넓은 바다….

하지만 전교생이 35명인 여남초는 교사들이 기피하는 ‘벽지 학교’다. 왜 교사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학교를 꺼릴까.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초등교사 수급의 지역별 불균형’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이곳 교사들을 만났다.

○ ‘더럽고, 무섭고, 외로운’ 관사 생활

“처음 발령을 받아 관사에 왔을 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해요. 우거진 풀숲 길을 따라 한참 걸어 관사에 도착했어요. 방문을 여니 방 안이 온통 새까만 곰팡이로 뒤덮여 있더라고요. 발령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벽지를 사서 도배한 거예요.”

여남초에서 만난 교사들은 한결같이 “벽지 생활을 하는 교사들의 공통 문제가 바로 관사”라고 했다. 여남초 등 대다수 도서 산간 학교는 교장 관사만 학교 안에 있고, 나머지 교사들의 관사는 학교 밖에 있다.

여남초 병설유치원 교사 박은선 씨를 따라 관사에 가 봤다. 학교를 나와 10분 이상 후미진 수풀 속을 지나야 했다. 박 교사는 “해가 지면 칠흑같이 어두워 손전등이 필수”라며 “가는 길이 무서워 늘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간다”고 말했다. 한번은 통화가 되지 않자 놀란 남편이 경찰에 신고해 관사까지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금오도와 같은 섬 지역은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지만 관사는 워낙 오래전에 지어 전기 패널 방식으로 난방을 한다. 이 때문에 겨울이면 모든 관사가 냉동창고 수준이 된다. 더욱이 전기 난방을 하면 월 전기료가 20만 원에 육박해 교사 대부분이 각자 온풍기를 사서 생활하고 있었다. 양선화 교사는 “겨울엔 밤마다 털모자를 쓰고 자는데도 감기가 떠날 날이 없다”고 말했다.

관사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족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다. 4세 자녀가 있는 박 교사는 “아이를 데려와 함께 지내려다가 관사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교사의 아이는 여수에서 친정 부모님이 키운다. 주말마다 여수에 가지만 안개와 풍랑에 뱃길이 막히면 속수무책이다. 아내, 아이와 함께 관사 생활을 하고 있는 이동준 교사는 자다가 돌아눕기도 비좁아 보이는 한 평(3.3m2) 남짓한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 ‘초고난도’ 미니 학교에 초임 교사 ‘녹다운’

여남초는 그나마 섬 지역 학교 중 교사들의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복식학급’이 아직 없어서다. 복식학급은 인접한 2개 학년의 인원이 7명 미만일 경우 2개 학년을 한 반에서 가르치도록 한 제도다. 같은 교실,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2개의 교육과정을 각각 가르쳐야 하는 만큼 수업이 훨씬 어렵다. 대부분의 벽지 학교는 전교생이 30명 미만인 ‘초미니 학교’인 만큼 복식학급이 많다.

복식학급은 수업 경험이 많은 교사가 맡아서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벽지 학교일수록 ‘신참 교사’가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전남 구례군 간문초에서 만난 3년 차 교사 김누리 씨는 “연차가 높고 도서 벽지 근무 경험이 있어야 ‘이동점수’가 높아 원하는 학교로 배정받는다”며 “초임 교사는 이동점수가 없다 보니 대부분 벽지로 발령이 난다”고 말했다. 이 지역 예비교사들이 광주지역 내 학교로만 발령받는 광주시교육청 임용에 몰리고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전남도교육청 지원을 꺼리는 이유다.

또 다른 전남지역 초등학교 초임 교사인 김모 씨는 ‘미니 학교’ 수업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교대에서는 20∼30명 규모의 학급에 맞는 교수법을 배우는데 막상 현장에 와 보니 우리 반 학생은 3명에 불과했어요. 그중 한 명은 지적장애 학생이어서 모둠 활동이나 토론 등을 하기가 힘들었죠. 그야말로 모든 게 막막하더라고요.” 벽지 학교에는 한국말이 서툰 다문화가정 학생과 장애아동이 많지만 특수학급을 별도로 개설하기 힘든 만큼 도시지역과 같은 수업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 씨는 “수업역량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에 교대에서 배운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딱히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 우왕좌왕하다 보니 ‘교사로서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전했다.

이런 와중에 도서 벽지 근무에 따른 승진 가점마저 계속 낮아지고 있어 교사들의 지방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전남의 경우 과거 도서 벽지 근무에 따른 승진 가점이 6점이어서 벽지 근무를 해야만 승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3점으로 낮아졌고, 이마저도 1점으로 낮추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특정 교원단체가 ‘관리자가 되는 데 왜 도서 벽지 근무 경력이 필요하냐’면서 반발해 가점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학교 관리자들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벽지 학교 인력 수급을 우려했다. 여남초 나주섭 교감은 “기존 교사 휴직 시 기간제를 구해야 하는데 정규직 선생님도 안 오려는 자리에 기간제 교사라고 오겠느냐”며 “올해 초에도 기간제 교사 지원자가 없어 개학을 하고도 한 달간 공석으로 있다가 겨우 재공모해 채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수·구례=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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