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국경 없지만 전문직 높은 벽 .. EU 이주율 미국 3분의 1

2017. 9. 2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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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 회원국 거주이동 자유에도
동유럽 출신들 부국 정착 쉽잖아
농업·건설직 등 저임금 직종 국한
유럽 부국·빈국 경제 윈윈 되려면
양질의 일자리 진입 규제 낮춰야

━ 유럽연합 보이지 않는 장벽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지역통합을 이루어가고 있다. EU 28개 회원국(이하 EU 28) 간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상품과 서비스, 자본뿐만 아니라 사람도 자유롭게 이동한다.

비자나 취업 허가서가 필요 없다. 이게 단일시장(혹은 내부시장, single market, internal market)이다. EU는 인구 5억1000만 명의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다. 이 중 3분의 2 정도인 19개 회원국은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유로라는 단일화폐를 사용 중이다.

다른 지역 블록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은 2015년 12월부터 경제공동체에 돌입했지만 EU식의 자유 이동은 아주 요원하다. 그만큼 단일시장과 단일화폐는 EU가 가장 앞선 지역통합체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렇다면 EU 회원국 시민들은 자유 이동을 최대한 활용할까? EU 시민들의 자유 이동은 미국인들이 50개 주 어느 곳으로라도 이주해 일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특히 경제위기를 겪는 회원국 시민은 경기가 좋은 다른 회원국으로 이주해 일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ag@joongang.co.kr]
세계은행(WB)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이주 횟수가 EU와 비교해 세 배 정도 높다. 언어와 역사의 상이함과 같은 문화적 요인과 전문직 시장의 진입 규제 때문에 EU 시민의 자유 이동이 저조하다. 아울러 이주도 국제 이동과 유사하게 대개 못 사는 회원국에서 부유한 회원국으로 간다.

EU28은 2008년부터 표준화한 이주(최소 1년 이상 거주를 뜻함. 유학생과 비 EU 시민, 난민신청자, 그리고 난민도 여기에 포함됨) 통계를 발표해왔다. 지난해 1월 1일 현재 루마니아 인구의 15%나 되는 300만 명이 다른 EU 회원국에 거주 중이다.

그 뒤가 폴란드(전체의 6%, 230만 명), 이탈리아(140만 명), 포르투갈(120만 명), 영국(90만 명), 독일(85만 명) 이다. 농업이나 건설 현장 근로자들은 대개 몇 달 근무하다 본국으로 돌아가기에 단기 이주를 감안하면 동유럽인들의 이주는 공식통계보다 훨씬 더 많다.

영국은 다른 EU 회원국 시민들이 이주하러 올 때 관청에 등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국 거주 다른 EU 회원국 시민들의 수는 약 3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폴란드 사람이 약 83만 명으로 지난해 영국 거주 외국인 가운데 최다를 기록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인 일부는 런던의 금융서비스 산업에 근무하지만 주로 잉글랜드 중동부의 링컨셔 등 농업 지대에 정착했다. 이들은 영국인이 꺼리는 농업이나 요양보호시설 등에서 근무한다. 독일에도 꽤 많은 폴란드와 루마니아인들이 농업 및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자국의 두뇌 유출이 심각할 정도다.

인구 대비 이주율이 높은 나라는 루마니아에 이어 포르투갈(11.6%), 아일랜드(8.4%)다. 두 나라 모두 2012년 경제위기를 겪었다. 반면에 영국과 독일은 전체 인구의 1% 남짓한 사람들만 다른 회원국으로 이주했다.

들어오는 이민(유입)이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로 154만 3800명을 기록했다. 다음이 영국으로 63만1500명이다. 이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순으로 주로 EU 회원국 가운데 부유한 나라다.

2015년 한 해 독일에는 약 110만 명 정도의 난민 신청자들이 몰려 들었다. 이들이 난민 수용소에서 체류하며 여러 서류를 구비해 난민을 신청하는데 최소한 2~3년이 걸린다. 따라서 난민 신청자를 감안하면 영국과 독일의 유입자 수 격차는 대폭 줄어든다. 2015년 독일에서 난민을 신청한 수는 47만 6000명, 영국의 난민 신청자는 4만160명이다.

EU는 2004년 4월 1일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8개국을 회원국으로 받아 들였다. EU 역사상 한꺼번에 가장 많은 신규 회원국을 받았으며 특히 신규 8개 회원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기존 EU 15개국의 40%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적 격차가 컸다.

그러나 영국과 스웨덴 등은 과도기 없이 당시 신규 회원국 시민에게 곧바로 자유이동을 허용했다. 당시 영국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는 일 년에 5000~1만3000명 정도의 동유럽인들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모두 150만 명이 영국에 왔다. 예상보다 10배 이상이었다.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도 EU 회원국이 된 후 동유럽인들이 영국이나 독일 등 부유한 회원국으로 대거 이주했다.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 결정은 역사적 요인과 당시 총리였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EU문제로 분열중인 당을 관리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카드로 활용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여기에 너무 많은 동유럽인들이 영국에 몰려들었다는 점도 반EU,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정당들에게 EU 탈퇴를 거세게 요구할 호재를 제공했다. 분명한 것은 영국에 거주중인 동유럽인은 동기부여가 커 영국인들보다 취업률이 높았고 복지혜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그럼에도 경기침체 속에서 정부의 긴축 정책에 지친 유권자들은 당시 보수당 정부에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자유이동을 당연한 권리로 여겼고 졸업 후 다른 회원국에서 거주를 꿈꿔왔던 영국의 20대는 EU잔류를 지지했지만 압도적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한 부모 세대를 원망했을 뿐이다.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추산에 따르면 동유럽 국가들이 회원국이 된 후 자유이동 덕분에 EU28의 전체 GDP가 400억 유로(전체 GDP의 0.26% 정도) 증가했다. 경제위기 극복책으로써, 그리고 우수한 인재를 아무런 제한없이 채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이동은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자유이동을 가로 막는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미국에서는 자유이동이 시민들 DNA에 뿌리 깊이 박혀있다면 EU 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안쌤의 ‘유로톡’ 제작운영자
EU는 1987년부터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를 실행해 왔고, 학위 상호인정 정책으로 자유이동을 촉진해 왔음에도 아직까지 변호사나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 시장은 진입이 매우 어렵다. 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안쌤의 유로톡’ 제작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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