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르포] 하루 4시간 알바에 강의땐 쿨쿨.."한국대학 왜 왔는지 헷갈려요"

이지윤 기자 2017. 9. 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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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유학생 실태 살펴보니.
생활고에 학업부진 악순환..중도탈락율 절반 넘는 대학도
"미숙한 한국어탓 수업 못 따라가" 한국학생·교수에 왕따
"학교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게 언어·문화적 지원책 마련을"
2615A04 주요대학 외국인 유학생 비중

[서울경제] # “지난 여름방학 땐 집에도 못 가고 공장에서 일했어요. 요즘은 수업이 끝나면 뷔페식당에 알바하러 가야 해요.”

대구의 한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하적씨는 한국 유학을 후회하고 있다. 아버지 지인이 “한국 대학을 다니면 취업도 잘되고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해 한국에 오게 됐지만 최근 한중관계를 생각하면 취업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다 현재 한국 생활이 너무 고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전적 부담이 있어 올해부터는 기숙사에서 나와 월세 15만원을 내는 원룸에 살고 있고 매일 4시간씩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월세와 용돈 충당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현재보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을 텐데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유학생들에게는 한국 유학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알바하러 왔는지 공부하러 왔는지 헷갈려요”=대구의 한 전문대에 다니는 베트남인 티엔인씨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그는 수업 후 하루 4시간씩 인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티엔씨는 “베트남에 자리한 한국 유학원의 입학 안내를 받고 한국에 오게 됐다”며 “유학원 관계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 해보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는 게 상당히 힘들다”고 설명했다. 주로 베트남 지역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는 이 대학은 지난해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율이 50%에 달했다.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절반이 공부를 그만뒀다는 말이다. 티엔씨는 “한국어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베트남으로 돌아간 학생도 있고 취직하겠다고 그만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다 보니 이들에게 공부는 뒷전이 됐다. 대전의 한 대학 정문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해당 대학 글로벌경영학부 1학년 황샤오션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국어 실력이 늘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졌다고 입을 뗐다. 황씨는 “편의점에서 일하면 한국어 실력이 조금이라도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용하는 말이 비슷해서 알바로는 한국말이 늘지 않았다”며 “수업 마치고 바로 알바를 해서 공부할 시간도 없고 어떤 때는 알바를 하러 한국에 온 건지 공부하러 이곳에 온 건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대학 어학당에서 만난 베트남 학생 비앙뚜샤안씨는 “500만원 없으면 학교에서 쫓겨나요”라며 “베트남 집에 미안해서 방학 때 내가 공장 일 했어요”라고 짧은 한국어로 자신의 상황을 간신히 설명했다.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비자 재발급 시 전 학기 성적이 2.0을 넘지 않으면 500만원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통장 내역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앙씨의 친구들 또한 한국어 실력 부진으로 인한 학점 미달과 공부 시간보다 많은 아르바이트 시간 등으로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12만명 시대가 열렸지만 유학생들은 아르바이트와 한국어 수준 미달이라는 늪에 빠진 것이 현실이다. 유학생 유치 시스템을 일찍이 구축해온 서울권 대학에 비해 유치 준비가 늦은 지방대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교육부가 오는 2023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20만명 유치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이 같은 어려움은 나 몰라라 하고 유학생 늘리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토픽 2급 ‘어서오세요’ 수준으로 대학 강의 들으라니=유학생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뿐 아니라 수업도 또 하나의 도전이다. 정부는 대학 입학 자격을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2급으로 낮췄지만 2급은 사실상 대학 수업이 불가능한 단계이다. 1,500~2,000개 어휘를 사용하는 2급의 경우 전화하기, 부탁하기 등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말을 하는 수준이다. 2급 듣기 문항의 경우 ‘어서오세요’ ‘여기 수박 있어요?’ 라는 문장을 듣고 해당 장소를 선택하는 객관식 기초회화가 주를 이뤘다. 반면 3급이 포함된 토픽 중고급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며 사회적 소재까지 표현이 가능한 단계다. 3급 듣기 문항에서는 전문 내용이 포함된 강의·뉴스·다큐멘터리를 듣고 질문에 답하는 문제로 구성돼 있다.

대학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 업무 수행에 대한 언어가 가능한 4급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이 유학생들의 공통 견해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생인 터키 유학생 베튤씨는 “나 같은 경우 고급 수준인 토픽 5급을 획득하고도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울었는데 토픽 2급으로는 간단한 인사말 수준, 3급으로는 일상적인 대화만 가능한 정도라 대학 수업을 듣는 데 무리”라며 “3급도 학과 수업을 듣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2급까지 입학 등급을 떨어뜨리면 언어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졸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미숙한 한국어 능력으로 면학 분위기를 흐리면서 강의실 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도 문제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인 A씨는 “입학 때인 4년 전에 비해 학과 내 외국인 유학생들이 3배 정도 늘어나면서 유학생과 한 조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하지만 유학생들의 수업 이해도도 낮은데다 팀플레이 주제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국인 학생들끼리 과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조순정 상명대 천안캠퍼스 글로벌지역학부 교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매해 증가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들이나 교수로부터 차별적인 발언을 듣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단순히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만 사활을 걸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각 대학별로 언어적·문화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전=이지윤기자 대구=강동효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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