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에 22조, 통상임금 38조 .. 기업들 짐만 쌓인다

문희철.이소아 2017. 9. 2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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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뛰고 근로시간은 단축
인건비 오르며 제품 경쟁력 약화
미국은 FTA 재협상 압박하고
중국선 사드 악재로 수출 막막
정부는 복지 위해 기업 희생 요구
법인세 인상 등 세법 개정안 추진

최근 한국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다중 쇼크’가 한꺼번에 터질 경우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최대 106조36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경제단체 및 연구원이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경제손실 규모(22조4000억원·KDB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115개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최대 금액(38조5509억원·경총) 등 일곱 가지 경제 충격에 따른 피해 금액을 합친 수치다. 지난해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상장사와 금융기업들이 벌어들인 전체 순이익(102조4323억원·법인세 차감 전 연결 기준)보다 더 많다.

재계에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로 산업 경쟁력은 약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각종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기업들이 ‘고용 안정’ ‘임금 인상’ ‘투자 증대’라는 삼중고(트릴레마)에 시달리는 게 대표적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쟁력 갉아먹는 인건비 부담=가전·자동차·조선업 등 국내 주요 제조업은 세계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10년 가까이 1위였던 한국은 올해 사상 최초로 시장점유율(28.8%)이 중국(35.7%)·대만(29.8%)에 밀렸다. 2015년까지 세계 ‘빅5’였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올해 인도에 밀렸고, 멕시코에도 추월당하기 직전이다. 조선업도 비슷하다.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6, 7월 월간 수주량 1위는 중국이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인건비 부담이다. 스위스 유니언뱅크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139개국 중 83위로 미국(4위)·일본(21위)·독일(28위)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37위)보다도 순위가 낮다. 하지만 올해 인건비를 밀어올리고 노동 유연성을 악화시키는 일만 잔뜩 벌어졌다. 내년 최저임금(7530원)을 올해보다 16.4% 올리면서 16조2151억원의 인건비가 늘었다(중소기업중앙회). 법정 근로시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면 연간 12조3000억원의 비용이 더 든다(한국경제연구원).

김병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근로시간·통상임금 등 현재 정부 정책은 소득을 분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는 행위”라며 “장단점이 공존하는 문제인데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친노동 정책을 밀어붙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호무역으로 해외 시장 문턱 높아져=수출시장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다. 한국 수출 제품의 40%는 중국·미국으로 간다. 이들은 올해 일제히 보호무역을 강화했다.

한국 수출의 24%를 의존하는 최대교역국 중국은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반발해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중국 다음으로 수출 비중(12.3%)이 큰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유엔총회에서 “한국과의 무역협정은 우리(미국)에 매우 나쁘고 한국에는 매우 좋다”며 “공정하도록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럴 경우 향후 5년간 66억 달러(약 7조5000억원)~170억 달러(약 19조4000억원)의 수출 손실이 예상된다(한국경제연구원).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FTA와 사드 문제는 모두 외교·안보 문제와 얽혀 있어 기업 측면에서 해결이 쉽지 않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여부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등 한국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에 청구서 내미는 정부=대내외 악재가 동시에 겹쳤지만 기업에 정부는 강경책 일색이다. 정기국회에서 정부·여당은 법인세법 인상 등 세법 개정안 처리에 주력하고 있다. 지주사 요건을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대주주 영향력을 축소하는 내용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 등도 본회의 상정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부가 속칭 ‘청구서’를 내밀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복지 공약을 대거 내세워 당선한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기업에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은 기업 경쟁력이 악화해 결과적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에도 좋을 게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은 약화한 산업 경쟁력을 더 갉아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산업연구원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한국 12대 주력산업 세계시장 점유율이 5.2%(2015년)에서 3.8%(2025년)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력 산업이 침체하기 시작하면서 규제 조정, 기술개발 지원 등 정책 지원이 없으면 주력산업 지배력 약화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며 “불합리한 노사관계 개선과 통상마찰 해결을 위한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희철·이소아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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