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통신비 절감 vs 시장 왜곡 .. '단말기 자급제' 뜨거운 감자

박태희 입력 2017. 9. 26. 01:00 수정 2017. 9. 26.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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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화 추진 논란 불붙어
휴대폰 판매와 이동통신 가입 분리
여당 의원 "기기값·요금 인하 효과"
제조사 "국내 시장만 내릴 수 없어"
SKT 찬성, KT·LG유플러스 유보
보조금 줄면 단말기 구입 목돈 들어
"정치권 개입으로 제2 단통법 우려"

“가계 통신비가 연간 9조5000억원 절감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

“시장에 개입했다 실패한 ‘단통법 2탄’이 될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

통신비 부담 경감 대책의 하나로 ‘단말기 자급제’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정책 효과를 놓고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25일 단말기 자급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단말기 가격을 부풀린 뒤 보조금을 조건으로 고가의 요금제를 강요하는 방식”이라며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이 전혀 줄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통해 제조사는 제조사끼리 기기값 인하 경쟁, 이통사는 이통사끼리 요금제 인하 경쟁을 벌이면 소비자 혜택이 증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8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단말기 자급제는 휴대폰 판매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이통사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사 왔다. 이통사는 삼성전자·LG전자 같은 제조사로부터 휴대폰을 구매한 뒤 이를 요금제와 함께 판매해왔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휴대폰의 98%가 이런 방식으로 유통됐다. 소비자들이 매달 부담하는 가계 통신비가 ‘이동통신 요금+단말기 할부금’으로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판매 과정에서 이통사들은 타사에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또 제조사들은 자사 휴대폰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각각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소비자가 지원받는 보조금 중에 이통사와 제조사가 얼마를 냈는지는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다. 박 의원은 “단말기 자급제로 기기와 통신서비스를 따로 사게 되면 제조사는 그간 쓰던 보조금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단말기 가격을 낮추게 되고 이통사도 요금 낮추기 경쟁을 벌이게 돼 시장은 투명해지고 소비자 혜택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시뮬레이션 결과 신규 가입자의 월 평균 지출액이 3만5000원에서 20% 낮아짐으로써 연간 4조 300억원을 절감하고, 단말기 출고가격이 평균 20만원 인하돼 연간 기기변경자 2000만명이 4조원을 아끼며, 알뜰폰 고객이 15% 가량 늘어 1조4900억원의 절감 효과가 생기는 등 총 9조5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며 “개별 소비자 1인으로 보면 월 6000~1만2000원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말기 자급제를 보는 제조사와 통신사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우선 제조사는 보조금이 공개될 경우 과거와 같은 액수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일 갤럭시노트8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한국총괄 김진해 전무는 “삼성 휴대폰은 해외에서 훨씬 많이 팔린다. (해외 고객을 생각하면) 국내에서만 가격을 낮추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기기당 수십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할 경우 당장 해외 통신사들이 같은 지원을 요구해 올 것이고, 불공정 거래를 문제 삼아 거액의 소송을 걸어올 수도 있다. 완전자급제가 기기값 인하를 오히려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통신사들의 셈법도 복잡하다. SK텔레콤은 찬성 의사를 밝혀왔다.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최근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단말기 자급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만원 안팎의 목돈을 들여 휴대폰을 산 소비자들이 이통3사간 요금이 거의 같은 상황에서 굳이 KT나 LG유플러스 보다 업계 1위인 SK텔레콤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KT나 LG유플러스는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2·3위 사업자가 현재 시장 구도를 유지하려면 가격 메리트를 제공해야 하고 이는 ARPU(가입자 당 매출) 인하와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완전자급제를 반대하는 제조사와 찬성하는 이통사간에 ‘통신비 인하 떠넘기기’ 경쟁이 벌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이통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완전자급제 보다 통신비를 지금의 절반 수준까지 강제로 낮추는 ‘보편 요금제’의 도입”이라며 “완전자급제를 먼저 도입해 보편 요금제의 도입을 막아 보자는 게 이통사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단말기 자급제가 도입되면 이통사끼리 각자 알아서 요금 설계를 통해 경쟁하는 구조가 되므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최근 도입한 선택약정 25% 할인제 등도 완전자급제에선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IT 전문가이인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중요한 건 업자들의 논리 보다는 소비자의 가계 통신비가 실제로 줄어들 수 있느냐인데 완전자급제로 보조금 지원이 줄어들면 소비자들은 100만원 가량 목돈을 들여 단말기를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며 “시장을 무시하고 정부가 뛰어들어 만든 단통법이 이통사의 배만 불려준 ‘정부의 실패’가 또 한번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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