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하는 노동개혁 .. 정책도 담당 직원도 뒤엎은 고용부

김기찬 2017. 9. 26.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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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유연성 위한 '2대 지침' 폐기
노동개혁 관여 공무원 지방 좌천
파리바게뜨 불법 파견 판정 등
경영계, 정부의 노동계 편향 우려
"친노동 정책 본격 신호탄 가능성"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기관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25일 공식 폐기한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담은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지침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의 상징이었다.

노동계는 환영했다. 경영계는 “지침 폐기가 현재로선 산업 현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친노동 정책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아닐까 우려된다”는 반응이다. 고용부는 이날 노사정 대타협을 비롯한 노동개혁에 관여한 고위 공무원을 산하 기관이나 지방으로 발령내는 등 인사도 단행했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이날 산하 기관장 회의를 열고 2대 지침 공식 폐기를 선언했다. 두 지침이 생긴 지 1년8개월 만이다. 2대 지침은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이다.

공정인사 지침은 저성과자를 해고할 때 절차와 요건 등을 담고 있다. 취업규칙 지침은 사측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근로 조건을 도입할 때 노조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규정을 완화해 적용토록 한 내용이다.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연봉제나 역할·직무급으로 개편하기 쉽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 지침이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쉬운 해고’와 ‘불이익 강요’라는 논리로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1월 22일 노사정위원회 무기한 불참을 선언했다. 이 지침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소송 사태가 빚어지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고용부의 폐기 선언이 전해지자 한국노총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금속노조연맹을 비롯한 다른 노조도 마찬가지다. 경영계는 속내가 복잡하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사실상 저성과자를 아예 해고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어서 경영계도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을 폐기한 것은 강성노조가 버틴 현대차와 같은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악영향을 미칠 뿐 대부분 기업은 임금체계를 이미 개편했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계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지침 폐기가 친노동 정책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두 지침이 폐기된 이상 조만간 노사정 대화가 진행될 전망이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26일 사회적 대화 복원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결론을 만들어 놓고 노사정위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의 생각은 다르다. 파리바게뜨 불법 파견 판정, 비정규직 제로 선언,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그동안 현 정부가 보여준 행보는 노동계에 치우쳐 있다는 판단이다. 모 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정부의 행보가 노동계와 한 몸인 양 기업을 옥죄는 형국이어서 협상 구도가 기울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단행된 고용부 인사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탰다. 글로벌 시장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 구조개혁 정책을 만들었던 고위 공무원이 대거 본부에서 밀러났다. 고용부 안팎에선 “정책에 이은 인사상 물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설령 노사정 대화체가 복원되더라도 지난 정부에서 노사정 대표가 서명한 노사정 대타협 이상의 내용이 나오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노동계가 여전히 임금체계 개편이나 파견업종 확대와 같은 고용유연성 조치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계의 태도 변화가 전제돼야 대화의 목적이 구현될 것”이라며 “정부도 국가 경제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노동계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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