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유물' 찾기? 바닷속 말고 야스쿠니부터 보라

구진영 입력 2017. 9. 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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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발굴은 좋다, 다만 문화재청은 '명량대첩의 실체'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글:구진영, 편집:김지현]

▲ 명량해협 울돌목이라고도 하며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크게 쳐부순 곳으로 유명하다.
ⓒ 구진영
"제가 (은퇴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 지역이 명량대첩 해역인데 (당시 전함들의) 실체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한 해양문화재 발굴 전문 잠수사와 SBS와의 인터뷰 중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수중 발굴 탐사를 하고 있다는 해양문화재 발굴 전문 잠수사의 말이다. 이 말을 듣고 기자는 깜짝 놀랐다. 지난 199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거북선 총통 사기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보 274호 거북선 총통 사기사건

1992년 8월 20일, 해군본부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8월 18일 오후 3시 경남 통영군(현 통영시 - 기자 주) 한산면 문어포 서북쪽 420m 지점 바다 밑에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장착돼 전투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 국보급 별황자총통 1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별황자총통은 기자회견 발표 3일 만에 국보로 지정됐다. 당시 1차 조사를 담당했던 이강칠 문화재 전문위원은 정식 학술보고서도 없이 형식적인 감정서만 제출했다. 또한, 임창순·황수영·진홍섭 전 문화재위원장, 문명대 동국대 교수,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 안휘준 서울대 교수, 홍윤식 동국대 교수 등이 당시 문화재위원회 2분과에서 국보 심사를 했는데 임진왜란사나 과학사를 전공한 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전공 관련 전문가 없이 30분 만에 국보로 지정된 별황자총통은 1996년 4월 문화재 보호 구역 안의 피조개 채취 허가를 받아준다며 어민들로부터 금품을 받아서 뿌린 혐의로 홍아무개씨를 붙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짜임이 드러났다. 수산업자 홍아무개씨는 "언젠가 황동환 대령(당시 발굴단장)으로부터 별황자총통을 가짜로 만들어 바다 속에 빠트린 후 이를 인양해 국보로 지정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진술했다.

이후 문제점을 지적한 학문적 고증들이 나오면서 가짜임이 들통 난 별황자총통은 1996년 6월 30일 국보 274호에서 해제됐다. 이 사건으로 국보 지정은 '예고제'를 도입하게 됐고 당시 사건에 가담했던 이들은 징역 1년 실형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유물을 발굴하지 못하면 해전유물발굴단이 해체될까 두려워 이와 같은 조작극을 벌였다고 한다.

명량대첩 해역에서 이순신의 자취를 찾을 수 있을까?

임진왜란 유물 관련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지고 25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2017년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함들의 실체를 명량대첩 해역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조선 전함의 실체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장계로 유명한 명량대첩은 2014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명량>으로 인해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관심 때문일까. 문화재청은 명량 바닷속에서 5년 째 유물을 발굴하고 있다면서 이순신의 흔적을 찾겠다고 말한다.
 지난 2012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597년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이 최상급 고려청자와 함께 진도 오류리 해저에서 발굴됐다. 사진은 2012년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소소승자총통 3점. 문화재청은 2012년 명량대첩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 3점을 진도 오류리 해저에서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2012년 문화재청은 진도 앞바다에서 2012년 9월부터 11월까지 수중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진왜란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통 3점과 석제 포환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성낙준 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이들 총통은 제작 시기(1588년)와 장소가 임란 직전 전라좌수영이며, 발견된 장소가 명량대첩의 격전장과 인접한 곳"이라며 "여러 사실로 볼 때 이순신 및 명량대첩과 관련한 유물임이 거의 분명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이데일리> 보도, "이순신 명량대첩서 사용 추정되는 총통 발굴", 2012년 11월 28일). 똑부러지는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명량대첩 관련 유물'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다.

발굴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발굴에 이순신을 내세워 명량대첩의 실체를 찾는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 많다. 우선 명량대첩 당시, 조선 수군의 전함 13척은 온전히 살아남았다. 이는 침몰한 배가 없다는 뜻으로 발굴될 조선 수군의 배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화재청은 당시 침몰한 일본 수군의 전함을 찾으려는 걸까. 만약 일본 수군의 전함을 찾는다면 그것은 찾을 수 있을까.

전함이 침몰된다는 것은 불에 탔거나 포에 맞아 배가 찢겼다는 것이다. 온전한 실체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남해에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전함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올해는 명량대첩 승전 4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렇다 보니 이순신과 관련된 단체들이 뜻깊은 이 해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문화재청의 이순신의 자취를 찾아 명량 해역을 조사한다는 말이 무리한 듯 느껴진다.

'야스쿠니 신사에 있었다'는 거북선 유물, 이것이 더 시급하다
▲ 아리마 세이보(有馬成甫)가 지은 ‘조선역 수군사’(1942년 발행) 이 책 81페이지에 거북선 관련 유물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 유슈칸(遊就館)에 보존 진열되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 충렬사
2015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거북선 관련 유물이 있었다는 내용이 담긴 책이 발견됐다. 통영 충렬사는 "아리마 세이보(有馬成甫)가 지은 <조선역 수군사>(1942년 발행) 81쪽에 거북선 관련 유물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 유슈칸(遊就館)에 보존 진열돼 있다고 기술돼 있다"라면서 세상에 알렸다.
이에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유슈칸 소장목록을 살펴본 결과, 임진왜란 당시 참전했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노획한 대포(蛇砲, 유슈칸 소장번호 화포류 200번)가 유슈칸에 소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 야스쿠니 신사 유슈칸 소장 목록 임진왜란 당시 참전했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노획한 대포(蛇砲, 유슈칸 소장번호 화포류 200번)가 소장되어있다고 기록돼있다.
ⓒ 구진영
이에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일본이 칠전량 해전에서 노획한 거북선 탑재 유물을 분해해서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다면, 시마즈 요시히로가 노획한 대포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칠전량 해전당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전멸시켰던 일본 장수다.

이후 야스쿠니가 거북선 관련 유물을 가지고 있는지 질의한 결과, "그 당시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없다면 어디로 갔는지 조사하고 싶지만, 시민단체가 접근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조사가 중단된 상태다.

문화재청이 임진왜란 당시 유물을 찾아내고 싶다면, 문헌 근거도 없고 발굴 가능성 현저히 낮은 명량 바다에서보다 문헌으로 실체가 남아있는 유물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것이 명량 승전 420주년의 의미를 살리는 길 아닐까. 만약 거북선 유물이 야스쿠니에 남아있다면, 하루빨리 태평양 전쟁의 전범들이 합사된 신사에서 빼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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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구진영님은 '문화재제자리찾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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