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3년, 얼마나 변했나](上)소비자 위해 태어났지만 '단지 통신사 위한 법'

임아영 기자 2017. 9. 25. 21: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4년 10월1일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된 후 3년이 지났다. 단통법은 시장 과열을 방지하고 통신비를 일부 경감시켰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동통신 3사와 일부 제조사의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채 여전히 소비자를 ‘호갱’(호구고객)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단통법 시행 전에는 같은 휴대폰을 사더라도 소비자의 실구매가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판매점을 가느냐, 구입 시간이 언제냐에 따라 작게는 20만원부터 크게는 7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단통법은 이 같은 소비자 차별을 해소하고 고가 단말기 중심의 독과점 유통구조를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단말기 구매자에게 주는 지원금을 공시하고 출시된 지 15개월이 지나지 않은 단말기에는 지원금 상한선(33만원)을 설정한 게 핵심이다. 또 지원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는 약정기간 요금할인(선택약정)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단통법은 가계 통신비를 일정 부분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25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단통법 시행 전인 2013년 2인 이상 가구의 가계 통신비는 월평균 15만2792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4만4001원으로 5.9% 줄었다.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3년 4.68%에서 지난해 4.28%로 감소했다. 요금 할인을 받는 가입자도 2014년에는 8만3000여명이었지만 올해 1400만명까지 늘어났고 지난 9월 선택약정할인율은 25%까지 상향됐다. 이통사들의 보조금 경쟁이 줄어들면서 이통 3사의 마케팅비는 2014년 8조8220억원에서 지난해 7조5883억원으로 14%(1조2337억원) 감소했다. 반면 일선 중소 유통점은 보조금 시장이 축소되면서 3만여개에서 1만8000여개로 줄었다.

그러나 불투명한 기존 독과점 유통 구조를 그대로 두고 단통법을 시행한 것이 제도의 한계로 작용했다.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은 데 비해 통신 3사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2014년 1조6108억원에서 2016년 3조5976억원으로 급증하면서 단통법은 ‘단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제조사와 이통사의 지원금을 따로 표시하는 ‘분리공시제’를 포함한 내용이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부결돼 실행되지 못했다.

현재 제조사와 이통사, 유통점의 지원금과 보조금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소비자들은 통신요금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휴대전화 보조금에서 단말기 제조사와 이통사가 얼마씩 지원하는지 알 수 없고 이 중 상당 금액이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유통업자들에게 지급되고 있지만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규모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단말기 가격을 부풀린 뒤 보조금 지원을 조건으로 고가 요금제 가입을 강요하는 방식의 마케팅은 여전하다.

이통사가 유통을 장악해 소비자들이 이통사 대리점에서 단말기 구입과 통신 서비스 가입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땜질식 처방이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단말기 자급제 법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따로 단말기를 구입해서 이통사에서 개통하는 것은 오히려 비싸 전체 8%밖에 되지 않는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단통법은 단말기 유통을 바꿔보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단말기 유통 구조를 바꾸는 내용이 없어 한계가 크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서 단말기를 사고 통신과 단말기 구입이 분리되어야 가격 경쟁, 서비스 경쟁, 단말기 경쟁이 살아나고 소비자 이익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